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지난 25일 오후 인천항에서 멀지 않은 신포지하상가. 중고 휴대전화를 파는 해맑음통신 매장 앞에 커다란 여행가방을 든
10여 명이 몰려 있다.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둬샤오첸(多少錢·얼마예요)?”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이들은 가게 중국인 직원과 흥정을 해가며 휴대전화를 골랐다. 웨이하이(威海)에서 온 린화잉(林花煐·33·여)은
“화장품을 사러 왔다가 휴대전화 값이 싸 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인천 지하상가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인천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인 동인천역 일대 지하상가가
그렇다. 전체 면적 1만5345㎡(4650평)에 757개 점포가 신포·동인천·인현 등 5개 상가로 구분돼 있는 이곳은
주말이면 8000~1만 명의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 대체로 지하상가가 쇠퇴한 다른 지역, 다른 도시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주로 파는 상품은 옷과 신발·가방·액세서리·화장품·휴대전화 등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품목이다. 지린(吉林)성에서 온 류잉(劉潁·34)은
“여러 물품을 싸게 쇼핑할 수 있고, 면세점·백화점에서 받을 수 없는 화장품 샘플을 챙겨주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중국 말고 필리핀 등 동남아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사실 이 일대 지하상가는 10년 전만 해도 글자 그대로 ‘파리 날리는’ 곳이었다. 1980년대에는 번화한 상권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문을 닫는 점포가 속출했다. 다른 지역, 다른 도시처럼 ‘지하상가의 쇠퇴’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나마 배를 타고 인천에 온
중국인 보따리상을 상대로 장사해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다. 2000년대 중반 한때 빈 점포가 30%에 달했다.
그런 상황을 바꿔 놓은 건 여객선을 타고 쏟아져들어온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처음엔 보따리상으로부터 “그곳에 싼 물건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몇몇이 찾았다. 실제 이곳은 가격이 싸다. 백화점에서
10만원은 하는 국산 브랜드 청바지가 2만~5만원이고, 전문점에서 10만원 이상 줘야 살 수 있는 수제화는 5만원 선이다.
수시로 반값 떨이 판매도 한다.
입소문이 퍼지고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점점 손님이 많아졌다. 이젠 빈 점포가 사라졌다.
가게 주인은 중국어를 스스로 배우거나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아예 한글 표시 없이 중국어 간판만 내건 점포도 있다. 중국동포나 중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도 생겼다.
모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중국동포 김미화(46·여)씨는 “장사뿐만 아니라
값싼 매장이나 다른 여행지를 알려주는 여행 도우미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 관광객이 대거 몰려올 춘절(春節·중국의 설) 연휴 때는
화장품·모피 매장을 중심으로 반값 세일을 준비 중이다.
이에 더해 관광객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시와 손잡고 중국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신용카드인
‘인롄(銀聯) 카드’ 결제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아시안게임 전에 희망하는 점포에 설치하는 게 목표다.
㈜신포지하상가 노주열(52) 대표는
“신용카드 말고 관광객들이 느끼는 또 다른 불편이 화장실과 관련한 것”이라며
“중소기업청 등에 건의해 화장실을 새로 꾸며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