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회복 (요 2:1-11)
지금 우리는 최대의 가정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애틋한 글입니다.
아빠! 왜 이혼하려 하시나요? 아빠 이혼하시면, 어린 나는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나요?
엄마! 왜 이혼하려 하시나요? 엄마 이혼하시면 어린 나는 누구 품에서 자라야 하나요?
아빠! 엄마! 두 분의 행복을 위해 이혼하려 하시나요?
우리 모두의 행복은 어떻게 하나요?
우리도 아빠와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빨리 어른 되어 아빠, 엄마에게 효도해 드릴께요.
어린 이 마음에 상처를 남겨주지 마세요.
내 마음에 한 번 남긴 상처, 너무나 오래갈 것만 같아요. 아빠! 엄마! 이혼하지 마세요.
깨어진 가정,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그들의 끝없는 외로움과 깊은 절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이 땅에 깨어져 흩어진 가정의 모습을 보시며 주님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
OECD 국가 중 이혼율 저 출산율 세계 1위.
이런 통계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가정이 해체되고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가 왜 망했습니까?
힘이 없어서입니까? 길이 없어서입니까? 아닙니다. 가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지고 국가도 무너집니다.
지금 사탄은 가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정을 공격하여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으로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48년 5월 14일 독립하기까지 방황하며 살아간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순간도 잊지 않고 싸 들고 다녔던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흙을 싸 들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잊지 않으려고 목에 조그만 흙 자루를 걸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무덤에 뿌렸습니다.
다음에는 토라 (성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토라는 유대인들의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다음엔 안식일이었습니다. 1900년 동안 나라 잃고 유리방황했지만
안식일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메시아 신앙을 잊지 않고 상기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는데 그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잊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정을 최고로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들이 군대에 가도 식탁에 아들 숟가락, 젓가락을 놓습니다.
유학 간 자녀나 출타 중에 있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매월 초하루 월삭이면 어디로 흩어졌든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1900년 동안 떠돌아다니면서 집은 없어도 가정은 있었습니다.
그만큼 가정을 중시했습니다.
그랬기에 신앙도 나라도 가정도 보전되고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사회를 보면 집은 있어도 가정이 없는 집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가정의 회복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가정의 회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1. 가정의 회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옵니다.
본문의 가나의 혼인집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포도주가 떨어진 것인데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1-2절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라고 했습니다.
문제점은 거기서 예수님은 주가 아니라 손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초청을 받아야 하는데 손님으로 초청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지만 내 주장대로 산다면 주님은 손님일 뿐입니다. 그러나 5절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한 대로
어머니 마리아의 노력으로 예수님의 위치를 정상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통하는 자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가정들이 하나님을 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손님이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 우리의 존재는 사라지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존중되며 항상 예배하며 경외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임을 받는 곳이 천국입니다.
각자 마음에서 하나님을 높이면 마음 천국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높이면 가정 천국입니다.
나라가 하나님을 높이면 나라에 복이 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가정의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시편 128편 1절에서 4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 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질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2. 가정의 회복은 어른을 존경하는 데서 옵니다.
5-8절 말씀입니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본문의 상황에서 마리아는 잔칫집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잔칫집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람 보기에 황당하고 무리한 일을 시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 들 중에는 마리아의 친척 집이었을 것이다.
잔치를 준비하는 한 일원이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합니다.
아무튼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어른의 위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 했는데 이 말씀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식으로 해석할 말이 아닙니다. “여자여”의 원문 헬라어 ‘귀 나이’는
‘귀네’의 존칭으로 그리스에서는 왕후를 부를 때 사용하던 존칭입니다. 극존칭 입니다.
어머니가 높임을 받고 존중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가정에서 부모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존경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존경해 달라는 부모는 없지만 존경해 주면 부모의 마음이 기쁩니다.
부모가 마리아처럼 좀 무리한 일을 시켜도 우선은 예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선은 예하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공경이고 지혜입니다.
이것이 잘되고 있는 가정의 모습입니다.
반포지효(反哺之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