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에서 미국 상원의원 및 상원 부의장으로 '인생 역전'한 신호범(75)
워싱턴주 상원의원은
1933년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난 신 의원은 4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자 서울로 혼자 올라와 노숙 생활을 하다
18세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에서의 생활도 녹록하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려고 수소문을 해봤지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19세의 그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자며 공부한 끝에 대학입학 검정고시를 1년4개월만에 통과했다.
그는 당시 불가능을 의미하는 'Impossible'이라는 말이 너무 싫어 영어 사전을 찢었지만,
다시 붙이려고 보니 가능하다는 의미의 'I'm possible'로 보이기 시작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신 의원은 백인이 90% 이상 거주하는 워싱턴주에서
운동화 4켤레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열심히 뛰어 1998년 11월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워싱턴주 상원에 입성했다.
그는 "나와 같은 처지의 입양아와 이민자들을 위해 여생을 바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