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북성동 제물량로를 바꾸다
“사람들은 이 동네를 낡았다고 하지만 이 곳 만큼 햇살이 가득한 동네는 없을 거예요.”
중구 북성동 제물량로 335번 길. 꽃이 진 자리에 녹음은 절정이고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나무 사이로 하얀 빨래가 나부낀다.
햇살이 옅은 오전나절, 어르신들이 속속 모여들더니 빛바랜 담장위에 페인트칠을 한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이진우(거리의 미술팀)씨와 함께 골목길 벽 도색작업을 해오고 있다. 8월까지 이어나갈 이 작업은 ‘아름다운 우리 동네 만들기’의 일환으로 중구 노인복지회관에서 만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참여한 일자리 사업이다. 북성동 1가 12통 전체의 외부담장과 외벽도색, 스케치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이 사업으로 최근 이 동네는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던 분위기에서 따뜻하고 환한 동네로 탈바꿈됐다.
칙칙한 빈집과 빛바랜 담장위에 네 가지 메인 칼라가 입혀지고 바닷가와 인접한 지역임을 감안, 바다풍경이 수놓아 졌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몬드리안의 구성과 화투를 이용한 그림이 펼쳐지기도 하고 어느 담장에선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은 그림들이 수놓아졌다. 동네 이곳저곳에 눈길이 머물다 보니 어느새 오랜 삶을 이어온 이곳 주민 어르신과 눈이라도 마주치며 느긋한 삶의 이야기 한 자락도 듣고 싶어진다.
이복순(북성동.69)할머니는 “이곳에서 47년을 살았어요. 살면서 (벽을)칠해야지라고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와서 해주니 너무 고맙고 좋죠. 하는 김에 페인트 사다 나도 직접 문을 칠하고 있어요. 이것까지 해 달랠 순 없잖아요. 염치없게.”라며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예전 이 지역은 비가 오면 흙탕물이어서 장화를 신지 않으면 다닐 수 없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들 아파트를 좋아하니 빈집이 많아요. 내가 젊었을 땐 그래도 골목골목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 이 곳엔 노는 아이들은 거의 없죠.”라며 쓸쓸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도색작업을 막 끝낸 어르신들 곁으로 주민 윤병철(68)씨가 막걸리와 음료수를 가득 들고 찾아왔다. “전과 달리 시각적으로 환해져서 좋아요. 어르신들이 나와서 해주니 감사할 따름이죠. 고마운 마음에 가끔 이렇게 음료수를 대접하기도 합니다.”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고맙고 좋은 건 주민뿐만이 아니다. 이 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도 하루하루가 보람 있고 즐겁기만 하다. 송동우(70)씨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함께 일하면서 친목도 다지고 좋아. 집 칠하고 있다 보면 주인이 커피도 타주고 빵도 줘. 그런 게 정이 아니겠어. 내가 벌어 이 나이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도 뿌듯하고...” 라며 만족스러워 했다. 그는 또 “우스개 소리로 동네가 깨끗해져서 집값이 올라간다는 말을 주민들로부터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4월의 어느 날 벚꽃이 눈같이 흩날리는 꽃그늘 아래서 이진우(거리의 미술팀)씨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과 함께 조촐하지만 마음 가득한 삼겹살 파티를 했다고 했다.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 아래서 꽃이 피면 술 한잔 하자고 했는데 함께 하니 좋더라구요. 어르신들 입장에서 보면 이 작업이 또 색다른 체험이니까 의미가 있죠. 그림과 함께 어르신들도 행복하고 이곳은 더욱 맑은 동네, 아기자기한 숨결이 느껴지는 동네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