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주공 등 재건축 조합 '반발'…시장 위축 우려
서울시가 재건축 주택의 소형 의무 비율을 올리겠다는 방침을 공식 천명함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들끓고 있다.
게다가 현행 85㎡인 국민주택 규모를 소형인 65㎡로 축소 조정하는 방안도 건의키로 해 시와 중앙정부간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재건축을 앞둔 주요 아파트 단지는 물론 주택 구매나 매도를 고려하는 시민들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감을 못잡겠다고 하소연한다.
◇재건축 단지 '초비상' = 당장 기존 가구 수의 절반을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으로 지으라는 주문을 받고 있는 강남구 개포주공 아파트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다.
15일 이 지역 재건축 조합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개포지구 7개 단지의 조합 관계자들은 서울시 방침이 발표된 14일 긴급 연합회의를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주공2단지 이영수 조합장은 "정해진 룰이 있는데 자신의 공약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식의 정책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포동 아파트는 11~15평의 소형 주택 위주여서 재건축을 해도 작은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역설했다.
조합원들은 보통 85㎡ 정도의 중형 아파트에 입주하기를 원하는데 서울시 계획대로 재건축하면 이후에도 절반이 소형 아파트로 구성돼 희망 면적보다 작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주공4단지 장덕환 추진위원장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주민들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이라며 "일반분양 물량도 39㎡를 지으라고 하는데 대체 12평에서 누가 살라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개포지구 재건축 연합회 대표들은 이날 오후 강남구청을 방문해 구청장과 면담하고 일반 조합원들의 수요를 묻는 실태조사도 벌일 계획이다.
'패닉 상태'에 빠진 주민들은 조합 사무실과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화를 걸어 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묻기에 바쁘다.
개포동 K공인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다. 거래 문의보다 조합원들이 하소연하는 전화가 더 많이 걸려온다"라며 아직까지 가격에는 큰 움직임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의 '소형 중심' 재건축 방침이 공표됐다는 점에서 개포동 등 주요 재건축 지역에서는 거래 위축과 가격 하락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개포동 J공인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 가격을 낮추는 것은 아니지만 파격적으로 나쁜 소식이다보니 아무래도 향후 시세가 조금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말로 절반을 소형으로 지으면 재건축 사업을 못 한다. 양측이 협의해 조절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개포주공 1단지 42㎡(공급면적)는 서울시의 소형 의무비율 상향 직전이나 직후나 똑같이 6억6천만원에 거래됐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고급 주거단지에 대한 수요가 많은 강남과는 달리 지역에 따라 소형 확대 방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재건축 단지도 있다.
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 변경을 추진하는 송파구 잠실5단지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소형 의무비율 상향에는 큰 문제가 없고 용적률을 늘릴 수 있는 용도지역 변경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조합원은 "잠실5단지는 절반이 고령의 2인 가구라 큰 평형을 원하지 않는다. 작은 주택형으로 옮기면 추가 부담금을 안 내고 차액을 상가에 재투자할 수 있어 선호하는 조합원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전문가 "신중한 검토와 수요조사 선행돼야" =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시 대책이 부동산 시장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는 정책인만큼 신중한 검토와 관계기관 협의가 필요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114 김규정 리서치센터장은 "1~2인 가구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빨리 맞춰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소형 주택 비중이 너무 높아져 기형적인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쳐 확정된 사안을 발표해야 시장에 혼란을 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팀장도 "과거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서민 주거복지 대책을 이제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상적인 모델이긴 하지만 중앙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안인데 사전에 충분한 조율작업과 커뮤니케이션, 시민 의견수렴을 거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진단했다.
시민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대책인데도 서울시가 정부와 사전에 충분한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쉽게 공표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부동산 관련 결정을 미룸으로써 더욱 시장을 침체시키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서울시에서 최근 여러가지 발표를 하고 있는데 국토해양부와 의견이 다르다보니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몰라 시장 참여자들이 의사결정하기 쉽지 않다"며 "안그래도 취득세 인하 종료로 거래가 감소한 것으로 보이는데 더욱 지연시키는 효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주택 규모의 변경은 서울시의 건의가 받아들여질지 불투명한 것으로 예상된다.
허 연구위원은 "소득공제, 주택금융공사 모기지 등 굉장히 많은 분야의 기준이 되는 것이라 어느 한쪽에서 쉽게 바꾸자고 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규제가 공급의 탄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서울의 주된 주택 공급원인 아파트 재건축의 소형 비율 확대와 국민주택 규모의 축소 변경이 모두 이뤄질 경우 서민 주거복지는 개선되겠지만 공급이 줄어들 대형 아파트의 가격 상승과 같은 부작용도 나타날 전망이다. / 민경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