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아세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의 어느 조용한 카페. 번역협동조합 최재직 사무국장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의 그 일을 회상한다. 누군가로부터 위의 질문을 들었을 때 그 순간 말이다. 무언가 대단한 사람들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최 사무국장.
하지만 국내 제1호 협동조합이 대리운전협동조합이었다는 답을 듣는 순간 그는 충격에 빠진다. 대리운전업체들이 기사들로부터 받아가는 수수료가 30% 가까이 되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는 것을 안 최 사무국장.
보통 번역 업체들이 번역사들로부터 가져가는 수수료가 대리운전업계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고, 자신부터 시작해서 번역사들이 이에 대해 아무 문제점을 못 느껴왔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충격 받은 그는 결심한다. 12년을 몸담았던 보험회사를 박차고, 번역사들을 위한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로 한 것.
“번역사들이 제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제대로 대우받으면서 번역 일 신명나게 해봅시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최 사무국장은 아내부터 설득했다. 아랍어 전공자인 아내는 삼성전기에서 번역사로 6년간 근무한 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번역사들이 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설득했으며 결국 이에 동참했다.
번역협동조합에서는 수수료율을 상당히 낮춰 번역하는 사람이 매출의 70%를 가져간다. 나머지는 상근영업자인 최 사무국장의 급여로 10%, 일감을 따온 사람에게 10%의 영업수수료를 지급하고 나머지 10%는 재투자를 위해 내부에 적립한다.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사무실은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숨 가쁜 일정을 거쳐 지난해 8월 사업자등록증을 받았으며, 받은 지 1년도 안됐음에도 불구 조합원은 무려 81명(통번역자 51명, 일반 30명). 통·번역 일을 하는 지인들과 대학 동문들이 합류했고, 조합원이 된 그들이 자신의 친구들을 조합원으로 데려온 것이다.
“국제대회? 우리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정말 제대로 해낼 자신 있습니다!”
이들은 11개 언어를 즉시 진행할 수 있다. 웬만한 번역 업체들은 저리가라다. 그러한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두세달 만에 굵직한 국제포럼의 진행을 맡았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에서 사흘 동안 연 ‘국제사회적경제포럼’에서 전체 번역과 일부 통역을 맡은 것이다.
번역협동조합의 올해 목표는 상당히 크다. 200명의 조합원을 두어 큰 행사를 맡는 것이다. 7월에 열리는 협동조합 주간 같은 사회적 경제 행사에서 두드러진 소임을 맡고, 11월 국제사회적경제포럼 행사에서는 통역까지 통째로 맡을 수 있기를 최 사무국장은 소망한다.
그렇다면 번역협동조합이 일반 번역 업체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 ‘원가 공개’라고 최 사무국장은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다른 번역 업체보다 반드시 더 많은 돈을 번역사들에게 지급하진 못하지만 원가와 법인통장을 공개하여 수입을 대부분 번역사들에게 돌린다는 것.
“통번역 통한 사회공헌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또한 사회공헌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위한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일반조합원이면서 노무사로 일하는 사람이 베트남에서 온 구미공단 이주노동자의 산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통번역이 필요하게 된 것. 그 때 베트남 출신의 조합원이 실비만 받고 선뜻 나서주겠다 했고, 결과적으로 일이 잘 해결됐다고 한다.
최 사무국장은 앞으로 2년 동안 번역협동조합을 위해 열심히 뛸 것이라고 한다. 번역협동조합의 사무국장으로서 받는 임금은 적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전체 매출의 10%만을 받기 때문이다. 거기에 번역 일감을 따오고 전국 각지에 있는 조합원들을 챙기는 것이 만만치 않지만 그는 웃으며 해내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임무는 3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번역 일감을 따오는 것, 둘째는 신규 조합원 유치, 마지막으로 기존 조합 만나기. 따로 일하는 번역사들의 특성상 자주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자신이 거주하는 서대문구 내의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자주 만나 진정한 ‘협동조합’을 이루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협동조합을 결성,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가운데 최 사무국장이 이끄는 번역협동조합이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걷게 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태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