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로마서 7장 19~25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을 기억합니다. “네 자신을 알라!”
페르시아의 한 독제준주는 한 노인에게“그대의 나이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노인이 대답하기를 “나의 왕이시여! 저의 나이가 겨우 네 살입니다.”라고 하는 노인의 대답은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제 나이 84살이오나 지나간 80년은 제게 있어서 살았으나
죽었던 해에 불과 하옵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온 지 겨우 4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보충 설명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 노인의 말에 재미있는 교훈이 있다고 봅니다. 84년
평생에 80년은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는 고백이고 보면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자기를 모르고 살아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나는 메시야”라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나는 양의 문이로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고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주님의 자기 선언입니다.
참으로 통쾌한 자기 선언이요 위대한 정복자의 자기 선언이요,
개선장군이 늠름한 자기 모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정 반대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장에서
“내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하였습니다.
실로 기막힌 패배자의 연발탄입니다. 예수님의 자기선언과는 엄청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자요,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 아니 예수그리스도의 사도가 이런 말을!
그는 지금 로마서 7장에서 죽음, 죄, 율법, 악, 곤고, 사망 등에
포로가 되어 죽는다고 야단입니다. 그는 숨김없이, 기탄없이, 염치를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아니고, 인류가 아니고, 교회가 아니고, 바로
“나”입니다. 내가, 나의, 나는, 나를,… 이라고 하는 일인칭 단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그가 회심하고 사도가 되어
주를 따라가는 위대한 십자가의 여정에서 일어난 자기 탄식입니다.
1. 분열의 “나”입니다(이중적인 나입니다).
본문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하지 아니 하는 바 악을 행하는” “나”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나”는 이상적인 “나”를 말합니다.
악을 행하고자 하는 “나”는 현실적인 “나”를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 바울에게는 이 이상과 현실이 극에서 극으로 나누어지는
분열의 비극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가 원하는바 행하고자 하는 선은 새 사람 바울입니다.
그러나 그의 선의 행방을 가로막는 악은 옛 사람 바울입니다.
이렇게 바울에게는 이중성이 있었습니다. 두 바울이 있었습니다.
선한 바울과 함께 악한 바울이 있습니다. 영인 바울과 함께 육인
바울이 있었습니다. 속사람인 바울과 겉 사람인 바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바울과 함께 // 죄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
바울이 있었습니다. 진짜인 바울과 함께 가짜인 바울이 있었습니다.
순종하고자 하는 나에게 분순종하고자 하는 다른 내가 생겼습니다. 회개하고자 하는 나에게 회개하지 않으려고 하는 다른 내가있습니다.
이렇게 두 극단의 “나” 절대의 “나” 싸우는 “나”, 신음하고 탄식하는 “나”, 낭패와 실망으로 우는 “나”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의 “나”가 현실의 “나”와 부조리 되는
그곳에 신앙인격의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2. 죄악의 “나”입니다.
본문20절에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속에 심각한 분열의 비극을 일으키는 정체가“죄”라고 폭로하였습니다. 자기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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