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국민들이 신뢰하는 직업 1위, 소방공무원.
응급구조과를 졸업한 나는 졸업과 동시에 소방공무원이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오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2009년 8월, 나는 그토록 바라던 119구급대원이 되었다. 긴장됐던 임용식 날의 선서문 앞에 나를 비롯한 모든 신규 소방공무원들이 각자의 큰 포부를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임용 후 2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나는 처음에 가졌던 사명감과 책임감에 부흥할 수 없는 몇몇 현실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119구급차는 위험에 처한 응급환자에게 필요한 처치 및 이송을 위해 출동하는 소방차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구급차의 용도와는 다르게 이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술에 취해 집에 누워 꼼짝 할 수 없으니 직접 와서 거실에 있는 유리조각을 치워 달라는 아저씨, 친구가 술에 취해 일어나지 못 하고 계속 자고 있으니 집까지 태워달라는 아저씨, 어머니가 관절염으로 외래진료를 받아야 하니 병원에 가자는 아주머니, 병원 이송 후 돌아가는 구급대원에게 보호자로 함께 온 며느리를 다시 집에 태워다 달라는 시아버지 등... 그동안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황당하면서 비응급인 출동이 비일비재하다.
♨ 구급차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119구급대가 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혹시나 응급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방공무원의 무조건적인 봉사정신을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도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19구급대가 비응급 환자나 단순 만취자라는 이유로 이송의 곤란함을 표하게 되면 뜻하지 않게 시민들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비응급 상황에서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들 중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당황하거나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곳이 생각나지 않아 119에 신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반면 소수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마치 구급차가 택시인 듯 이용하는 시민들도 있다.
비응급 상황에 119구급대가 출동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비응급 상황에서 구급대가 출동 중일 때, 구급대의 관내에서 응급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관내의 구급차가 출동 중이기 때문에 타관내의 구급차가 출동을 나가게 되고, 신고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당연히 관내의 구급차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심폐소생술 등이 필요한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 구급대의 투입이 지연되면서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하였다. 시민들이 나 하나의 편의를 위해 구급차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가 내 가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의 시민들에게 119구급대가 좀 더 빨리 달려가 꺼져가는 한 생명을 살려 낼 수 있다고 본다.
- 남동소방서 구월119안전센터 탁윤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