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옥 성도(여, 40세, 인천장로교회, 인천시 남구) -
우상숭배의 가정 그리고 예수를 믿던 오빠의 죽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다락방에는 돌부처가 있고, 칠성당을 섬기며 제사를 지내는 대대로 우상숭배를 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가정이 부유하다보니 아버지는 늘 술집을 들락거렸고, 바람을 피우고 술김에 어머니를 구타하였다. 이렇게 되고보니 점점 가세는 기울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때 오빠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였고, 가족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오빠를 아버지는 매우 미워하였다. 그러나 오빠는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양오빠와 잘못 끼워진 인생의 단추
오빠가 죽고 나자 아버지는 우리 집 뒤에 근무하는 청년을 무척 예뻐하게 되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그 청년에게 “대학 공부까지 시켜준다.”고 약속할 정도로 많이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마치 죽은 오빠에게 속죄라도 하듯이...결국 그를 우리 집에서는 양오빠로 삼게 되었다. 그 양오빠는 야간에는 경남대를 다니고, 낮에는 일을 하는 착하고 열심 있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양오빠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물론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동성동본’이라고 집안에서는 반대하고 있었다. 그 즈음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였는데 동창회가 끝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다 보니 취하여 양오빠가 나를 데리러 오게 되었다.
친구들은 양오빠가 데리러 오니까 다들 양오빠만 믿고 나만 두고 가버리게 되었다. 그날 밤에 내 인생의 단추는 잘못 끼워졌고, 나중에 아들 ‘장휘’가 태어났다. 어이없게도 양오빠는 동네 유지인 아버지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사랑하지도 않는 나와 살림을 차린 것이다.
후에 남편은 다른 여자가 생겼고, 그 여자와 함께 바늘과 실 같이 붙어 다녔다. 물론 가정의 불화는 그치지 않았다. 끝없는 남편의 트집과 주먹질과 폭언들...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을 정도로 당시 내게는 너무나 힘들었다.
남편은 그 여자가 빚이 많아 그 빚을 갚아 주느라 나중에는 집까지 팔고 “이제는 그 여자를 안 만난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해 놓고서도, 발령받아 간 직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딴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남편은 나와 굳은 약속을 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나는 생계가 막막해 결국에는 보따리 장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장휘’를 업고 가방을 메고, 코피가 나와 코에는 화장지를 틀어막고 길을 가는 것을 부모님이 보시고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는지 옷가게를 차려주셨다.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점쟁이 집을 다녔고 굿도 했다. 그런데 굿을 하고 나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죽기 살기로 남편과 싸웠고, 나는 술과 담배로 마음의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어느 날은 점을 보러 갔더니 점쟁이가 “신기”가 있다며 “신(神)을 받으라.”고 했다. 몇 군데 물어 보았으나 똑같은 말을 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전도하던 오빠 생각이 나서 “신을 안 받으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봤더니, “술집을 하면 그 액땜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식당으로 업종을 바꾸고 옮긴 곳이 바로 권사님 댁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나니 더 열심히 무당 집을 다녔지만, 우리 가정의 환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정성을 들여 열심히 붓고 있던 계(契)도 깨졌고, 막내의 건축사업도 파산을 했다. 게다가 막내는 알코올 중독자에 바람둥이가 되어버렸다. 나의 정신은 계속해서 병들어 가고 있었고 나이트 클럽과 점쟁이 집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삶의 괴로움을 술로 달래던 시절
그때 이웃에 사시는 목사님이 “하나님을 믿으면 귀신이 떠나가고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계속 쫓아다니며 전도하셨다. 알코올에 찌들어 있고, 우상에 싸여 있던 내가 용기를 내어 “저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나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목사님은 “물론이죠. 하나님은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라고 하시며 강남금식기도원을 데려다 주셨다.
그러나 삼 일 후에 남편이 목사님에게 달려가 “우리 부인을 어디다 빼돌렸냐?”며 얼마나 행패를 부렸던지 기도원에 온 지 삼 일 만에 나는 내복을 입은 채로 남편에게 잡혀 집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다짐했던 남편은 나아지기는커녕 싸움을 계속 걸었고, 나는 술 없이는 손이 떨려 저녁을 보낼 수가 없었다. 결국은 그와는 이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이혼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속은 것이 너무나 분해 그 여자와 남편을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죽기 살기로 쫓아다니며 그들을 괴롭히며 폐인 생활을 하였다. 친정부모님이 보다 못해 지금 남편을 만나게 해 주셨다. 결혼 조건은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전남편과 살고 있는 ‘장휘’를 내 아들 같이 생각해 준다는 것이었다.
지금 남편은 한글도 모르고 돈도 없다. 두 번째 남편은 돈도 많이 쓰고, 거짓말에 외박하고, 생활습관도 나쁘고 첫째는 우리 부모님한테 너무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팔자를 한탄하기 시작했고 아들 ‘장휘’한테 못해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웠다. 그러다가 문득 기도원이 생각이 나서 강남금식기도원에 갔다. 기도원에 가서 앉아 있으면서도 점쟁이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는 갈등을 하였다.
마음의 안식처인 강남금식기도원을 찾아서
금식 10일과 상담을 통해서 아들 `장휘’를 위해서는 기도해 주는 일밖에 없으며, 지금 남편과 이혼하면 옛날의 저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전남편에게 못해주고 함부로 한 빚을 지금 남편에게 갚으며 용서하고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제까지 내 기준과 판단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하게 되었고, 무당 집, 알코올 중독, 미움과 증오의 감정 속에서 있던 나를 끝까지 인내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신 것이 감사해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이제는 머리도 맑아졌고, 술 중독에서 해방되었고, 모든 것을 용서 할 수가 있고, 그들을 위해 축복을 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 입에서는 저절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나오고,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강남금식기도원을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나는 요리사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남편과 나의 소박한 꿈은 열심히 일해서 양로원을 운영하면서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그분들께 갚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또한 이 간증을 쓰게 된 이유는 예전의 나와 같이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믿고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