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건 ‘파이팅’ 아닌 죽음을 기억하는것

이어령 박사가 톨스토이의 유명한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크리스천에게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이팅(fighting)’이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는 것(Memento Mori)’임을 강조했다.
“살아있을 때 생명을 알고 싶다면 죽음을 기억하라”
양화진문화원(명예원장 이어령, 원장 박흥식)은 12일 오후 8시 서울 합정동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에서 이어령 박사의 문학강좌를 진행했다.
이날 이 박사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는 종교의 힘,
그리고 작품 곳곳에 스며있는 기독교적 메시지에 대해 조명했다.
이 책은 판사로 성공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게 되는 이반 일리치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로, 톨스토이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19세기 러시아 작가가 전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지만, 들어 보면 우리나라, 우리 집안, 내 이야기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리치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며 “신(神)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읽고 나면
크리스천이 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절박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고 소개했다.
이 박사는 이어 “인간이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송두리째 사라진다. 톨스토이는 철옹성 같은 인간의 가치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묻고 있다”며 “종교가 아무리 현실에 참여하고 새로운 신학이 나타난다 해도,
죽음을 떠난 종교는 존재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역설했다.
톨스토이가 이 작품을 통해 풀어내는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이 박사는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판사인가? △사다리에의 오름과 추락의 의미 △아들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판사는 세속적 의미에서 누구나 꿈꾸는 출세의 상징이자 사람들에게 가장 대우받는 직업이다.
또한 죄수들을 끝없이 심문하면서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자리”라며
“하지만 환자가 되고 나서는 의사로부터 죄인을 심문하는 듯한 취급을 받게 된다. 이는 톨스토이의 고도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일리치가 사다리에 올랐다가 떨어지는 것은 인생의 절정에 올랐다가 추락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승진 후 대저택으로 집을 옮긴 일리치는 인부를 대신해 도배를 하기 위해 사다리를 올랐다가 미끄러져 넘어진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음에까지 이른다.
이 박사는 “인생의 절정에 올라선 순간 일평생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듯 추락해 버렸다”며
“오르막길을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끝없는 내리막길로 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그가 죽을 때 아들이 흘린 눈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소설의 첫 시작에서 ‘그의 죽음’이라는 3인칭으로 묘사된 일리치의 죽음은 작품 후반부에서 가족들에 의해
‘당신의 죽음’ 즉 2인칭으로 표현된다. 이는 ‘나의 죽음’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평소 살가운 관계가 아니었던 막내아들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일리치는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발견한다.
이 박사는 “아들의 뜨거운 눈물이 일리치의 손에 닿았을 때, 그는 모든 통증이 멎으면서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보게 된다.
여기서 아들의 눈물은 바로 사랑”이라며
“이 사랑 덕분에 일리치는 허위와 위선으로 끝날 인생을 마지막 1시간 동안 참을 수 없는 기쁨으로 끝내게 된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제는 서로에게 파이팅(fighting)을 외치지 말고,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치자.
살아있을 때 생명을 알고 싶으면 죽음을 생각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며
“죽음을 기억한다면 죄를 지을 수 없고, 성공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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