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에 파견된 경찰관이 경찰 비위와 관련한 인권위 내부 보고서를 유출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내부 보고서 유출 행위는 인권위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해당 경찰관은 경찰서로 복귀하고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6일 경찰과 인권위에 따르면 인권위에 파견돼 조사 업무를 맡고 있던 A경감은 지난 9월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피의자에게 가혹행위를 했다는 진정과 관련한 내부 조사 결과 보고서를 경찰청에 넘겼다.
경찰청은 이 보고서를 통해 인권위의 입장을 파악하고 결정문 공개 수위를 낮춰달라고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경찰 측은 당시 "양천서 사건은 증거가 없는 의혹 수준인데도 인권위가 진정인의 일방적 주장에 기초한 결정문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이후 보고서 유출 의혹이 일자 자체 조사를 벌여 A경감이 내부 시스템에 접속해 문서를 빼낸 사실을 확인했으며 경찰청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징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A경감은 지난달 경찰청장 명의의 인사에서 파견해제 된 뒤 원래 소속이던 경찰서로 복귀했다.
인권위는 "내부 보고서 유출은 명백한 법 위반이자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A경감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경찰청 소속이라 자체 징계 권한이 없어 경찰청에 징계를 요구했다"라고 해명했다.
인권위법은 위원, 조정위원, 자문위원 또는 직원이거나 그 직에 재직했던 사람은 물론 위원회에 파견되거나 위원회의 위촉에 의해 위원회 업무를 수행하거나 수행했던 사람은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어겼을 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인권위는 "형사 고발로 인권위 내부 시스템 서버를 압수수색하게 되면 내부의 다른 자료도 모두 넘겨야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고발 대상이 경찰이다보니..."라며 경찰관을 경찰에 고발하는 데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경찰청 관계자는 "규정 위반은 사실이지만 통상적 수준의 기관 간 업무 협조로 여겨진다"며 "보고서가 그대로 나가면 피의사실 공표 소지도 있어 피진정인(양천서 경찰관)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위에 협조 요청을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가 형사고발을 기피한 데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권정책연구소 김형완 소장은 "인권위법에 비밀누설의 금지와 그에 대한 처벌 조항이 명시돼 있는데 인권위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명백한 범죄행위를 인지하고도 인권위가 수사 의뢰나 고발 없이 해당 경찰관을 복귀시킨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며 "경찰의 인권침해 근절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이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