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던 탁 모씨(60)는 2006년 복요리집을 열었다. 가게 문을 열고 처음엔 운영이 잘됐지만 1년이 지나자 매출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을 담보로 은행 돈을 빌려서 운영자금으로 썼지만 부채가 계속 늘자 더 이상 은행 돈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안 됐다. 난감해하던 탁씨는 우연히 저축은행 대출 광고지를 발견했다. 광고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 탁씨에게 상담사는 "금리는 12% 정도이고 하루에 12만5800원씩 300일을 갚아나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3000만원 대출을 받기로 했지만 탁씨가 실제로 받은 돈은 2700만원가량이었다. 저축은행이라고 홍보한 이곳은 사실 중개 사채업자들이었고 이들은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300만원을 가져갔다. 결국 탁씨가 부담해야 할 금리는 연 12%가 아니라 82.28%에 달했다. 뒤늦게 허위 광고에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계약을 되돌리기에는 늦어버렸다.
경기 침체로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서민들이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표적인 서민금융사인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이 위축되면서 서민들이 결국 살인적인 금리를 감당해야 하는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발길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사채를 이용하는 금융 소외계층 규모는 2004년 정부에서 발표한 380만명 이후 공식적인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최대 600만명 수준으로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 주재로 최근 국회에서 열렸던 토론회에서 "사채시장에 노출된 신용불량자들이 500만~6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위의 사례가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사채는 그야말로 서민들에게 '악마의 유혹'과 같다. 급한 마음에 잠깐만 사용할 목적으로 사채를 이용했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위험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금리도 상상을 초월한다. 사채를 이용하는 서민층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기댈 제도권 금융영역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고객들을 흡수했던 저축은행 업계가 크게 위축됐다. 지난 1년간 3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20개 저축은행이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2010년 말 87조원에 달했던 전체 자산 규모가 50조원(3차 구조조정에서 퇴출된 솔로몬ㆍ한국ㆍ미래ㆍ한주저축은행 제외)으로 쪼그라들었다. 전체 자산 중 40%가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이런 여파로 저축은행 총여신 규모도 급감했다. 65조원 수준에서 1년여 만에 35조200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여신 규모가 큰 대형 저축은행들이 문을 닫은 여파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총자산 규모가 1~5위권이었던 대형 저축은행들이 모조리 문을 닫으면서 저축은행 여신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며 "경기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살아남은 저축은행들도 대출을 더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 등 여파로 저신용자나 저소득층과 같은 서민들의 자금조달에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서민들의 돈줄 역할을 했던 대부업계도 쪼그라들고 있다. 대부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체 수는 이달 초 1만1682개로 지난해 말 1만2922개보다 9.6%(1240개) 감소했다. 매달 155개씩 대부업체가 문을 닫은 것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등록을 취소한 대부업체 상당수가 음지에서 사채업을 영위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부잔액 증가율도 크게 꺾였다. 금융위원회의 '2011년 하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대부업체의 대부잔액이 8조7175억원으로 지난해 6월 말(8조6361억원)에 비해 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그동안 매년 대부잔액 증가율이 10%대를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크게 둔화된 것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등 대형 대부업체들이 영업정지를 당했거나 당할 위기에 있다는 점과 대부업법 최고금리 인하 움직임이 있는 것도 대부업계를 위축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