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천 실로암교회 황의경 목사
선선한 바람과 함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부평 굴다리오거리 걸으며, 도착한 실로암교회(인천 부평구 경인로 1012번길 3-1)는 아담함 속 거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자신은 손해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주변의 이웃을 돕고자 힘쓰며 살아온 실로암교회 황의경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어떻게 목회를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A. 신학대를 다녔을 때 경험했던 지하실의 교회들이 떠오릅니다. 좁은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며, 전기도 제대로 사용 못해 감기를 달고 살았던 목사들을 보며 목회자의 길이 ‘고난의 길’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러한 중 2013년 선배 목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개척교회를 한 번 맡아보지 않겠냐고. 그 당시 저의 통장 잔고는 6,000원, 정말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의 이러한 고민을 아시고 후배 목사들을 통해 계약금과 잔금을 모두 지불, 본격적으로 목회의 길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교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들이 정말 많았었을 것 같은데요.
A. 자금이나 제반 여건들이 어느 정도는 힘들게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가장 힘들었던 요소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치매에 걸렸을 때 6남매 중 어느 누구도 어머니를 모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워 사모님과 논의할 새도 없이 어머니를 바로 모셔왔습니다. 사모님은 며칠 간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한스러워하다 결국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중에 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됐고, 형제들에게 조금씩이라도 지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목회를 지속해나갔을까 아직도 아찔합니다.
Q.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그 뒤는 혹시 어떻게 됐을까요.
A. 그러던 중에 어떤 형님은 저에게 목회활동을 하면서 받는 금액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짜고짜 돈을 요구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죽음의 문턱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안부를 묻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너무나 상처가 컸는데, 적반하장 격으로 가족친척에게 이런 험한 꼴을 당하니 눈앞이 너무나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공의공도의 하나님께서는 저의 이러한 사정을 아시고 어머니를 아주 건강하게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또한 2년 전에는 우연한 계기로 박찬영 목사님을 만나 물품 지원도 받게 됐습니다.
Q. 정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A. 저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굳게 믿기에, 들어오는 재물의 많은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십의 일조를 넘어 ‘십의 칠조’를 함에도 불구하고 사모님께서는 군말 한 번 없이 저의 모든 부분을 이해해줬습니다. 또한 지금 성도 수가 얼마 되지 않음에도 매달 80만원을 꾸준히 선교헌금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주변의 목회자들이 너무 많이 내기에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어 절반으로 줄여도 괜찮지 않겠냐고 물어오는데 저는 당당히 이야기합니다. 제가 그렇게 줄여서 내거나 안 내면 이러한 금액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버릴 것 같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Q.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연합기독교방송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월례회 인원의 변동을 보면서 정말로 꾸준히 활동해줄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찬영 목사님과 함께하는 동역자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사역 감당하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앞으로 연합기독교방송을 위해 힘닿는 대로 더욱 헌신하고, 활성화를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