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미국의 정치문화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독교정치문화이다.
최근 출간된 <미국의 정치문화, 기독교, 그리고 영화>는 기독교가 미국의 정치문화에 어떻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에 이 책의 저자 장정애 교수(선거연수원)를 만나 미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큰 흐름에 대해 들어보았다.
미국의 정치와 기독교,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믿는 통치 엘리트가 미국 정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백인 앵글로-색슨 계통 개신교도’(White Anglo Saxon Protestant)들이죠.”
미국의 주류계층을 형성해온 ‘WASP’은 국민주권과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형성해 온 주인공들이며 이 엘리트 계층의 종교와 정치 원칙들, 관습과 사회관계, 취향과 도덕성의 기준은 건국 이래 미국사회를 이끌어 온 주류문화라는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이로써 미국의 정치 상층부에 존재하는 소수의 파워 엘리트가 정치문화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같은 전통은 300년 동안 면면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과 같은 발언이 통용되는 것도 미국 정치문화의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선과 악을 구분지어 놓고 자국은 선, 나머지는 악이라는 규정이 정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통용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와 주류문화 사이 긴장 존재해장 교수가 지적하는 미국의 또 다른 주요 이슈는 ‘미국은 메인스트림과 다문화가 공존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사회는 유일신을 믿는 개신교 엘리트층이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미국이 다민족 국가인 만큼 여러 문화를 수용하는 다원론이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유교가 저변에 깔려 있고 기독교를 수용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미국은 이와 반대로 기독교가 저변에 깔려 있고 여러 문화를 수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류 문화와 다문화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존재하고 있고, 다문화를 수용하는 가운데 주류 문화에 대한 도전이 발생하며 이로 인해 국가 정체성의 변화마저 초래하고 있다”고 장 교수는 설명했다.
이어 장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출마한 것은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정치사회에서 우선 백인 주류사회에의 변화를 의미하며 미국 주류사회의 코드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칼뱅주의 정치문화, 영화 <매트릭스>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한편 장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WASP의 신앙 근간을 이루고 있는 칼뱅주의는 미국의 정치문화 저변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고 이는 대중문화, 특히 영화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서부영화와 공상과학영화에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칼뱅주의 정치문화가 영화 전체에 은유적으로 나타나 있는 좋은 예로 장 교수는 영화 <매트릭스>를 꼽았다. 장 교수는 그 구체적 근거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며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신정정치 사상이다.
둘째는 예정론, 곧 선민사상이다. 극중 주인공 네오(키아누리브스 분)는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타락된 시온을 구원할 메시아로 대변되고 있는데 이 세상을 구원할 존재가 메시아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이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선민의식, 예외주의 사관이 이 영화에 융해되어 있다.
셋째는 천년왕국사상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일어날 종말론적 전쟁이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대결로 드러나는 양상과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네오와 요원 스미스의 대결이 상징적으로 이를 나타낸다. 이를테면 미국이 ‘새로운 이스라엘’(New Israel), 즉 세계의 적그리스도 세력을 파괴하는 ‘구원자 국가’라는 의식과 연결돼 있다.
장정애 교수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국제정책학 석사를, 캐나다 매길대에서 북미지역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현재는 선거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