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촉구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인한 ‘광우병 파동’에 대한 대국민 사과 입장을 밝혔다.
담화문에는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요청했던 ‘사과’라는 표현이 적시되진 않았다.
대신 이 대통령은 “송구스럽다”고 말해,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 부재를 인정하는 동시에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
다만 취임 100일을 앞둔 점을 고려한 듯 당초 예상과 달리 새 정부의 ‘인적쇄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잘못은 모두 제 탓”이라며 한껏 몸을 낮춰, 한나라당 등 정치권이 요구한 인적쇄신을 포함한 문책성 인사가 당장 단행되진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광우병 파동.소통 부재… 송구스럽다”
이 대통령은 특히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격앙된 국민 정서를 다독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많은 국민들이 새 정부를 걱정하고 있는데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정부가 국민들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는데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된 것에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다”며 “무엇보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국민 건강이 위협을 받으면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기존 입장도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 건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정부 방침은 확고하다”며 “정부는 미국과 추가로 협의를 거쳐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이 국제 기준에 부합되는 것은 물론 미국인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와 똑같다’는 점을 문서로 보장받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수입을 중단하는 주권적 조치도 명문화했다”며 “차제에 식품 안전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내부 논의 끝에 ‘송구스럽다’는 표현으로 발언 수위를 조절한 것에 대해 “‘사과’ ‘유감 표명’ 등 표현의 수위를 나름대로 생각해 봤는데 ‘송구스럽다’는 표현은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들의 비판과 지적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며 “단순히 ‘유감스럽다’는 객관적인 표현이다. ‘송구스럽다’는 진심으로 국민과의 소통 부재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한미FTA 처리 용단 내려달라” 호소
이 대통령은 “지금 세계 경제가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경제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며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17대 국회 회기 내 처리를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경제의 70% 이상을 대외에 의존하고 통상교역을 통해 먹고 사는 나라인데 한미FTA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며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늘고 국민 소득이 올라간다. 무엇보다 3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경쟁국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통상조건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게 곧 한미FTA”라며 “물론 농업 등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폭넓은 지원 대책을 마련해 놓았고, 필요하다면 앞으로 추가 대책도 강구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의 시급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미FTA는 지난 정부와 17대 국회가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궈낸 소중한 성과인 동시에 대한민국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갖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라고 국민적 공감대를 모았던 국가적 과제”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미국은 비준동의안만 통과시키면 되지만 우리는 후속조치를 위해 24개의 법안을 따로 통과시켜야 하므로 우리가 미국보다 서둘러야 한다”며 “17대 국회에서 이미 무려 59차례나 심의했고, 공청회도 청문회도 여러번 거쳤다. 5월 국회를 요청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제 회기도, 임기도 며칠 남지 않았지만 여야를 떠나 부디 민생과 국익을 위해 용단을 내려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17대 국회가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 주신다면 이는 우리 정치사에 큰 공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부족한 점 모두 내 탓” 반성의 뜻 비춰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앞둔 소회를 밝히는 과정에서 ‘반성’의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한 지 석 달이 가까워 오는데 그동안 ‘경제만은 반드시 살리라’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일해 왔다”며 “하루 속히 서민들이 잘 사는 나라, 자랑스런 선진일류국가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달려왔다”고 자평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내 탓”이라며 “정부와 함께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해서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매진하겠다. 앞으로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이제 모두 마음을 합쳐서 앞으로 나아가자”며 “우리가 힘을 모으면 이 어려움을 어느 나라보다 먼저 극복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모두 다 제 탓’이란 대통령의 발언은 당분간 ‘인적 쇄신’은 없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한 지 3개월 겨우 지났는데 시기적으로 지금 책임을 묻는 건 적절치 않다”며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평가가 객관적으로 가능한 시기가 오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발언은 ‘비판과 지적을 수용해서 더욱 더 열심히 국민의 뜻을 받을고 일하는데 매진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시스템의 문제에 소홀함이나 부족함이 있었다면 그것은 국정운영 전반의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겸허하고 진솔하게 인정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대통령이 담화문 발표 직후 임채정 국회의장을 만나 한미FTA 관련 직권상정을 요청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 “임 의장이 강하게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만큼 정치적 제스처로 진정성 없이 찾아가는 것은 ‘정치적인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당장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임 의장을 찾아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7대 국회 회기를 연장해 한미FTA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관측에 대해서는 “임시국회 회기 연장 여부는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하더라도 여야 협상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기표 기자(
pkp@kucib.net)
기사게재일: [2008-05-22 오후 10:2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