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그결국은

12월 23일(월)

홈 > 일반뉴스 > 사설/칼럼
사설/칼럼

자살 그결국은

   

2009.09.19 14:14 입력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OECD국가 중 자살율 제 1위의 대한민국,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옛 어른들은 죽음을 가리켜 불귀의 객이 되는 길이라고 했다. 결코 돌이킬 수도 없고 돌아 올 수도 없는 죽음의 길을 스스로 재촉하여 선택하는 것이 자살이 아닌가? 혹자는 죽으면 그만이지, 사후 세계인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는 죽어봐야 알지 않느냐고 한다. 물론 죽어야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죽고나서 천국과 지옥이 실존한다면 그땐 어찌할 것인가?  이미 회개할 기회는 사라진 상태일테니...  회개를 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내가 이 세상에 육체로 존재할 때에 주어지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일깨워주듯이 우리들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아야 된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 역시 그러하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야 한다. 예수님도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을 통해서 죽은 후에는 구원받을(회개할) 기회가 없음을 일러 주셨다. 자살은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을 버리는 악한 행위이기에,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 받음(베드로전서1:9)을 포기하는 행동이 되므로 자기 영혼을 지옥에 내버리는 가장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사실. 먹을 양식마저도 풍족하지 못했던 1960년대에는 끼니를 굶으면서도 자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가 여전히 후진국을 면치 못하던 시절에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거듭 세워가면서 온 국민이 어찌하든지 악착같이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던 그 시절에도 자살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새마을운동을 펼쳐나가던 지난 날의 우리나라 국민들의 모습이 못내 그리워지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 시절과는 도무지 비교할수 없는 경제적인 발전을 이룬 작금에 이르러서 오히려 자기 생명을 파리 목숨 여기듯이 자기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마치 유행성 전염병처럼 사회 전반에 번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목을 매달거나 집안이나 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 놓거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거나 농약을 마시거나 강과 바다에 투신하는 등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2~3년 전부터는 젊고 아리따운 탤런트들을 위시하여 유명한 인기 연예인들이 앞다투어 자살을 하고, 성적이 떨어지거나 수능시험에 실패한 학생들까지 경쟁을 하듯이 자살하는 이 시대의 사회현상을 지켜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은 비단 목회자만 느끼는 심경은 아니리라. 최근에 와서는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국가 총수를 역임했던 분마저 벼랑에서 몸을 던지는 가슴 아픈 불행한 일이 발생하고 나니 대다수의 국민이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사태에 이르고야 말았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누가 뭐래도 자살은 근절되어야 한다. 더구나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써 하나님 앞에 송구한 것은 버젓이 자살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성도 故 아무개는 천국에 들어갔다'며 유가족을 거짓(?)으로 위로하며 장례식을 집례하는 판국이 되어버린 현실 때문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되었던 자들이, 어떤 이유에서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구원의 조건인 '믿음'을 버리는 행위이다. 즉 생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도전하는 죄를 짓는 것이므로 전혀 구원과는 무관하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예수님께 대한 배신은 그 죄의 경중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베드로는 통곡을 하며 회개를 하였고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하였기에, 베드로는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지만 가룟 유다는 자살을 하였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잃어버려서 지옥의 형벌을 면할 길이 없어진 것이다. 성경은 믿음을 지켜야 된다고 선언한다. 사도 바울도 자기자신은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으며 주님께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욥의 인내를 배워야 할 시대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자살을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임을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9:27)라고 경고하시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복음5:29)고 말씀한다.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육체의 생명이 유한한 것임을 일깨워주심과 동시에 영혼의 존귀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8월 29일부터 9월 18일까지 21일동안 안양갈멜산금식기도원에서 머물며 열하루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동안 한 방을 쓰게 된 어느 목사님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몇 분 목사님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는 그 분의 말이 "예수님을 믿다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자살을 했겠느냐? 그런 탈랜트의 장례식에 성도라는 호칭을 사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목회자들은 너무 독선적이고 잘못된 것 아니냐?"라는 것이다. 참으로 염려되고 우려가 되어 성경 몇 군데를 찾아가며 그의 생각이 바뀌도록 권면하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만약 자살해도 구원이 유효하고 천국을 갈 수 있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자살할 목회자와 성도들이 태반이 넘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모른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니까 사망권세 잡은 자인 마귀가 자살이라는 무기로 숱한 영혼들을 노략질하고 있다.

 

누군가가 그랬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이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 가운데에서 내 삶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자살은 더 크고 영원한 고통의 현장을 부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도들을 비롯하며 수많은 주의 종들과 믿음의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였지 자살을 한 사람은 없다. 자살만큼 어리석고 비겁한 행동은 없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자살이다. 뿐만 아니라 자살하는 본인에게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자살 없는 나라가 되어야겠다. 생명은 소중하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우리들의 영혼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다. 자살은 꿈에도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

기사에 대한 의견

댓글 TOP 뉴스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