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술로 시작하는 일용직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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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술로 시작하는 일용직 근로자

   

2013.06.19 14: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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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건설현장으로 나가기 전에 한 잔 걸치고, 점심 챙겨줄 때 또 한 잔, 저녁에 다른 인부들이랑 밥먹으며 한 잔 해. 술기운으로 겨우 버티는 일이야."

용접, 철근 콘크리트 양생 등 다양한 기술의 일용근로자들이 모이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 신정네거리역 앞 인력시장.
12일 새벽 4시 30분이 되자 작업복 차림에 변색된 야구모자를 눌러쓴 50~60대 장정 100여명이 서성대기 시작했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한 손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있는 이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무표정한 얼굴에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이들은 서로 눈이 마주치면 말없이 고개만 숙여 인사를 건넸다.

이른 시간대에 문을 연 식당은 몇 군데 없다. 근처 분식집과 설렁탕 전문점만 영업 중이다. 그런데 안에서 손님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곳 건설 일용근로자들에게 새벽밥은 소주나
막걸리, 바로 술이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어 일을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한가롭게 식당 안에 앉아 밥을 먹을 여유와 돈이 없기 때문.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한 인력업체에서는 새벽 6시 30분과 아침 9시에 한 번씩 국밥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차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인부들은 국밥을 먹을 시간이 마땅찮다.

새벽 5시 일감이 주어지기 전 편의점 앞에서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일용근로자 이재근(63ㆍ가명) 씨는 홀로 테이블에 앉아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하루 종일 힘쓰는 일을 하다 보니 제정신으로 현장에 투입되면 힘에 부칠 때가 많어. 술 기운으로 이 일을 해온 지 2년 가까이 됐지."
이 씨는 20여년 전에는 한 건설업체 사장이었다. 하지만 IMF가 터져 회사는 도산했고 그 후 이것저것 안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옆에는 다른 일용근로자 김태운(56ㆍ가명) 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소주를 한 병 마셔야 술기운에 힘쓰는 일을 잘 할 수 있어. 다른 인부나 현장 감독을 통해서 그날그날 일감을 얻고 있지만 요즘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아."

김 씨의 부인과 자식은 오래 전에 그의 곁을 떠났고, 그는 근처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게 몇 년째인데 요즘에는
조선족이 대거 들어와 일자리가 더욱 사라졌어.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강서쪽에 철거일을 하러 가지."
5시 30분이 되자 일용근로자들이 모여있는 주차장 앞으로 승합차들이 몰려와 한 두 명씩 이들을 어디론가 태워갔다.

6시가 되자 일용근로자들이 몇명 보이지 않았다.
이들도 오전 6시 15분이 되자 삼삼오오 해장국집을 찾아 떠났다.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인부들은 집으로 가거나 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 한잔을 걸친다.
집에 들어가 가족을 볼 낯이 없어 아침밥 겸 위로의 술자리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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