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귀에 짐을 싣고 전도를 떠나는 선교사들. 교회 앞마당에 세워진 십자가. 교회를 짓기 위해 길을 고르는 신자들. 남녀 좌석을 분리하기 위해 중앙에 병풍을 친 예배당.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400리(≒160㎞)를 마다치 않고 걸어온 사람들….
100여년 전 선교사들의 편지와 일기, 신문·잡지의 기사들을 토대로 수많은 사진 자료와 함께 한국 땅에 있었던 부흥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 발간됐다.
그동안 듣거나 읽기는 했어도 한국 선교초기, 선조들의 신앙의 삶의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한반도 대부흥’은 1900년부터 1910년 사이에 찍은 350여점의 사진 자료를 통해 선교사들의 사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초기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 대부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에서 한국 기독교사를 가르치고 있는 옥성득 교수가 100년 전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찾고자 수많은 도서관과 고문서실을 찾아다닌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는 “사진기가 흔하지 않던 시기에 촬영된 것이어서 그야말로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포착되지 않았을 작품들”이라며 “한국 교회사의 매우 중요한 순간들일뿐 아니라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책은 선교사들의 편지와 문헌 그리고 한국교회 1세대들의 고백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경험한 ‘부흥’은 철저한 ‘자기 각성’에 있었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
“저녁집회는 오늘 새벽 2시에 마쳤습니다.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악마와 싸우며 고뇌를 겪었습니다.
우리는 그 싸움이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승리를 얻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하다’는 표현 외에는 우리가 어제 저녁 하나님과 그의 대적인 사탄과의 싸움을 목격했을 때 받은 느낌을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동료를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 왔다고 고백했습니다.
교회 제직들은 도둑질을 했고, 그들 사이에 시기와 미움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 남편들은 아내를 죽이고 새 아내를 얻고 싶을 정도로 아내를 미워했다고 고백했습니다.”
1907년 1월 14일 밤, 매큔 선교사에 의한 증언이다. 선교사들에 의한 곳곳의 증언들은 ‘회개’와 ‘중생’의 모습들로 가득 차 있어, 마치 존 웨슬리의 구원론을 보고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저자인 옥 교수 역시 “부흥은 하나님의 영(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교회)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부흥은 ‘다시 삶’(Re-vival)인 동시에 개인과 교회가 거듭나는 ‘다시 태어남’(Born-again)”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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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년, 성경을 반포하기 위해 떠나는 권서. 권서(勸書)는 권서인 혹은 매서인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들의 임무는 기독교인이 없는 시골마을에 가서 단권성경(쪽복음)과 소책자를 팔고 전도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당나귀에 실린 ‘복음짐’이 보인다. | ||
선교사들에 의한 한국 선교는 ‘유교·불교·무교·동학을 거쳤지만 영적으로 목말랐던 한국인의 영혼에 생수의 영이 부어진 사건’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옥 교수는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그리스도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과 신앙의 의미가 분명해지듯, 복음적인 한국개신교회의 뿌리이자 발원지에 가까이 다가가면
한국교회의 현재 위기를 타개할 활력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집필의도를 밝혔다.
‘한반도 대부흥’은 혼란하기만 한 한국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조들의 신앙 경험을 통해 예언자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선교’와 ‘부흥’은 인간적인 힘이나 말재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요, 이 땅에 ‘예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한반도 대부흥’ 옥성득 지음/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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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함흥의 맥래 선교사와 일본인 기독교인 병사. 화살표는 서경조이다. 당시 일본군과 주한 개신교선교사들은 대체로 원만한 권계를 유지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