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의 역사 와 신학적의미
1. 사순절의 역사
우리가 교회력과 관련하여 초대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초대교회는 매주일을 부활을 위한 축제의 날로 삼고 예배를 계속하였다.
그들은 비록 오늘과 같은 완전한 교회력은 없었으나 주님의 부활에 초점을 맞춘 매주일의 예배는 “작은 부활절”(little Easter)로서 교회력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5] 특별히 이들이 맞는 주일은 언제나 부활과 연관을 지었기에 기쁨과 감사와 승리의 축제가 예배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6] 비록 그들은 심한 박해에 시달리는 현실에 있으면서도 날마다 주의 날을 기다리고, 이 날에 모이면 그의 부활을 축하하면서 기쁨과 소망을 가진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렇게 매주일 예배(weekly Easter)를 주님의 부활에 모든 신앙의 초점을 모은 초대교회는 자연히 주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 주(“big Easter”)[7]에 연례부활절을 지키게 되었고, 이 연례부활절을 교회력의 중심으로 축하하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부활절 때에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 영원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기리고 감사하면서 세례식을 베풀었다. 유월절(Pascha)이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넌 뒤에 노예상태로부터 완전한 자유함을 얻은 사건의 기념이었듯이, 초대교회는 세례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 하나님 안에서 참 자유함을 얻는 사건으로 보았던 것이다.[8]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5)
그래서 터툴리안은 “부활절은 특히 세례를 베푸는 데 의미있는 날이다”[9]고 하였고, 또한 히폴리투스는 기록하기를 “세례 받을 사람들은 성주간 금요일과 토요일에 금식을 하고, 토요일 저녁에는 철야기도를 드리도록 했다. 그리고 부활주일에 새벽에 닭이 울 무렵, 즉 예수께서 부활하신 시간 무렵에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신 것처럼 몸을 물 속에 잠갔다가 일어남으로써 세례를 받았다”[10]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성 바질(St. Basil of Caesarea)은 “부활절은 세례 받기에 가장 적합한 날이다. 이 날은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세례는 우리 속에 부활의 씨를 심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부활하신 날에 세례를 받음으로 부활의 은총을 받자”[11]고 설교하였다. 그러므로 4세기말에 이르러 부활절은 교회에서 거룩한 세례를 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절기가 되었던 것이다.[12]
결국 초대교회는 세례와 깊은 관계가 있는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준비하는 기간을 갖게 되었는데, 그 기간이 바로 사순절이다. 즉 그들은 그토록 귀중한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 전에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금식하며 회개하는 가운데 세례를 준비하고, 새로이 세례 받는 교인들과 함께 감격의 부활주일을 맞이하였던 것이다.[13] 이것이 바로 사순절의 그 역사적인 배경이다.
2. 사순절의 신학적 의미
1) 세례 받을 자들의 준비기간으로서의 사순절
우리가 사순절을 이해하려고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순절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앞서 말한 대로 세례지원자들을 위한 마지막 준비단계로써 시작이 되었다는 점이다.[14] 즉 초대교회 당시에는 세례지원자들은 사순절 기간동안 일상 생활에서부터 떨어져 상당히 어려운 준비를 거친 후 부활주일 전날 밤에서 새벽때나(Easter Vigil), 부활주일 아침에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15]
이렇게 부활주일에 세례를 받기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으로 시작된 사순절은 참회의 수요일(또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부터 시작이 된다. 사순절 시작의 날로서 참회의 수요일이 확정된 것은 주후 6세기의 Gregory I 교황때 부터이다.[16] 부활절 날짜에 따라 결정이 되는 이 날은 2월 4일부터 3월 11일 사이에 온다. 이 날 사람들은 회개를 상징하는 베옷을 입고 그 위에 재를 뿌린다.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는 것은 모두 성경에서는 회개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교회는 신자들의 머리 위에 재를 뿌리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창 3:19)고 말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렇게 참회의 수요일부터 시작하는 사순절은 처음 1세기에는 단 40시간으로 지켰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서 40시간동안 있었던 것과 일치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3세기에 이르러서는 부활주일 전 한 주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지키다가, 나중에 30일간으로 연장되었으며, 마침내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처음으로 “사십일”로 정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기록은 주후 330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의 편지에도 나타나있다.[17] 주후 348년 예루살렘의 시릴(Cyril)의 [교리문답 강의](Catechetical Lectures of Cyril of Jerusalem)에도 40일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시릴(Cyril)은 이때 세례 받는 이들을 가르치면서 “당신들은 오랫동안 은총의 기간과 참회를 위한 40일을 보내야 합니다”[18]라고 하여 사순절의 원래 의미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기록들에 의하면 이 사순절 기간에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 때 세례를 받기 위하여 훈련받고 있는 세례후보자들에게 특별히 금식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후에 이 금식은 교회의 모든 경건한 백성들에게도 요구되었다. 이미 언급한 바대로 주후 3세기의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기록에 의하면 부활주일에 세례를 받을 사람들은 금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부활주일 전야를 온전히 금식하도록 하였다.[19] 그리고 4세기에 이르러 부활절에 이르기 전 사순절 기간동안 모든 교인들이 세례 받을 사람들과 함께 금식에 동참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즉 어거스틴의 시대에 사순절은 세례 받을 자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수난에 접하고 머무르는 준비의 기간이 된 것이다.[20] 이 점에 대해서 알란 멕아더(Allan McArthur)는 이렇게 말한다.
“40일간의 금식은 세례 받기 위하여 준비하던 세례후보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에 있어서 전 교회가 40일간의 금식을 하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적어도 훈련받고 있던 세례후보자들과 보다 경건한 사람들은 이 40일간의 사순절을 금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21]
그러므로 이 40일간의 사순절 기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초대교회가 성례전적인 삶속에서 교회공동체의 자기정체를 확실히 하는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세례를 맞이하기 위하여 엄숙하고 거룩하게 자신을 준비하신 것처럼(광야에서의 40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한 당신의 공생애의 준비), 매해 부활주일을 맞이하기 위하여 저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똑같은 모습으로 준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순절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는 세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례 안에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2) 개인적인 경건과 회개의 사순절
원래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 특별히 부활주일에 세례 받을 사람들의 훈련기간이요, 준비기간으로 시작되었던 사순절은 어거스틴 때에 이르러서는 세례와 상관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수난에 접하고 머무르는 준비의 기간으로 발전되어 갔다. 즉 사순절은 세례 받는 이들의 준비기간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 더 나아가 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 및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보이는 자기 희생적(God's Self-giving) 사랑을 기억하는 절기로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순절은 시간이 흐를수록 엄숙한 예배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생활을 강조하게 되었고,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부정하고 참회하는 기간으로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본래 부활주일 아침에 세례 받기 위한 자들의 준비기간으로 시작되었던 사순절의 의미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자기를 부정하고 참회하는 기간으로 변화되어 간 데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인세례(Adult Baptism)의 사라져감이었다.[22] 즉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리하여 5세기와 특별히 6세기에 이르러 기독교인 부모들의 아이들을 위한 유아세례(Infant Baptism)가 대대적으로 행하여졌고, 결과적으로 사순절 기간동안 성인세례를 받기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줄어갔다. 결국 사순절의 세례와 관련한 의미는 점점 사라져 갔고, 반면에 참회 적인 차원의 사순절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23] 그래서 토마스 탈리(Thomas Talley)는 이 변화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하고 있다.
“사순절의 역사는 세례를 위한 준비로서의 의미에서 성목요일에 교회 앞에 공식적인 화해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공적인 참회의 의미로 그 강조점이 변화되어 감을 보여준다. 유아세례의 증가는 사순절의 주요 관심을 세례로부터 참회자의 화해로 향하게 하였다”[24]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단어를 접하게 된다. 즉 그것은 “참회자의 화해”(the reconciliation of penitents)라는 말이다. 이 말은 교회력과 관련하여 살펴볼 때 특별히 고난주간 중의 하루인 성목요일(Maundy Thursday)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단어이다. 복음서에 의하면(특별히 요한복음 13장) 예수님께서는 이 날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찬식과 세족식을 베풀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요한 13:34)을 주셨다. 우리는 성목요일을 Maunday Thursday라고도 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계명(mandatum novum: A New Covenant)을 주신 것을 뜻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날을 화해와 용서의 날로 정하여 지키게 되었는데, 특별히 그 동안 교회 앞에 죄를 짓고 출교(Ex-Communication)당한 사람들이 이 날 온 회중앞에서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과 죄를 고백하고(public penitence), 회중들이 그들을 받아들이는 날로서의 화해의식(reconciliation)을 거행하였던 것이다.[25] 그러므로 공중 회개 자들의 화해는 수난주간에 행하여졌던 아주 중요한 의식이었으며, 이를 흔히 “참회자의 화해”(reconciliation of penitents)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순절의 절정에 해당하는 수난주간에 있었던 이 “참회자의 화해”는 세례의 의미가 점점 사라져 감에 따라 사순절 절기 동안 그 의미가 더욱 강화되어 갔으며, 결국 사순절은 회개와 참회의 의미가 강한 절기로 그 의미가 변화되어 갔던 것이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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