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안방중계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윤영미 아나운서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시작된 방송활동은 1991년 서울방송에 입사하면서부터 더욱 본격화 됐다. 그러나 당시 확실한 부서가 정해지지 않은 채 2년을 보내야 했다. 방송에 대한 나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던 나는 회사에서 가까운 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하며 40일 동안 새벽기도를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드디어 40일째가 되었다. 그러나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출근을 해야만 했다. 쉽지 않은 새벽기도였던 만큼 분명한 길을 보여주시리라 기대했던 나는 회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 회의 시간이었다. 나에게 프로야구 리포터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흔쾌히 대답을 했다. 하지만 나는 리포터가 아닌 중계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고 그때부터 최고의 야구중계를 하기 위한 열정적인 나의 행보는 시작되었다. 매일 퇴근 후 오후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야구장을 찾아가 게임의 한순간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의 눈에, 머리에 그리고 마음에 담았다. 또 선수들의 신상명세, 구단상황, 야구규칙은 물론 스포츠 신문과 야구 관련 서적을 구입, 야구 지식을 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특히 운전중에는 선배들의 야구중계 녹음테이프를 쉬지 않고 들었다. 목소리를 따라해 보기도 하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다. 내 머리 속에는 온통 야구 중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연습을 했다. 하지만 연습과 노력은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야구중계는 나만의 개인적 목적이었고 회사측의 요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야구중계를 여자가 하기는 너무 힘들다며 몇몇 동료들은 라디오 방송을 종종 권하곤 했다. 참으로 외롭고 고독했다.
나는 ‘하나님, 정말 이 일이 제가 해야할 일입니까? 너무 힘들어요’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40일 새벽기도 마지막 날의 확신을 계속 심어 주셨다. 공부하고 노력한 만큼 잘 되지 않아 야구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남몰래 훔친 눈물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이 길을 허락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인도하실 이도 하나님이시리라.’ 그렇게 1년 동안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또 중계를 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는 노력을 했다. 그 시간들은 인간인 나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회사에서 중계 모습 촬영 테이프를 제출해 보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결국 1년 동안의 피나는 노력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94년부터 정식으로 야구중계를 맡게 된 나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는데 중심을 맞췄다. 중계 전에는 화장실에서 기도했고, 중계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야구장 선교사로 삼아 주옵소서’ 나는 중계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이므로 주님의 능력으로 일하게 하심’을 느낄 수 있었고 지난날 힘들었던 ‘훈련기간’이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직업임에도 목이 약해 많은 걱정을 했지만 중계하기 전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늘 들어주셨고 3시간 동안의 중계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야구중계를 하면서 일반시민에서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계층,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 만남들이 바로 선교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과의 만남 자체를 너무나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야구장에서 목이 터져라 자기 팀을 응원하는 관중들 속에서 나는 결코 외롭지 않은 ‘야구장 선교사’가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 속에 그리고 중계 속에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아름다운 목소리와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소중한 가족들을 통해 도움의 손길도 허락하셨다. 특히 시어머니는 매일 새벽기도를 통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나는 훈련의 시간과 중계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 이제 나는 야구중계를 통해 더욱 적극적인 선교를 펼쳐 나갈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할 것이다. 나는 ‘야구장 선교사’ 일뿐 아니라 ‘생활속의 선교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