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식 권사 (여, 60세, 창원중앙교회, 경남 창원시 대방동) -
남편의 도박으로 인하여 사글세를 전전하며
충북 보은군 보은읍 중곡리에서 불교와 유교를 섬기던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19세 때 중매 결혼을 하였다. 결혼해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4남매를 낳아 잘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남편의 도박으로 사글세를 전전하며 힘든 하루 하루의 삶을 살고 있었다.
더욱이 남편의 무능과 도박, 난폭한 성격 때문에 가정 불화가 계속 되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6살 된 둘째 아들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아이가 어두운 곳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아 하루 하루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때 나의 생활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었고, 어디에 있든지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 속에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던 주인집은 굿을 하고 사는 무당이었는데 그 집에 사글세로 살 때는 웬일인지 늘 머리가 무겁고 아팠으며 밤이면 흉몽(凶夢)에 시달렸고, 무엇하나 집안 일도 시원하게 풀려나가는 것이 없었다.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던 1970년 겨울 어느 날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던 1970년 겨울에 내 생전 처음 조치원 중앙감리교회를 스스로 찾아가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음이 따뜻해져옴을 느꼈다.
얼마나 마음이 포근하던지,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는 세상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평안함과 소망과 기쁨이 넘쳐났다. “기도”라고는 할 줄 전혀 몰랐던 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한 심정과 괴로움을 하나님께 넋두리를 하는 것이 내 기도의 전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역사 하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넋두리, 투정 비슷한 이러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때도 여전히 남편이 조치원 시장 사람들과 늘 도박을 해서 가정 살림은 엉망이었는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게 되었다.
특별히 남편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를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 노름할 돈이 없으니까 소외당한 남편은 점차 도박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 날 수가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차에 경남 창원 공업단지에 있는 한국 특수 강철 주식회사에 남편이 일자리를 얻었고, 우리 가족은 창원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개척교회에서 새벽제단을 쌓고 전도 하였더니
아무 연고 없이 이사를 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까운 교회를 찾게 되어 당시 개척교회였던 창원중앙 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내 자신이 가난하게 살아왔기에 어려운 개척교회를 돕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성도가 7명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개척교회였기에 더욱 열심을 내어 힘들어하시는 목사님을 섬기고 새벽기도의 제단을 쌓으면서 전도하며 교회 부흥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남편 몰래 헌금을 드리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남편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모진 핍박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핍박 또한 감사드리며 여선교회를 조직하고 회장직을 맡아서 교회 부흥에 전심을 다 하였다. 교회는 계속해서 부흥되어 가고 날로 부흥되어 가는 교회를 볼 때 새 힘이 솟고 소망이 넘쳐 났다.
성경책을 세 번이나 찢어버린 남편
“은혜가 많은 곳에 사탄도 역사 한다”고 했는데 남편은 더욱 완악해져서 “성경책”을 세 번이나 찢어버리고 살림을 때려부수기도 하고, 폭력을 행하여 눈언저리에 피멍이 시퍼렇게 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핍박을 심하게 당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께 향한 믿음과 열심과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만으로는 여섯 식구가 먹고살기 어려워서 길목에 조그마한 가게 터를 얻어 “한밭 식당”을 개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적었으나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친절하니까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서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식당은 날로 번창하였고, 떳떳하게 성전건축 헌금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또 기도의 힘으로 교회는 날로 부흥되어 450평 성전건축을 하게 되었는데 물질로 인한 어려움이 있자, 온 교우들이 합심으로 철야하며 기도하였고, 담임 목사님이 금식기도로 간절히 기도 드릴 때에 나도 금식기도에 동참하였다.
성전 건축이 중단되지 않기 위해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였더니 부동산을 하시는 집사 부부에게 “성전 건축에 동참하라.”고 권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
더욱 기도하면서 조심스럽게 학개서 1:8-9의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전하며 1억의 헌금을 권면 하였더니 믿음으로 기쁘게 동참하는 것이었다. 말씀에 순종하는 집사부부의 모습을 보고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40일 금식을 하고 관절염을 고침 받아
이뿐만 아니라 온 교우들이 동참해서 성전을 봉헌하게 되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성전을 봉헌하듯 모든 성도들이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은 한마디로 말하면 ‘금식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금식기도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금식기도를 체험하였기에 나는 다시 강남금식 기도원에 올라와 40일 금식을 작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다. 금식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도우시는 통로라는 것을 나는 이미 여러 번의 금식기도를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식 7일째 되던 날 ‘첫 사랑 회복’에 대한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다. 늘 머리가 무겁고, 팔, 다리, 무릎 관절이 아프던 것이 씻은 듯이 고침을 받고, 허리와 양쪽 눈이 아프던 것도 고침을 받았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서 40일 금식을 별로 힘들지 않게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며 금식기도의 능력을 전하고 싶었는데, 이번 간증을 통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