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쏟아지는 강남역 사거리.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이곳에 매장 입구를 가리키는 커다란 화살표 모양 팻말을 든 노인이 서 있다. 창이 넓은 모자를 쓴 노인은 이 팻말 기둥을 잡고 몇 시간째 서 있다. 노인은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 종종 간이 의자에 앉아 생수병을 들이켰다. 그는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도 같은 일을 했다. 그렇게 김순덕(가명·69세)씨는 5년을 강남역 출구 앞에서 일했다.
"옛날엔 11번 출구엔 10명씩 아줌마들 서 있었어. 11번이랑 10번, 3번 출구가 원래 많았거든. 그런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망한 데가 많나봐. 3명 정도거나 없잖아. 일감이 줄었어". 김씨는 '투잡'을 한다. 오전엔 전단지를 돌리고 오후엔 '팻말알바'를 한다. '팻말알바'는 학원, 일식집, 당구장을 홍보하는 팻말기둥 옆에 서서 사람들을 호객하는 아르바이트이다. 김씨는 "하나둘씩 팻말을 세우기 시작하니까 다른 곳도 다 따라하더라고. 팻말알바 생기면서 전단지 일감은 많이 줄었어"라고 말했다.
김씨의 7시에 출근해 7시에 퇴근한다. 12시간을 '강남역 길거리'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버는 일당은 3만원에서 5만원 사이. 일요일 하루만 쉬고 바짝 해도 월수입이 10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마저 일정치 않은 편이다. 비가 오는 날은 무조건 일이 없고 전단지 알바의 경우 점포 개업일이나 학원 개강일에 맞춰 열흘 사이에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급여 기준도 업체마다 다르다. 한 달이나 뒤에서야 주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생계'에 쓰인다. 김씨는 "남는거? 없지 뭐. 여기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해. 소일거리가 아니야. 생활하려고 나오는 거야"라고 밝혔다.
가장 힘든 건 날씨다. 한여름 폭염도 엄동설한 칼바람도 피해갈 길이 없다. 김씨는 "더울 땐 엄청 덥고 추울 땐 엄청 춥잖아"라며 "잠깐잠깐 있는 것도 아니고 몇 시까지 있어달라고 하면 그 시간 내내 있어야 하니까 힘들어"라고 말했다. 그는 "못된 것들이 고의적으로 밀어서 다친 할머니도 몇 봤어"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단지를 돌리다 과로로 사망한 동료도 있었다. 김씨는 "9남매 키우던 사람으로 알고 있어. 돈이 아주 없던 양반도 아니라던데…. 60대였어. 딸래미가 밥 사주러 오던 날이었다고 하던데…"라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