여호와의 일을 선포하라.

12월 23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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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일을 선포하라.

   

2012.02.07 17: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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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8:17]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라.

 

연합기독교방송 월례기도회를 드리는 우리 모두는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는 아름다운 동역자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자기 삶의 이유를 분명히 발견한 사람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이처럼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정답은 사명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지상의 사명을 다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더 건강해야 하고 더 잘 되어야 하고 더 용기 있게 분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명이 얼마나 중요하면 우리 주님께서 저 높고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을까요?

만약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명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사명자에게 큰 특권과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사명자입니다. 그렇다면 사명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1. 사명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주님을 뵙는 은혜입니다.

모세가 주님을 뵙는 은혜를 받았죠. 출33:11에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나면 우리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려면 갈릴리를 가야만 했습니다.

십자가가 중요하지만 갈보리 언덕이 아닌, 무덤에서 부활하셨지만 동산의 무덤도 아니라,
성전도 중요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갈릴리가 어떤 곳입니까?

주님의 사역의 무대입니다. 그러니까 사명을 감당할 때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씀에서 주님을 만나고, 찬송에서도 주님을 만나고, 십자가 진리를 통해서도
주님을 만나지만 사명을 감당할 때 주님을 더 깊이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주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고 살았는데

이제 아무리 찾아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신 분 안 계십니까?

아무리 기도하고 말씀보고 부르짖어도 전과 다르십니까?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맡겨진 자기사명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자기사명 잘 감당할 때 그 은혜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맡은바 자기사명을 감당할 때 주님을 뵙는 능력을 받습니다.


2. 사명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평안한 은혜입니다.

요나 선지자를 아시죠?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는 말씀을 듣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 만나 죽을 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왜 그런 어려움을 당했을까요?

사명 회피하다가 풍랑을 만나고 물고기 배속에서 회개합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 피하면 더 큰 십자가가 있습니다.

편 하려고 혹은 힘들다고 느슨하게 십자가 지지 마세요.

아무리 이유 있어도 사명 회피하면 더 큰 어려움이 다가오고 맙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사명을 피하거나 느슨하게 십자가 지면

더 큰 어려움이 오고야 만다는 것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절대 편한 것이 편한 것 아닙니다. 요나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몸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사명 감당할 때
새 힘이 넘칩니다.
이것이 사명 감당 자에게 주시는 평안의 은총입니다.


3. 사명 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아무도 해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시91:10-11에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두 증인이 나오는데 그가 그 사명을 마치기까지는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해하고자 하면
그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살라버렸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의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사명은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명 자를 돕는 것은 주님을 돕는 것이요,

사명 자를 해하려는 것은 주님을 해하려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요13:20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만큼 사명자의 하는 일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길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4. 사명 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죽음도 피하는 은혜입니다.

본문 시118:17에 “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했습니다. 사명 붙들면 죽지 않습니다. 그 사명 마치기까지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죽음도 피합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사명이 있었기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서와 라반도 야곱을 죽이지 못하고 돕고 만 것도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만 있다고 다 된 것 아니란 말입니다.

세상에 사명 없는 사람 어디 있어요?

모두 나름대로 다 사명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사명을 생명보다 더 귀히 여겨야 합니다.

진정 사명을 붙들면 죽음도 피해갑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죽음을 거부해야 할 이유도 됩니다. 그래서 바울도 (빌1:23-24) 319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주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처럼 지상에 더 머물러야 할 이유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명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지상에서 더 살 이유가 없습니다.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나를 일꾼 삼으시고

나에게 주님의 일을 맡기셨다는 사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사명 잘 감당하여 주님을 뵈옵고 늘 평안하며 특별한 하나님의 보호와

죽음도 피하는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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