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진주 운석 발견 석 달 ‘끝나지 않은 소동’
지난 5일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를 찾았다. 이곳은 남극에서 발견한 달 운석 등 운석 240개와 진주운석 샘플이 보관돼 있다.
출입증 없이는 건물 출입이 불가능했다. 연구소에 진주 운석이 들어오면서 보안이 더 강화됐다.
운석보관실에는 두께가 15㎝에 이르는 철제문이 설치됐다. 최신 금고 1개와 감시카메라 2대가 추가로 설치됐다.
누군가 금고를 열면 팀장인 이종익 박사의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가 전송된다.
희귀한 달 운석이 진주 운석 덕분에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됐다.
진주 운석이 떨어진 지 석 달이 지났지만 극지연구소 운석팀은 여전히 바쁘다.
진주 운석 사건 이후 운석을 감정해달라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루 1건씩 운석 감정 요청이 들어온다.
이 박사 사무실 한쪽에는 이날 배달된 암석 소포들이 놓여 있었다. 사진을 찍어 e메일로 보내 운석 여부를 묻는 이들도 생겼다고 한다.
최근에는 수석 수집가들이 가지고 있던 기암괴석이 연구실로 들어오고 있다.
며칠 전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5㎏짜리 철운석이 아니냐며 감정을 부탁했다. 운석이 아니라 지구 마그마가 굳어 생긴 용암이었다.
경기 화성에 사는 한 중년 남성은 운석 감정을 해달라며 돌들이 잔뜩 담긴 배낭을 짊어지고 왔다.
운석이 아닌 현무암, 화강암뿐이었다. 운석이 아니라는 말에 중년 남성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 박사는 “운석 감정을 해달라는 탓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운석 감정은 더 이상 안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먼 곳에서 배낭에 담아 인천까지 온 사람에게 돌아가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운석 감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운석 연구에 관한 한 극지연구소와 쌍벽을 이루는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의 최변각 교수팀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부터 사진으로 운석 감정을 해주던 서울대 운석연구실은 지난 4월30일 “운석 감정 신청을 받지 않겠다”며 두 손을 들었다.
‘일반인도 운석을 구별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박사는 “검은색 용융각이 있는지를 보라”고 답했다.
용융각(Fusion crust)은 운석이 탄 자국이다. 운석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1㎜ 내외의 검은 껍질을 말한다.
운석이 빠른 속도로 대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마찰열이 생긴다. 마찰열에 의해 운석 표면이 녹아 떨어져 나간다.
대기권에 진입하면 마찰열이 줄어드는데 마지막에 녹았던 부분이 빠르게 식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용융각이다.
떨어진 지 오래된 운석들은 풍화작용으로 용융각을 찾기 어렵지만 진주 운석처럼 갓 떨어진 운석에서는 쉽게 발견된다.
다만 지구 암석도 풍화를 받으면 겉부분에 어두운 색의 껍질이 생기는 경우도 있어 운석 여부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성분분석을 맡겨야 한다.
이 박사는 “운석이 떨어진 진주 파프리카 농장에 갔더니 구덩이도 없고 비닐하우스에 구멍만 뚫린 채 돌덩이가 진흙에 처박혀 있었다.
알루미늄 재질 부직포를 녹여 돌덩이 표면이 진흙과 알루미늄으로 떡칠이 돼 있었고 파이프관을 터트려 물에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돌덩이를 연구소로 가져와 액체질소를 사용해 조심스럽게 표면의 진흙과 알루미늄을 제거했다.
표면에 용융각이 살아있었다. 이 박사는 “갓 떨어진 운석은 나도 처음 봤다.
진주 운석이 워낙 신선해 연구가치가 높다보니 인도 과학자들도 소문을 듣고 우리에게 샘플을 보내달라고 연락했다”고 말했다.
감정 요청이 계속 들어오는 것은 현재까지 발견된 4개의 진주 운석 외에도 10여개의 운석이 미발견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운석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있다.
실마리는 러시아 첼랴빈스크 운석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첼랴빈스크 운석이 발견된 곳을 선으로 이으면 일(ㅡ)자가 된다.
이 운석은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몇 차례에 걸쳐 폭발음을 냈는데 폭발한 지점마다 운석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 박사는 “무게가 가벼운 파편들은 폭발할 때 힘을 잃고 지표면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하지만 파편 무게가 무거울수록 운석이 추락하는 방향으로 계속 내려가다가 가장 무거운 파편이 지표면에 충돌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주 운석 3개의 발견 지점을 선으로 이으면 남동쪽을 향하는 일직선을 이룬다.
남쪽에서 발견된 것일수록 운석 크기도 크다. 가장 북쪽에 떨어진 운석은 진주 마천면 밭에 떨어진 파편으로 무게가 420g이었다.
이보다 남쪽인 진주 대곡면 파프리카 비닐하우스에 떨어진 운석은 9.36㎏이다.
다만 4번째로 발견된 운석이 일직선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발견된 점은 아직 미스터리다.
4번째 운석은 무게가 가장 무거운 20.9㎏으로 파프리카 농장 서남쪽 개울에서 발견됐다.
더 무거운 운석이 아직 미발견 상태라면 파프리카 비닐하우스 남쪽에 위치한 남강 인근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이 박사는 “운석이 떨어지면서 폭발음이 수차례 났다는 증언을 토대로 추론해보면 여전히 10개 정도의 운석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진주 운석은 발견자들이 보관하고 있다. 발견자가 원하는 가격과 정부가 제시한 가격 차이가 너무 컸다.
운석의 해외반출을 막기 위해 시도됐던 기념물 지정은 없던 일이 됐다.
대신 운석의 국외반출을 막고 운석의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제일 처음 진주 운석을 발견한 파프리카 농장 주인 강모씨는
“국내에서 돈이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가격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니 팔지 않고 가보로 간직할까 생각하고 있다”며
“독지가가 박물관을 지어주면 진주 운석 소유자들이 모여 공동으로 전시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발견자 3명이 이런 내용을 의논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농장 비닐하우스는 여전히 운석 구멍이 나있고 파이프는 찌그러졌지만 농사에는 큰 지장이 없어 파프리카를 수확한 이후에 보수할 계획이다.
극지연구소는 운석 연구를 목적으로
강씨가 발견한 운석에서 100g, 진주 중촌마을에서 발견한 운석 중 40g을 떼어 진공포장한 뒤 운석연구실에 보관하고 있다.
운석연구실은 1㎥당 미세먼지가 1000개 미만으로 모든 운석 연구는 이곳에서 방진복을 입고 진행된다.
지난 4월에는 최변각 서울대 교수와 함께 ‘진주 운석’을 국제운석협회에 보고하는 절차를 마쳤다.
이들은 진주 운석에서 떼어낸 1%의 시료를 가지고 운석 내부 특징, 궤도 등을 분석한 대여섯 건의 논문을 준비 중이다.
진주 운석이 강씨에게 돌아가는 날. 이 박사는 강씨에게 신신당부했다.
“신선한 운석인데 산화되면 연구 가치가 떨어집니다.
운석이 작으면 직접 진공포장이라도 해줄 텐데 운석이 커서 연구소에서는 포장할 방법이 없네요. 꼭 진공포장하세요.
동네 정육점에 가셔서 고기 진공포장하는 기계라도 이용해서 포장을 여러 번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라도 보관하지 않으면 다 녹슬어 버립니다.”
그날 강씨는 운석을 들고 지인이 운영하는 식품공장으로 달려가 운석을 진공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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