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의 경건과 실천

02월 12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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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자의 경건과 실천

   

2015.02.19 14: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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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고 나온 교인들이 교회 앞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일제히 교차로를 건넜다고 하자.
과연 그들의 신앙과 삶은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 속에는 ‘신앙과 삶의 불일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자의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도’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호익 교수(대전신대 조직신학)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기도가 기복적 간구 및 교회성장을 위한 간청기도가 주(主)를 이루고 있다며,
‘신앙과 삶의 일치’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 기도의 본래 의미가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상기도, 금식기도 등 여러 양식의 기도를 강조하는데, 대부분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는 사적이고 기복적인 간구나, 교회의 성장과 건축을 위한 목회적 간청기도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교회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공적 기도’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6.25 전후 민족통일을 위해 3.8선이 무너지게 해달라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고, 필자가 어렸을 때 장로님들의 대표기도에도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며 “오늘날 한국교회의 기도에 길선주 시대 기도의 특징인 공적 기도의 내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개인적이고 개교회적인 간구와 더불어 한국교회와 한국민족이 당면한 문제들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위기들에 대한 공적인 기도가 다시 한 번 강조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진 금식기도의 의미도 왜곡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금식기도도 간청기도의 방편으로, 소원성취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드려지고 있다”며
“그러나 금식기도의 영성적인 의미는 육체와 물질의 소욕을 이기는 훈련이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남에게 주는 것이 참된 금식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수도사들은 주린 자에게 구제할 것이 없을 경우 자신이 먹어야 할 음식을 나눠주고 금식했다”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사야 58장 7절)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라는 의미에서 ‘듣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우리의 간청이 이뤄지는 것이 기도의 응답이라는 이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경청하기 위해 침묵하는 기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도가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의 사정을 시시콜콜 날마다 반복하는 독백적인 측면이 강하다”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기를 구하기보다는 우리의 세속적인 요구를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 이뤄주시기를 강요하고 고집하면서 그것이 대단한 신앙인 것처럼 칭송한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바울이 ‘육체의 가시가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도 기도의 응답”이라며 “우리가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이기적인 간구를 할 때 이를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는 것도
듣는 기도이며 응답 받는 기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시급한 것이 ‘신앙과 삶의 일치’이며, 기도생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고 나온 교인들이 교회 앞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일제히 교차로를 건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는 선교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한국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기도와 삶, 신앙과 삶의 불일치”라고 말했다.
이어 “신앙과 생활, 기도와 삶의 일치 없이는 생활 전체를 통해 신앙을 증거할 수 없다”며
 “일상생활에서 ‘기도와 삶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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