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월광풍, 도봉산 |
지난주 산을 오르며 각석들을 찾아봤다. 도봉산 입구 안내소를 지나 얼마 안 가면 제일 먼저 도봉동문(道峰洞門)이라는 바위글씨가 있다. `여기가 도봉동 입구`라는 뜻인데 송시열이 쓴 힘 있는 해서체다. 우암 송시열만큼 도봉산을 예찬한 사람도 드물다. 그는 여러 각석을 남겼으니 말이다. 도봉동문 바로 옆 `북한산국립공원`이라 쓴 큰 입석은 우암 글씨체에 비하면 한참 치기스럽다. 여기서 조금 계곡을 따라 오르면 제일동천(第一洞天)과 필동암(必東岩), 춘주담(春珠潭), 만석대(萬石臺), 연단굴(鍊丹窟)이라 쓴 바위글씨들이 있는데 경계와 위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통제구역 내에 있어 안내도우미의 양해를 구해 확인했다.)
조금 오르면 오른쪽 도봉서원 앞 계곡 주변에 각석들이 또 한데 모여 있다. 이곳 풍광이 서원 터를 배경으로 무척 수려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서원 건너편 계곡 바위에는 `제월광풍갱별전 요장현송답잔원 화양노부서(霽月光風更別傳 聊將絃誦答潺湲 華陽老夫書)`가 새겨져 있다. 이곳의 경치를 노래한 싯귀로 이 또한 송시열의 필적으로 알려져 있다. 뜻을 풀이하면 비가 개고 달이 올라 시원한 바람이 다시금 특별히 이어받았도다. 애오라지 거문고를 치며 노래하여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화답하네 인데 화양노부는 송시열 자신의 호칭이다. 그 옆에 `무우대 한수옹(舞雩臺 寒水翁)`이라 쓴 다른 글씨체가 있다. 한수옹은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이다. 그는 스승의 글귀 옆에 조그맣게 자신의 글씨를 새겨 넣어 스승을 향한 존경심을 표현했다고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