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 찬 집사 (53세, 남, 안양일심교회,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 -
5년 전 미국에서 13년 만에 고국에 찾아온 나는 처음으로 강남금식기도원에 갔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주 강남금식기도원을 찾아와서 믿음을 충전시키며 많은 은혜를 받고 내려갔다.
타락한 세월들
어머니는 ‘첫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 기도를 하셨고, 모태신앙인으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어쨌든 3대 독자의 가정에 첫 아들로 태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받았었다. 생각지 않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자란 우리 4 형제에게 첫 시련은 닥쳐왔다. 고시 공부를 하던 셋째가 갑자기 ‘목사가 되겠다’면서 신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동생은 신학교에 다니다가 뜻을 이루기도 전에 간 경화로 그만 죽고 말았다.
믿음이 없던 나는 더욱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앞섰고 그 당시에는 아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더구나 ‘주의 종이 되겠다는 동생을 왜 데려 갑니까?’라고 반문하며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나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때에는 부산에서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며 쾌락과 향락이 있는 곳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다녔다. 술, 음악, 여자는 나를 타락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기에 충분하였다.
어느 날 위암 말기에서 고침을 받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양치질을 하는데 목구멍에서 피가 넘어오기 시작하였다.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아 보니 위암 말기였다. 서울로 올라온 나는 죽는 날만 하루하루 손가락으로 세면서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위암이였기 때문에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아침, 저녁으로 한 바가지씩 피만 토하고 있었다. 한 바가지씩 피를 토하며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 제발 살려 주세요.”하는 기도가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때 미국에 계신 어머니는 나의 병을 위하여 금식 기도를 하셨고, 모든 교인이 내 병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미국에서 여러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였던 결과로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의 기적은 일어났다. 아예 포기하고 약 한번 제대로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암 말기인 나의 몸이 깨끗이 치유가 된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나의 몸을 치유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때는 하나님의 존재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절망의 벼랑 끝에 서서
건강을 회복한 나는 한국에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어머니가 계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어 보겠다고 교회를 다니며 행복한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하며 아침에 집을 나간 하나밖에 없는 13살난 아들이 집 앞에서 그만 차에 치어 죽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아들을 머나먼 이국 땅 하늘 아래 묻고 말았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던 나는 라스베가스로 다니며 방황하다가 한국에 다시 오게 되었다. 영화를 제작하기 위하여…. 노란 손수건, 보디가드, 정사 등 만드는 영화마다 흥행에 실패하여 결국 집까지 잡히고 부도까지 났다. 이때는 누구를 원망할 기력도 없었다.
누군가 ‘물에 빠져 죽으면 황홀하다’는 말을 한 것을 듣고 물이 깊은 곳을 찾아가던 중, 문이 열려 있는 교회로 찾아 들어갔다. 성전 정면에 대형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하나님! 나하고 얘기 좀 합시다.’하고 푸념을 하며 성전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신세 한탄하는 심정으로 기도를 드렸다. “이런 고통을 주는 것 보다 차라리 거두어 가소서. 하나님 나 좀 붙들어 주시던 지 아니면 데려 가시든지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이제는 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없고 내다 버릴 것도 없습니다.”
하염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한참 동안 통곡을 하였다. 기도를 하는 건지 하소연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하나님께 넋두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왔다. 인기척에 놀란 나는 교회를 나와 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그래! 죽자! 산다는 것에 의미를 갖지 못하고 폐인이 되어 살 바엔 깨끗하게 죽으러 가자. 내 아들 승화가 있는 곳으로…’. 머리 속에 오로지 죽음 생각뿐이었다. 차안에서 석양 노을을 바라보며, 죽으려고 그 밤에 저수지를 찾았다.
저수지를 찾아가서 죽으려고 하는데 고요한 적막 속에 갑자기 어디선가 젊은 여자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두려움에 떨면서 나는 차안에 엎드렸다. 그러자 저수지 저 끝에서 검은 물체가 물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귀신인지 사람인지 어둠 속에서 분간이 안되었다. 사람들을 불러 물 속에서 건져내 보니 젊은 여자였다. 죽으러 갔다가 죽으려는 여인만 살려주고 씁쓸히 다시 발길을 옮겨 서울로 올라왔다.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
아내와 상의하여 인생의 절망 속에서 나는 강남금식기도원을 찾아갔다.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 작정하고 5일 동안 금식을 했다. 그런데 4일째 되던 날 드디어 주님을 만난 것이다. 할렐루야!
그 많은 세월을 하나님을 찾아 불렀지만 사실 마음의 변화 없이 입으로만 주님을 찾았고 말로만 주님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 마음에 주님이 확실히 계셨던 것이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 들었다. 비로소 교인들이 말하는 ‘거듭남’을 체험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너무도 기쁘고 벅찬 경험이었다. 너무나 은혜스러워 5일 금식을 더하였다.
지금 나는 「한국 소망회」를 친구와 같이 운영하며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과 무료 물리치료를 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언제나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주님 뜻에 따라 사는 삶은 행복 그 자체인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하신 것이다.
그 동안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빼앗겼으며 소중한 것들을 모두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주님은 다만 그 동안의 삶의 과정을 통해서 나를 당신에게로 이끄셨고, 그 과정들을 통해서 나로 하여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즉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얻을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은 분명 내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상실이었고 인생의 상실감과 공허함을 알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헛된 것이 아니며 아들을 하나님께 빼앗긴 것이 아니었음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주님께 불순종하며 허탈한 세상을 방황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 주님은 늘 내 곁에 기다리고 계셨던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이 신실하신 주님께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