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소방관의 아내다.
소방관의 아내가 되려고 해서 그의 아내가 된 것도 아니다.
한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하니 그 남자의 직업이 소방관이었다.
영화 ‘해운대’를 보면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두고 한 시민을 구하기 위해 거대한 쓰나미 속으로 몸을 던진 구조대원이 나온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이 먹먹해서 한동안 침묵만 했던 것 같다.
그 구조대원은 재난 앞에서 영웅적 주인공이 되기 위해 목숨을 던진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 순간 자신의 구조대원이라는 본분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는 내 남편이 그러하듯 직업이 주어지는 순간 불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뛰어 들었을 것이다.
그 쓰나미가 두렵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애타게 부르는데 놓칠 수 없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구조대원으로써 사명을 다한 것이다.
누구는 소방관의 아내는 ‘불꽃의 심장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싸이렌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았던 시간이 있었다.
관할지역 화재 뉴스는 먼저 나오고 교대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출동이니 전화도 못 해보고 어제 본 남편의 얼굴이 마지막은 아니었을까 공포에 시달리는 때도 있었다.
나는 남편 앞에서 언제나 씩씩한 척 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불꽃의 심장도 가지고 있지를 않다.
어쩌면 이길 수 없는 재난에 도전하는 남편을 위해 양초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할 뿐이다.
불꽃의 심장은 아닐지라도 내 몸을 태워 불을 밝힐 줄 아는 양초 같은 아내로 사는 것이 숙명이라 생각했다.
“남편이 소방관이라고요? 그거 위험해서 어떻게 해요? 불안하겠어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마음은 편치가 않다.
하지만 사나이로 태어나 한 인간의 나약한 공포를 이겨내고 그것이 내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목숨을 지키는 직업인으로 사는 것이라면 이 보다 훌륭한 직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극한 직업이 있기에 모두가 존재하는 가치가 되고 빛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나는 그런 훌륭한 직업의 아내가 되었으니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한 내면을 가진 아내로 살아갈 것이다.
※ 인천공단소방서 소방교 진기종의 부인 최서연(연수구 동춘2동, 3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