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뉴저지주 잉글우드 드와이트모로 고등학교. 10일 오전 9시30분(현지시간)이 되자 차량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전 10시부터 학교 대강당에서 열리는 필그림선교교회(양춘길 목사)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한 행렬이었다.
850석 강당은 금세 찼다. 간이의자에 앉아있던 양춘길 목사가 등단했다. 양 목사는 “새에게 날개는 짐이 아니라 날 수 있는 특권을 뜻한다”면서 “마찬가지로 예수의 제자에게 멍에는 짐이 아니라 특권이다.
혹시라도 삶이 힘들다면 그것은 낙망할 이유가 아니라 더욱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생의 짐이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를 더욱 가까이 이끄시는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위로하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2000여명의 성도들은 2017년 12월까지만 해도 서쪽으로 10㎞ 떨어진 파라무스의 번듯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은 미국장로회(PCUSA)가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목사안수를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성도들은 신앙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교단 탈퇴를 결의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1200만 달러(약 135억원) 상당의 예배당 소유권이 교단법에 따라 노회로 넘어갔다. 성도들은 대지면적 1만6198㎡(4900평)의 현대식 건물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시작했다.
이호진(49) 장로는 “파라무스 예배당을 떠나 장년 1500명과 교회학교 학생 500명이 한꺼번에 예배드릴 공간을 찾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면서 “매주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내린 결단을 후회하지 않는다.
훗날 잊지 못할 영적 유산이 될 것”이라고 울먹였다.
성재용(49) 장로도 “예배당 열쇠를 PCUSA 동부한미노회에 넘겨주고 우여곡절 끝에 외국인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렸는데, 등록 교인보다 훨씬 많은 교인이 출석해 다들 놀랐다”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머리나 가슴으로 알던 신앙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강당에선 대예배가 3차례 진행된다. 영·유아부, 유년부, 유치부, 초·중·고등부 예배는 바로 옆 제니스 디스무스 중학교 교실 6개와 중강당에서 열린다. 교사와 예배위원들은 2개 중·고등학교에서 열리는 17차례의 크고 작은 예배를 위해 오전 7시부터 움직인다.
강단 꽃꽂이, 헌금함, 방송장비, 성경공부 교재 등을 트럭 1대와 자가용 10대를 동원해 옮긴다. 새벽기도회는 교단이 다른 인근 한인교회로 흩어져 드린다. 수요예배와 주중 성경공부는 학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티넥선교센터에서 갖는다.
성도들은 교회 역사가 2017년 12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교회가 ‘선교적 교회 공동체’로 탈바꿈했다는 것이었다.
이승란(57·여) 권사는 “광야 생활을 시작하면서 성도들이 동네 카페와 빵집, 가정집을 전전하며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했다”며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셀(소그룹)의 내실을 기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키우는 교회가 되기 위해 뛰고 있다”고 귀띔했다.
윤규환(17)군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필그림선교교회가 증명해냈다”면서 “불편함과 편안함은 차이에 불과하며 그것을 능가하는 것은 하나 됨”이라고 말했다.
양 목사는 “성도들이 광야 같은 환경 속에서도 영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며 “담임목사를 믿고 따라와 준 것에 감사하다. 앞으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면서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교회들이 많다. 차이는 그것을 현장에서 증명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