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부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세법개정안을 통해 기부금 조세감면 방식을 소득공제방식에서 세액공제방식으로 전환했다.
당초 세액공제율을 15%로 일괄적용하기로 했지만 지난 달 확정안에서는 3천만원 이하는 15%,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30%를
적용하기로 내용 일부를 수정했다. 8월 개정안이 나온 이후 나온 정치권과 여론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내놓았을 때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는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이라며 강하게 정부안을 비판했다.
가뜩이나 지난 해 말 소득공제 액수를 연 2천 5백만원으로 한도를 정한 조세특례제한법 때문에 기부액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공제방식까지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기부문화가 더욱 더 움츠려들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예컨대 연봉이 8천만원인 사람이 1년에 2백만원을 기부했을 때
기존 소득공제 방식대로라면 48만원(소득세율 24%)의 세금 혜택을 받게 되지만, 개정안을 적용하면 30만원 만 감면이 돼
18만원의 세금이 실질적으로 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이렇게 된다면 지금까지보다 당연히 세금을 더 내게 될 것이니
우리네 현실에서 당장 기부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이러니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반발이 일견 수긍이 간다.
더욱이 정치권에서는 이로 인해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하니 더욱 더 민감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과연 기부는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부는 또 하나의 절세 수단인가.
세제혜택을 통해 기부를 늘이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소외계층의 자립을 돕고 진정한 복지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기부의 긍정적 기능은 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고, 기부를 장려하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진정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세제혜택을 주지 않는 한 기부는 줄어들 것이다'라는 말은
결국 사회구성원이 기부를 하나의 절세 수단으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 근거하는 것처럼 들린다.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은 기부금을 내는 것에 대한 하나의 '덤'으로 봐야지,
기부를 늘이기 위한 방안으로 그 동안 주던 '덤'을 줄여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주와 객이 바뀐 것이 아닐까.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과세 미달자로 분류돼 세금을 1원도 내지 않는 사람이 재작년에는 약 70명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56명의 평균 기부액은 1억7천 만원 가량 되었는데,
물론 별도의 소득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연봉 대부분을 기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세청이 연말정산에 제출하는 기부금 수령기관에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모두를 인정해주는 것을 악용해 허위로 기부금 영수증을 가져와 탈세에 이용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복지정책은 날로 확대되어야 하고 그만큼의 재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번 세법개정안이 나왔다고 본다면,
훌륭한 기부자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라도 세제지원과 관계없이 선행을 계속하는 것이 어떨까.
그 동안 혜택을 받았던 세금만큼 다시 기부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야말로 최상의 기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만약 세제혜택이 줄어든다고 기부를 줄인다면 세금 때문에 기부를 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대신 고액 기부자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환경이나 제도 개선 등이 반드시 병행되여야 할 것이다.
기부에 대한 반대 급부를 금전적인 것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기부의 의의 또한 퇴색할 것이다.
국세청에서는 모범납세자들을 상대로 전용신용카드를 발급하고 공항 입출국시에도 전용 출입구를 만들어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고액기부자에게도 이러한 혜택을 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대가를 주는 것보다 기부자에 대한 예우 강화가 필요하다.
기부금 모금기관이 투명하게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기부자들의 사회적인 명예를 높여주는 예우를 해준다면
보다 보람되고 자발적인 기부 문화가 널리 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제혜택같은 대가를 바라고 기부를 하는 사람은 줄고,
기부자에게 세심한 배려와 감사를 전하는 기부기관이 늘어난다면 세금과 기부에 관한 논쟁도 자연스레 사그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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