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다도해,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의 도시 전라남도 신안군.
청정의 자연이 하나님의 솜씨를 빛내는 이곳에 한 여인의 순교의 피가 깊이 스며들어있다.
약 100년 전, 돛단배에 몸을 싣고 신안의 섬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 여인, 바로 문준경 전도사의 피다.
37살에 한 여인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된 문준경 전도사는 그 이후 온갖 미신들로 가득했던 증도에 11개의 교회를 세웠고, 그녀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신안군에는 100개가 넘는 교회들이 세워졌다.
현재의 증도는 복음화율 90%가 넘는 천사의 섬으로 변화되었다.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가 삯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꾸려야했고, 주민들에게 괄시와 핍박을 당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복음을 전한 것은 그녀의 마음에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애끓는 안타까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 임자 진리교회
1933년, 사역을 시작한 문준경 전도사가 가장 먼저 선택한 선교지는 자신의 가장 큰 상처, 남편과 소실이 있는 임자도였다.
소실과 함께 집을 나가버린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임자도로 향했고 그 곳에 진리교회를 세웠다.
온갖 훼방과 핍박 가운데서도 성경을 가르치고 모임을 이끌며 교회를 이끌어갔다.
임자진리교회는 후에 1950년, 예수를 부인하지 않은 이판일 장로를 비롯한 48명의 순교의 터가 되었다.
2. 증동리교회
1935년, 두 번째로 개척한 교회이며 순교하기까지 시무했던 교회가 바로 증도의 증동리교회다.
20년 간 과부로 살아야했던 시댁이 있던 곳으로, 비참한 결혼생활이지만 시부모를 정성을 다해 섬긴 그녀의 삶의 모습을 통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고 신안지역 복음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증도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남편의 형, 정영범씨였다.
문준경 전도사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는 예수님을 영접할 뿐만 아니라 교회 부지를 내놓아 교회 성장에 큰 바탕이 되었다.
3. 순교와 기도
여성의 몸으로 험한 바닷길을 헤치며 말씀을 가르치고,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 들어가 장례를 치러주고, 산파의 역할, 집수리까지 도맡아가며 섬김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을 증거했다.
1950년 10월 5일 새벽, 문준경 전도사는 증동리의 해변(터진목)에서 인민군에 의해 죽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버지여 저들에게 죄를 묻지 마시고, 죄 많은 내 영혼을 받으소서.
” 현재 증동리교회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순교기념비가 세워져있고 길목에 2013년 개관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있어 순교의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
바울을 닮은 그녀의 전도를 향한 열정, 스데반을 닮은 그녀의 순교의 마음 그리고 죽음도 불사한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은 오늘날 우리가 배우고 닮아야 할 본이 된다.
우리나라 우리민족이 복음화율 90%의 증도가 되길 기도하며 문준경 전도사의 기도를 떠올려본다.
"나의 사랑하는 주님! 저도 못 다한 기도를 당신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그처럼 사랑스런 언어로 마지막을 장식한 순교자 스데반의 기도를 지금 당신께 바치고 싶습니다.
한 많은 나의 삶을 당신의 사랑으로 감싸 주신 큰 은혜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이렇게 육신의 고통을 넘어 영원한 생명 안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
부족한 내 영혼 당신의 손에 의탁하오니 비천한 저를 받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