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으로 살아온인생

12월 2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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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으로 살아온인생

   

2008.07.22 14: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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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영 (가명) 집사(여, 65세, ○○교회, 서울시 송파구) -
8년이란 교직 생활을 접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3형제 중 장녀로 태어난 나는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작은 부인을 얻어 아들을 두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와 눈물어린 삶으로 일생을 사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사범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결혼 전에 청주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름대로 즐거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동생 둘을 데리고 가장 노릇을 하면서 살던 중에 대학 시절에 사귀었던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고 8년이란 교직 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결혼식을 하고 시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철저한 불교 집안이라 매달 초하루가 되면 절에 가셨다. 나는 시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절에 다녔고, 등도 달고 복을 빌기도 하였다. 결혼 후 1년 뒤에 첫 아들을 출산하였다. 아들이 3살 되던 해 시부모님께 따로 살림을 나갈 것을 요청하였더니 승낙해 주시면서 사업 밑천을 다소 주셨다.

십자가를 붙잡으라

셋방에서부터 시작하면서 친정어머니를 모셔놓고, 의류제품으로 새벽 도매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디자인과 원단을 공부해 가며 노력한 결과 고객이 늘어가고 수입도 늘어갔다. 그러나 결혼생활 속에서 남편의 무능력함과 꿈이 아닌 결혼 생활의 현실이 한심스럽고 후회스럽기도 하였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전도를 받고 순복음 교회를 가게 되었을 때, 초신자를 위한 기도를 따라하는 동안 큰 은혜를 받고 참회와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그 날 밤 꿈에 주님을 만났는데 주님의 품으로 나를 꿇어앉히시며 “십자가를 붙잡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 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찬송을 부를 때마다 은혜를 받고 울었다.
사업은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수입도 제법 괜찮았고 아들 하나, 딸 둘의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갑자기 생각지 않게 사기를 당하게 되었다. 사업은 어렵게 기울어지고 보증금도 다 없어져서 점포도 빼앗기게 되어 결국 실패를 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항상 술을 많이 마셔서 혈압이 높아서 병원에 자주 입원을 하다가 아들이 중학교를 입학했을 때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몸과 마음이 가장 약해 졌을 때 누구나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되었다. 강남금식기도원을 달려가 3일 금식기도를 작정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살려달라고 목이 쉬도록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3일 금식 마지막날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는 순간 성령의 불이 뜨겁게 온몸에 달아오르기 시작할 때 “아! 성령 받았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무엇이든 하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물밀듯 넘치는 그 기쁨은 형용할 수가 없었다.

다시 의류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또다시 실패

그 후 1주일쯤 지났을 때 우연히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내 딱한 사정을 듣고는 200만원을 꿔 주면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친구의 권유가 너무 고맙고 의외의 도움을 받고 다시 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히트를 계속함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손님이 끊어지지 않고 법석이다 보니 다른 점포에서 우리 때문에 방해가 된다면서 불평을 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의류 사업체를 법인 설립을 하여 회사를 개업하였다. 브랜드가 점점 알려지고 선전되어 전국 35개 백화점을 입점이 되었고, 많은 직원을 두고 의류 제조업으로 신뢰를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축복을 내 능력과 내방식대로 해서 성공한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하고 십일조도 드리지 않고, 회사 운영에만 급급하면서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못한 나에게 또다시 시련과 연단이 오기 시작하였다.

경험이 없이 회사 설립을 한 나는 사업자등록만을 하고 상표를 특허출원을 하지 않은 것이 큰 화근이 되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특허출원을 해놓고 재판에 걸어서 3년 간의 민사 재판에서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회사는 부도가 나고 문을 닫게 되었다.
그때 아이들이 고2, 고3, 중3 이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 절망감 속에서 헤매게 되었다. 그 중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동정하는 사람, 핍박하는 사람, 위로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인간의 위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나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내 방식대로 산 죄, 주님을 멀리한 죄를 회개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3년 간의 연단 속에서 담대한 믿음과 주님의 위로와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산하여 고통 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자녀들의 교육에 힘쓰며 살던 중 아들이 대학 입학시험이 다가왔다. “재수하라”는 내 말도 듣지 않고 몰래 대학 원서를 넣고 시험을 보았다.
그 해 아들은 명문대 유전공학과에 합격했고, 다음해 큰딸과 막내딸은 무난히 대학에 입학하여 각각 교회의 총무를 담당하고 성가대를 지휘하는 등 어디서나 칭찬 받는 자녀들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늘 감사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친지를 찾게 되었다. 그곳에 가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 한국 전통 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4개월 간 수십 가지를 실습하면서 고된 육체적 고통 속에서 견디다 못해 퇴근 때는 적적한 타국의 밤거리를 걸으며 나의 일생에 대한 비통한 생각을 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요식업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외로움에 지쳐 죽어도 한국에 가서 죽겠노라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귀국했다. 그땐 이미 아들이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두 딸도 대학 졸업을 시킨 후였기 때문에 아들이 박사 과정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서 APT도 장만해서 내가 귀국하자 점포를 얻어 주었다. 나는 미국에서 배운 김밥과 도시락 전문점을 개업하였다.

그런데 그 도시락과 김밥이 강남 일대에서 소문난 도시락이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도시락 체인 사업을 아들과 계획하게 되어 아들은 박사코스를 포기하고 체인사업을 경영하면서 출장뷔페까지 하여야 한다기에 80평 짜리 공장을 인수하게 되었다. 또한 엄청난 경쟁을 뚫고 단체급식 할 수 있는 축복을 주님이 주셨다. 나는 오로지 주님께 감사 드리며 영광을 돌렸다. 밤 작업을 밥먹듯 하면서도 피곤을 무릎 쓰고 주일성수를 하기 위해 노력하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으며 십일조도 주님께 바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한 5년이 지날 무렵 세월이 흐를수록 바쁘다는 핑계를 주일도 빠지게 되고 십일조도 점점 인색하게 되며 주님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렇게 믿음생활을 잘하던 아들도 주님을 멀리하고 주일도 지키지 못하고 일에만 열중하고 밤을 세워 작업하기 급급하였다.

그러자 뜻밖에 IMF가 터지면서 주문이 많이 줄어들고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공장 문을 닫게 되었다. 완전히 무(無)의 원상태로 돌아가고, 월세 지하실 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이 60이 넘어서 실패를 당하고 보니 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피할 길을 주시며,
환난 중에도 건져주시는 좋으신 아버지

두 딸을 어려운 가운데서 결혼을 시켰지만 아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빚쟁이들의 고소장이 경찰서에 고발되어 있었고, 빚이 약 1억 원이 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기도원을 찾게 되었다. 금식과 보호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밤에 꿈에 주님을 만났고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었다면서 아들과 교제하는 아가씨를 데리고 왔는데 알고 보니 훌륭한 가정의 딸이었다. 얼마 후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빚을 갚지 못하면 부득이 형벌을 받게 된다.”고 통고하였다.

청천병력 같은 연락을 받고 ‘이제는 끝났구나’ 하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아들과 사귀는 아가씨였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아버지가 도와 주실 거예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몇 시간 후 사돈댁의 도움으로 그 빚을 다 갚고 형사 고소가 취하(取下)가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장막의 문제도 사돈댁을 통하여서 응답 받게 되었는데,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 응답의 하나님. 받은 바 은혜와 축복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록할 수가 없으며 나 혼자만 간직할 수 없어서 간증하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네트웍” 사업에도 주님께서 축복 주셔서 즐겁게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피할 길을 주시며 환난 중에도 건져주시는 좋으신 아버지, 내 가정을 살펴 주시고 자녀들을 귀히 쓰시는 아버지께 감사 드린다.



 
기사게재일: [2003-04-18 오후 12: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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