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서순 집사 (여, 40세, 송학대교회, 서울 동작구 노량진) -
개척교회에서 믿음을 키우며
결혼 전에 친정 부모님과 형제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도 나 혼자만 교회를 다니지 않았었다. 그러다 25세가 되어 믿음 없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는데 결혼 후에 건강이 안 좋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6년이 지나도 아기가 없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 다가 내 손을 잡고 엉엉 우시면서 하소연 하셨다. “예수 믿어라. 그래야 자식도 낳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얘야.”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흘려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쉬는 날 놀러 가기 바쁜 남편이 일요일이면 말없이 조용히 혼자서 사라지곤 하였다. 한 달 정도 지나서 교회에 출석한 것을 알았는데 조심스럽게 나에게도 “예수 믿어라.”고 하였다. 나는 “이 좋은 날 왜 교회 가서 따분하게 앉아 있어요? 교회 가면 졸리기만 해서 싫어요.”라고 하며 일축(一蹴)해 버렸다.
그러면서도 근처의 대형 교회를 한·두 달 동안 다녔는데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꾸준히 안나가고 말았다. 이런 나의 신앙을 보신 어머니는 계속해서 “개척교회에 나가라. 개척교회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은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신정동, 목동을 아무리 찾아 다녀도 ‘개척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초신자였던 나는 ‘개척교회’라는 것이 ‘처음 시작하는 교회’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목동아파트 재개발 지역 둑 밑에 있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당시 교회의 재정은 매우 어려웠는데 교회에 출석한 지 3일 만에 나에게 회개가 임했다. ‘어머니를 핍박한 죄, 남편 방해한 죄, 예수 조롱한 죄, 세상에서 나의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죄’ 등 하나님은 여러 가지 죄들이 다 생각나게 하시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회개케 하셨다.
그 후로는 밥만 먹으면 교회 가서 기도하고, 집에서 성경을 쓰고 신앙생활에 혼신(渾身)을 다하였다. 예배 장소도 없는 어려운 교회였는데 다리 밑에서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았고, 남의 공장 밑에서 세례를 받았다. 목회자의 사는 곳이 여러 가정이 함께 사는 집이라 시끄러워서 우리는 날 더울 때는 가로등 밑에서 예배드리고, 밤늦게까지 하는 철야는 아예 근처의 다리 밑에서 하였다. 그러면서 권사님 한 분과 집사님 한 분이랑 늘 함께 집중적으로 “교회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40일 작정기도 6년 만에 삼열(사무엘)이가 태어나고
그렇게 기도한 지 1년도 안되어 1000만 원에 18만 원짜리 지하를 얻어 새성전을 꾸미게 되었다. 얼마나 기쁘고 교회가 소중했는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그 뒤 나는 자녀 주실 것을 소원하여 40일 작정기도를 하였다. 몸이 약한 나는 혈루병 여인의 말씀을 통해 확신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이 있는 마음속에도 ‘그래도 나는 아기 못 낳아.’하는 마귀가 주는 의심을 여러 차례 가지게 되었고 끊임없이 낙심하게 하였다. 하지만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님이 무엇을 못하시겠는가? 하는 믿음으로 담대히 이겨내며 작정기도를 마쳤다. 그리고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어머니와 함께 받았다.
병원에도 안 가보고 여러 사람에게 ‘아기를 주셨다.’고 자랑을 하자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말하며 믿지를 않았다. 남편조차도 “못 나으면 말지 왜 실없이 그러고 다니느냐.”고 핍박하였다. 그러나 나는 “성품은 예수님이요, 얼굴은 당신을 닮은 아이를 주실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훗날 38kg의 몸이 45kg이 되면서 몸이 따뜻해지더니 정말 태기(胎氣)가 있었다. 그 후 아들 삼열(사무엘)이가 태어났다. 할렐루야!
91년 6월에 교회 등록하여 2년 후인 93년 10월에 아들을 얻은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때 같이 기도했던 세 명이 모두 큰 축복을 받았다. 권사님은 집을 사시고, 집사님은 딸이 최고 명문대인 S대에 들어갔다.
그러다 하나님께 대한 교만으로 인하여 가정에 연단이 왔다. 예수 믿고 3년쯤 되자 남편의 일이 잘 풀려 물질의 여유가 생겨서 나는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우리가 축복 받는다.”는 말을 했더니 남편 말이 “내가 열심히 뛰니까 그렇지 꼭 하나님이 돕는 거냐?”는 말을 하였다.
그 뒤로 남편은 부도가 나서 도망을 다니게 되었다. 나는 삼열(사무엘)이랑 마루바닥에서 철야하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래도 하나님은 굶기지도 않게 하시고 꾸러 다니지도 않게 하셔서 그 날 그 날을 근근히 살아가게 하셨다. 그런 와중에도 남편은 “다른 사람은 나쁜 짓하고도 잘 사는데 그 말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불평하였다. 그러다 아들이 보고 싶은데 집에 못 들어오니까 손들고 회개를 하였다.
남편의 회개가 있은 지 얼마 후에 부도 건도 책임보증으로 해결되면서 예수님을 깊이 믿게 되었다. 술·담배 끊고 노래방도 안가고 욕도 안하고 하니까 동료들이 처음에는 비웃더니 지금은 오히려 인정하며 신용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3년 동안 노방전도에 힘썼다.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복음 전하러 다니는데 믿다가 안 믿는 실족한 영혼들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특히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전도할 때는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하지만 실상은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았다.
육체의 병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 앓고만 있는 사람, 사업이 망해 충격 받고 채무자에게 너무 시달려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 또 아무 의욕 없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술만 마시는 사람 등...정성껏 기도해 주고 작은 것이라도 대접하면 건장한 남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려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사업장에 응답 주신 하나님
작년부터 강남금식기도원에 와서 은혜를 많이 받아서 이번에도 가정이 영적으로 하나가 되고, 남편 사업장에 물질이 풀리기를 기도하며 21일을 금식하였다. 시간마다 말씀으로 응답 받으니 날아갈 것 같이 기쁘고 특별히 힘들지 않았다. 남편은 조용히 교회나 다니지 노방전도로, 기도원으로, 금식으로 유별나게 신앙생활 한다고 늘 나에게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기도원에 올 때는 집에서 하루 한 끼씩 같이 금식하며 기도에 동참해 주어서 나에게 힘이 되었다.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 나의 골수를 쪼개는데 정말 깊은 회개를 하게 하셨다. “나를 죽이고 거듭난 생활을 하겠다.”고 소원하자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절제의 열매를 특별히 깨닫게 하셨다. 말의 절제, 음식의 절제, 화내는 것 등. 집에서는 합력하며 선을 이루는 아내요, 어머니요, 교회에서 열심인 집사로 충성할 것을 다짐하였다.
기도 후에 남편은 납골당 공사를 맡았었는데 업주에게서 돈이 안 나와서 공사를 쉬는 것은 물론 일꾼들 삯을 주지 못해서 큰 소동이 났었다. 그런데 기도하고 나니 5,000만 원이 들어와서 급한 일은 처리되었고, 2월 지나면 분양에 들어간다고 한다. 할렐루야!
또 산후 통증으로 다리가 몹시 저렸는데 금식 후 막힌 곳이 확 뚫린 듯 몸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기도 중에 계속해서 여러 차례 시험이 왔었다. 방학이라 같이 와 있는 삼열(사무엘)이가 도랑에 빠지고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며 토하고 하혈을 심하게 하는 등 여러 번 기도하는 데 방해가 있었으나 끝까지 승리하게 하시고 응답주신 하나님, 금식을 통해서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