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9시. “띵동”, “띵동”, “구급출동”, “구급출동”, “논현119안전센터 구급출동, 소래포구 OOO모텔 앞 졸도환자” 평소와 다를 거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졸도환자.
☞ 119구급대원의 졸도환자와 일반인들의 졸도환자는 차이가 많다.
일반인들에게 졸도환자는 만취상태인 사람들도 졸도환자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졸도환자라는 신고내용은 그 심각성을 잊은 지 오래된 일이다.
‘또 누군가 밤새 술을 먹고 길에서 자고 있구나’ 라는 생각으로 현장으로 가며 신고자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 중 날카로운 무언가가 나를 찌르는 듯 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이 환자는 다른 무언가의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고자는 앞에서 걸어가던 여자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 후 신고 한 것이다.
어김없이 정적을 깨는 싸이렌 소리를 울리며 우린 현장으로 갔다.
역시나 환자는 안면에 혈색이 없이 쓰러져 있었다.
불규칙적인 호흡만이 환자가 아직 생명의 줄을 놓지 않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 하였다.
하지만 환자의 심장은 이미 뛰지 않고 있었다.
주저 없이 우린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며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으려 노력하였다.
심폐소생술과 동시에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이송 전 환자에게 제세동기를 이용한 전기적 충격을 1회 주었다. (여기서 제세동기를 이용한 전기적 충격이라 함은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병원에서 환자에게 다리미판처럼 생긴 것으로 환자에 가슴에 밀착하여 “빵” 하면 환자는 신체가 침대에서 튀어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의료기기와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심장은 여전히 뛰지 않았다.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며 심폐소생술을 다시 실시하였다.
약 5분간의 심폐소생술 후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난 나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환자의 맥박을 믿을 수가 없었다.
확인. 또 확인.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난 환자의 맥박을 지속적으로 확인하였다.
다시 뛰기 시작한 환자의 심장과 불규칙적으로 호흡을 하고 있는 환자의 호흡을 보조하며 환자의 가슴에 있는 수술흔적을 파악하기 위하여 환자의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찾았다.
이 환자는 무슨 수술을 받은 것인지 알기위해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잠겨있는 휴대폰. 비밀번호로 잠겨있는 휴대폰. 환자의 가슴에 있는 수술 흔적을 알 수가 없는 것인가라는 체념을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0000’를 눌렀다.
통화가 연결이 되었다.
환자의 남편이 전화를 받아 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ooo병원으로 이송하고 있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얘기를 했다.
환자는 심장판막질환으로 수술을 받았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 순간 병원에 도착하였다.
며칠이 지난 후 한통의 전화가 왔다.
환자가 큰 후유증 없이 의식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인지 몇 번을 확인 또 확인하였다.
며칠이 지나고 우린 환자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그 환자는 검사를 받기위해 검사실로 가고 병실엔 나와 통화를 했던 남편과 환자의 어머니가 있었다.
의식이 회복된 환자를 볼 수 없다는 작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환자의 남편과 어머니로부터 현재 환자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 검사로 인해 볼 수 없을 거라는 환자가 병실로 돌아왔다.
그녀에게선 당시의 창백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혈기 있는 얼굴과 우리가 누구인지 호기심이 보였다.
그녀는 우릴 알 수 없었다.
그때 그녀는 의식이 없었기에. 내 기억에도 그녀는 없었다.
내가 보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은 혈색이 완연했고 불안했던 호흡은 자연스러웠으며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십여분간 환자,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환자와 보호자는 우리에게 작은 약속을 하나 해주었다.
퇴원을 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병원을 나서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으며 무엇인지 모를 감동이 나의 가슴을 흔들고 있었다.
- 인천공단소방서 논현119안전센터 구급대원 소방사 백세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