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윤장로 (62세, 남, 늘사랑교회,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
65년 된 교회를 다니던 내 어린시절
내 고향 전라남도 곡성에는 65년 된 유서 깊은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내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인데, 처음 교회건물도 없던 초등학교 시절에 예수를 믿던 친구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방에 모아 놓고 성경이야기를 해 주시고는 함께 찬송을 불렀다. 사실 그때 우리가 드리고 있는 것이 예배인 줄도 모르고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신앙을 접하게 되었지만 중, 고등학교와 군대시절을 외지로 떠돌아 다니다 보니 교회를 가다 안 가다 하게 되었다.
그러다 제대 후 서울로 와서 결혼하여 중곡동에서 좋은 교회를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교회 건축도 믿음으로 동참하며 주님을 잘 섬기고 있던 중에 같은 교회에서 평신도로 함께 봉사하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하려는 남자 권사님이 있었는데 그 분이 우리에게 “꼭 좀 도와 달라 고 하여 권사님을 따라 나와 교회를 세웠다.
교회 성도가 60명 정도 모였을 때 우리나라는 한참 88 올림픽으로 분주하였다. 특히 올림픽 경기장 부근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는데 목사님은 “교회가 그곳으로 이전해야 크게 성장 할 수 있다 며 성전 이전을 원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 가면 부흥은 되겠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새벽기도회며 수요예배 금요철야는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또 교회가 그 지역 사람들 중심이 될 것이 뻔해서 결국 목사님과 일부 성도만 그쪽으로 가고 나머지는 기존 교회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남은 우리 30여 명은 우선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다른 장로님과 힘을 합쳐 지하에 성전을 꾸미고 목회자를 모셔와 지금의 늘사랑 교회를 섬겨왔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그런 교회가 10주년이 되었는데도 계속 지하실에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성전이 지상으로 이전하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는 3월부터 강남금식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했다. 물론 전 교인 90여 명도 본 교회에서 이 일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였다. 나는 기도원에 올라 갈 때면 셔틀버스에서 내려서 걷다가 건물만 바라보아도 감동이 일어났다. 마음이 뜨거워 오면서 이번에도 응답 받으리란 확신이 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정년퇴직을 한 상태였는데 1일 1식하며 전화도 끊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특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는 민수기 6장 24절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1달 정도 열심히 기도하는 동안 마침 아주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왔는데 몇 년간 교회가 부흥되어 새로 건축하여 이전하는 3층 건물이었다. 위치도 좋고 깨끗하여 마음에 들었지만 건물 주인 할머니가 “교회는 시끄러워서 안 주겠다 하며 “병원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다 고 하였다.
그런데 이사 들어가기 바로 전, 주인 할머니와 그 교회 사모님이 우리 교회를 찾아와서 “교회 얻을 마음 없느냐? 고 물었다. 들어 올 병원에서 세금 자료를 확실히 해 달라고 요구하자 복잡한 것이 싫어서 계약이 파기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교회에서는 ‘그 자리를 놓쳐서 실망했었는데 잘 되었다`고 하며 바로 계약을 하였다.
그 날이 4월 15일 부활주일이었는데 꼭 10년 전 개척한 날도 4월 15일 부활 주일이어서 참으로 기뻤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을 진행시키시는 것 같았다. 6월 3일에는 이전예배를 드렸는데 비용 마련 과정에서도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잘 풀렸다.
무엇보다 교인들이 옥합을 깨뜨려 특별헌금을 하였고, 은행 융자도 쉽게 얻고 하여 목사님 사택 이전까지 약 8,000만원이 필요하던 것이 묘하게 금액이 맞춰졌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온 성도들은 기도응답 되었다고 하나님께 감사해 하였다. 나도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시간을 충분히 내기가 어려워서 일을 민첩하게 행하지 못했을 텐데 정년퇴직 하자마자 이 일을 이루어 주신 것이 기뻤다.
하나님께서 한번 더 충성할 기회를 주시려고 성전 계약과 보수공사와 자금 마련 등의 일을 하게 하신 일들이 시기를 맞추신 듯 하였다. 마음에 들거나 싼 건물은 아는 사람끼리 거래하는 일이 흔한 일인데, 전에 우리교회가 쓰던 곳을 인수시키는 일까지 마치 예비하셨다가 연결시켜 주시는 듯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그전 교회 건물의 2, 3층을 학원이 쓰고 있었는데 우리가 나가면 지하까지 학원에서 쓰겠다고 하였다. 그러면 종탑도 뜯어내야 하고 우리가 생명의 꼴을 받아먹던 강단 자리도 허물어야 해서 너무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였다. 학원은 법적으로 화재관계 등으로 지하에는 못 들어온다고 하여 계약이 취소된 것이었다.
우리는 주인과 다시 교회를 받기로 하고는 이 일을 위하여 기도제목을 가지고 강남금식기도원에 또 올라갔다. 그리고는 우리 교회 자리에서 목회를 잘하여 부흥할 수 있는 신실한 교회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산에서 내려와 교회 앞에 임대광고를 써서 붙이는데 몇 시간도 안되어 어느 목사님이 들어와서 교회를 얻겠다고 하였다. 그분 말이 ‘아까 지나갈 때는 몰랐는데 일을 다 보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보니 임대 안내가 써 있더라`며 ‘장소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시간을 맞춰 보니 그 목사님이 처음 지나간 때는 내가 안에서 광고를 쓴 시간이었다. 어쩌면 하나님은 그렇게 때를 맞추시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는 의자나 커튼 등을 그대로 놓고 나오며 중곡동에 교회가 하나 안 없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진정으로 기뻐했다.
이 일을 다 마치고 나는 사업을 하려고 다시 강남금식기도원으로 올라가서 기도했다. 그러다 며칠 전 물류유통업을 하기로 결정하고는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 위하여 기도원으로 올라갔는데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응답 하셨다. 적소(適所) 적시(適時)에 일을 이루심은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마음의 평강까지 주셨다.
순수한 신앙 원칙을 새롭게 결단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
지금까지 신앙생활한 지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 큰 기적은 체험 안 했어도 평탄한 삶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30년 전 O.P.C(동양정밀)를 시작으로 일평생 직장 생활하여 정년이 되도록 잘 다니다 퇴직하였는데, 특별히 부하게는 못 살았어도 영적으로 많은 축복을 받으며 살았다. 2남 2녀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원까지 졸업시키고 반듯하게 키워서 모두 교회에 충성하는 일꾼으로 쓰임 받고 있다. 아내는 권사로 큰딸은 집사로 둘째 딸은 처녀집사로 아들은 총각집사로 그리고 사위는 안수집사로서 온 가족이 전 부서에서 활동중이다.
특히 큰딸이 10년 전 강남금식기도원에서 큰 은혜를 받아 우리식구들은 기도원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나는 원장님 설교시간에 십일조 말씀에 큰 도전을 받았다. 매사에 0을 하나 붙일 것인가 뗄 것인가 하는 원장님 말씀이 날 센 검이 되어 다가왔다. 십일조에 0을 하나 더 얻고 싶은 사람이 10분 하던 기도를 1분 할 것인가? 100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지나가는 말로 들리지 않는 것은 전하는 분의 입술의 권세인 것 같았다.
진리가 선포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계심이 느껴지며 많이 드리고 많이 받으려면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는 순수한 신앙 원칙을 새롭게 결단하게 되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민6:25)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 날까지 몸 된 교회의 기둥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