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서로의 신뢰는 인간 존엄성의 기본이다.
그런데 가족 간의 불화, 정치권의 분열, 한 민족이면서도 금방 터질 것 같은 남북 간의 격한 대립,
이처럼 각계각처에서 일어나는 상호불신과 갈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양보와 배려가 없으면 새로운 개혁은 기대하기 힘들다.
세상에 똑같은 것이 어디에 있을까?
시냇가의 조약돌도 모양, 색깔, 무게가 다 틀리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양하기만 하다.
다른 개성과 인격체를 인정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허황된 탐욕의 짐과 과욕의 봇짐을 벗고 상호 견제의 과정을 거쳐
양보하며 조화를 이룬다면 세상은 더욱 신뢰를 회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내 것을 양보 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은 이 시대의 진정한 승리자이다.
베풂은 복이며 결국 나를 이롭게 하는 근본이 된다.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에게 말하기를 “네 앞에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하였다.
아브라함은 삶의 기초가 되는 좋은 땅을 포기하고 조카인 롯에게 선택권을 주는 양보를 했다.
그런데 일시적인 양보를 했더니 롯이 떠난 후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보게 하시고 보이는 모든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라 약속하셨다.(창13:14~15)
또한 그의 아들 이삭은 우물을 다섯 번이나 파고 옮기면서도 우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잠잠히 내어 주었다.(창26:12~33)
그런데 양보하고 쫓겨나는 것 같았지만 계속 형통하는 이삭을 보게 된다.
세상의 권리를 양보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양보의 미덕을 통해서 거부가 되는 가문이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양보는 복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추운 겨울날 한 아이가 길모퉁이에서 너무도 불쌍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수도사가 하늘을 향하여 왜 대책도 없이 저 아이를 세상에 보내셨냐고 항의했더니
하늘에서 응답하기를 왜 대책이 없다는 것이냐 그를 위해서 너를 보냈다 하더란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영역이 우리의 몫이다. 내가 먼저 보았으면 내가 해야 한다.
연합기독방송선교회의 박찬영 목사님은 봉사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그는 암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여 있는 동안에 위문오신 분들이 주고 가신 위로금을 모았다가 퇴원 후에
물품을 구입하여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베풂과 양보의 심성 때문에 선교 센터에는 언제나 가난한 이웃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으며
월례회 때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멤버들이 모여들어 힘찬 예배를 드린다.
이 선교회는 수도권 일대의 장애인 시설, 요양원과 요양병원, 은퇴 목사님들이 모여 사시는 아파트, 독거노인가구, 자립센터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이, 미용 마사지 서비스, 노래와 춤, 악기를 가지고 위로하고, 각종 물품들을 구입하여 전달하고 있다.
그의 넉넉한 마음과 사용되는 많은 비용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소유의 욕심을 버리고 양보하는 것에서 나오는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신앙은 양보와 희생이다.
양보와 희생의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
정당한 권리가 있었지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죄의 짐을 대신 지셨던 예수님의 양보와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연합기독방송선교회는 이 시대에 예수님의 양보를 습관화하여 실천함으로서 예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고 있다.
매월 요양병원을 방문하여 봉사하시고 언제나 감동을 주는 선교회 여러분께 지면을 통하여 감사를 드린다.
글쓴이 // 미가요양병원 행정원장 안영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