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고전14:33). 성령이 하시는 일도 평화입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워집니다(마5:8). 평화의 사람이란 곧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사람이 싸워야 할 일이 있다면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평화는 아름다운 것이요 인생은 행복하게 합니다. 평화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평화의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이사야 26장3절에 주께서 주를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참된 평화를 주신다 고 했습니다. 또한 공평히 행함으로 평화가 찾아오고 그 결과 영원히 평안하고 안전할 것이라 (사32:17)고 했습니다. 평화의 사람이 가정에 있으면 온 가족이 화목하게 됩니다. 평화의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온 교회가 평화의 기운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평화의 사람일까요? 어떻게 하면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첫째, 항상 기뻐합니다.
평화의 사람은 항상 기뻐합니다. 기쁨은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기쁨이요 생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신 기쁨은 그들로 웃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웃게 하신다고 했습니다(창21:6). 평화의 사람은 괴로움을 극복하고 기쁨을 획득합니다. 괴로움을 마시면 괴로운 인생이 되는 거고 괴로움을 물리치고 기쁨을 흡입하면 기쁨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해도 거기에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사람이 적극적으로 기쁨을 누리는 길은 은혜를 받아 누리는 것뿐입니다. 은혜 없이는 기쁨도 없습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연결된 인생만이 기쁨을 누립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4:4) 그리스도인이 기쁨은 항상 기쁜 일이 있어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주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1930년대 초 미국은 심각한 경제 공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실직자들이 거리를 메웠습니다. 공장이 밀집된 지역에 흑인들로 구성된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인들의 60%가 실직한 상태였습니다. 예배시간에 찬송을 부르는데 얼마나 힘차고 희망이 넘치는지 몰라요. 목사님이 성도들을 향해서 지금은 경제공항입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실업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이 그렇게 즐겁습니까? 그때 교인 중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밝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기쁨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요15:5)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안에 기쁨을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찬송204장)
예수 안에 있으면 고난을 희망으로 빠꿀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인생 자산입니다. 고난의 한 밤중에서도 희망을 노래합니다.
스코틀랜드 신학자 로버트리는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나는 기뻐하리라 그리하면 내 인생의 날개가 될 것이다.
나는 용감하리라 그리하면 더 이상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건강하리라 그리하면 내 몸이 책임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기쁨은 인생의 요소입니다. 세상을 움직여 나가게 하는 힘입니다. 항상 기뻐함으로 평화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생의 바퀴를 돌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관용을 보입니다.
평화의 사람은 너그럽습니다. 분쟁의 원인은 너그럽지 못해서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5절) 관용이란 헬라어 에피아케스(Epeaches)는 참을성이 있고 마음이 넓고 성품이 온화하고 예의 바르고 이해심이 있고 관대하고 너그러운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급하고 거칠고 마찰을 일으키는 것과 반대되는 성품입니다. 관용은 사람을 비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만드는 성품입니다.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기 전 가족에게 관용을 보입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닮아가게 됩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시103:8-10) 관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관용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못 본체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유명한 아브라함 링컨에게 원수는 없애야하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링컨은 없애야 합니다 라고 쉽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도 원수는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원수를 죽이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없애 버리자는 말입니다. 저는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 없애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링컨을 고릴라 같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릴라를 대통령으로 세웠으니 아프리카에서 고릴라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링컨은 나중에 자기를 고릴라 같다고 비난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자기의 비서로 세웠습니다. 링컨이 죽고 나서 그 사람은 링컨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지배했던 사람이었다고 칭찬했습니다. 분쟁 가운데서 관대하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분쟁의 대상도 누그러지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로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딤3:3)라고 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는 신사답고 평온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드럽고 친절하고 잘 참아야 합니다.
남편이 평소보다 성을 더 자주 내고 트집을 잡습니다. 아내도 남편의 잘못을 지적하며 화를 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아내에게 관용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남편처럼 거친 말로 받아치지 않고 유순한 말로 대답하고 남편이 처하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했습니다. 내가 밉고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자기 일이 뜻대로 안되니 그런거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관용에 감동을 받았고 아내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아내의 관용이 싸움을 그치게 하고, 이해하고 서로 섬기게 하는 성장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관용은 남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베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를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형들,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이것이 관용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았습니다. 관용은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관용을 보임으로 평화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염려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평화의 사람은 염려를 제거합니다. 염려를 물리치지 않으면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염려란 걱정과 근심거리로 괴로워하고 억압으로 억눌리거나 압박 받거나 짐을 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폴터니어 박사는 염려를 물리치는 방법 7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날마다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둘째,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 마음에 원한과 유감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넷째, 가족이나 이웃과 보다 친밀하게 살아야 한다.
다섯째, 믿는 친구들끼리 부부간에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섯째, 일상적인 작은 일에 충실하며 만족하는 자세를 가지라
일곱째, 가끔 한번씩이라도 이웃에게 선을 베풀라
베드로는 이렇게 권합니다.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주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벧후 5:7) 염려는 습관이요 질병입니다. 습관은 고칠 수 있고 질병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불행을 거부하고 행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염려의 무가치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 할 수 있느냐? (마6:27)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않을까? 오늘 본문 말씀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6절) 아무리 근심스러운 생각을 무시하려고 해도 근심이 우리 마음속으로 몰래 기어 들어옵니다. 기도하고 간구할 때 염려가 감사로 바뀌는 것을 경험합니다. 내가 평화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평화의 사람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영적인 고지(高地)입니다. 기도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바꾸어 주십니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14:27) 주님의 평안이 내 마음을 다스릴때 평화의 사람이 됩니다.
평화는 모든 사람이 염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평화가 없어요.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평화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평화의 포도나무이신 예수와 연합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분에게 있는 평화가 내게도 있게 됩니다. 먼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소유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화를 건설 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변화의 동력입니다. 온화하면서도 다스리는 힘이 있습니다. 평화가 나를 다스리고 내가 가정을 다스리면 평화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7절) 어떻게 하면 평화의 사람이 될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면 됩니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 Peacemaker 이 되시기 바랍니다. 너희 관용은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시37:1)라고 하십니다. 사소한 잘못을 간과하시기 바랍니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평화의 적인 사단을 물리쳐야 합니다. 탐욕과 거짓으로 채우고 분을 품게 하는 사단을 기로도 물리치고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