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허물이 그를 찔렀다

07월 31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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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허물이 그를 찔렀다

   

2008.07.23 00:3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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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금용 목사(남서울교회)
성경:이사야 53:4-9

어느 아리따운 용모를 가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용모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보기에도 흉칙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극구 반대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누가 볼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여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당부를 깜박 잊은 채 도시락을 갖다 주려고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딸의 반을 찾아 물어서 도시락을 전해 줄 때 그 여학생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친구들이 당연히 그 얼굴 흉칙한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당황해서 그만 우리 집 식모라고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가지고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방과 후 이 여학생은 울며불며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느냐고, 이제는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그때 그 어머니 가 딸의 울먹이는 등뒤에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연이었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란다. 아버지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는 집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그만 원인 모를 불이 났었단다. 집안에는 어린아이인 너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이 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단다. 사람들이 소리질러 그 사실을 안 나는 앞뒤를 가릴 겨를도 없이 집안으로 달려들어갔고 안 방 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부둥켜안고 뛰쳐나왔단다. 나는 너를 안은 까닭에 뜨거운 불길 앞에서도 내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단다. 그 후 심한 화상을 얼굴에 입고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그나마 생명은 건졌지만 얼굴 은 이 모양이 되었구나 이 여학생은 분이 나서 울먹이다가 어머니의 이 사연을 듣고는 돌아서서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 후 이 여학생은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유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셨습니다. 예수님도 당신만 생각하셨다면 얼마든지 고난을 물리칠 수 있었으나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온 우주의 모든 관심이 바로 골고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들도 저 음부의 마귀와 사탄도 숨을 죽인 채 이 골고다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전 인류의 운명을 바뀌어 놓는 최대 의 사건인 사순절을 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는 영적 싸움에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훈련을 받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원래 사순절은 부활절에 세례 받을 지원자들을 준비시키는 기간이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가 영적으로 훈련받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훈련받는 기간이 바로 사순절입니다. 준비되지 못하고 훈련되지 못한 성도는 십자가의 은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세상에서의 영적인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훈련된 당신의 참된 제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영적 싸움에 흔들리지 아니할 하나님의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 의 300용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은 결코 군대의 숫자를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합지졸이 아닌 훈련된 정예부대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두려워 떠는 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2만2천명이 돌아가고 1만 명이 남았습니다. 남은 1만명은 용감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족하지 안았습니다. 그래서 물가에 데리고 가서 물을 먹는 자세를 보고 손으로 먹는 자만 남기시고 무릎 꿇고 입대고 먹는 자는 다시 보내셨습니다. 남은 수는 30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준비된, 훈련된 병사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사순절을 지나면서 기도 제목이 기드온의 용사 300명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을 통해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신 분은 이 사순절 기간 에 철저히 신앙생활 하십시다. 성수주일을 못했으면 이번 기회에 성수주일을 철저히 하고, 말씀 읽는 데에 게을리 했으면 이번 사순절에 성경을 열심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물질생활에 헌신하지 못했다면 이번 사순절에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를 그동안 못했으면 전도를 열심히 한다든가, 봉사를 열심히 한다든가, 이 사순절은 훈련받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동안 나태한 자리에 있었다고 하면, 게으름의 신앙이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면 영적으로 준비하는 사순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서로간의 반목질시하면서 용서하지 못했던 모든 일들을 다 용서하고 새로운 하나님나라를 위한 우리의 기도로 승리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허물과 죄를 인한 대리적 고난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희생적인 주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 우리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체험 라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의 절대 가치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우리의 삶의 모범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야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며, 그리고 그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우리는 이 기간에 그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의 사랑,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준 그 사랑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의 겸손과 그의 낮아지심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의 섬김의 삶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는 이 땅에 아주 비천하게 오셨습니다. 그는 죽기 위해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가 도리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부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그는 약하게 살았던 것 같았으나 끝까지 비굴하지 않으셨으며, 진리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몸소 나타내 보이신 가장 강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었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잘못은 우리가 저질렀는데 매맞고 고난의 쓴잔을 마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고난이 십자가는 2000년 전 예루살렘 근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을 조롱하고 그의 말씀을 무시할 때, 애통하는 형제 의 아픔을 외면할 때, 십자가의 승리를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좌절하며 낙심할 때, 주님은 그런 우리로 인해 한 번 더 못박히 십니다. 무죄 한 자로 고난을 당하시면 서도 자기를 못박는 자를 위해 오히려 하나님께 용서를 비신 주님을 감상적으로 생각하며 눈물만 흘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한 우리들은 이 사순절에 용서할 수 없는 사람까지도 용서하고 화해하는 기간으로 삼읍시다.
형제의 아픔을 자매의 아픔을 함께 격려하고 북돋아주는 귀한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고난의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목말라 하셨습니다. 야곱의 우물곁에서 생수를 약속하신 전능자의 거룩과 위대함이 치욕을 당하는 모순된 순간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존엄성을 포기하시고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역사 속에 오신 주님의 거룩함과 신성이 진정으로 계시된 순간입니다. 다른 사람 위에 서서 군림하려는 교만함을 버리고, 우리도 주님처럼 다른 사람 대신 욕먹기를 각오할 때 빛 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강한 자로서 약한 자에게 당하는 아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매를 맞아 죽은 것이나 그의 방법은 악한 무리들을 동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인으로서 악한 자에게 당하신 고난 이였고 , 강자로서 약자에게 당하신 고난 이였습니다. 여기에 최대의 순종의 표본이 되셨고 인내의 본이 되셨습니다,
힘이 있으면서도 약한 자에게 맞으면서 끝까지 견딘다고 하는 것은 갑절의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순복 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짖지 않고 안들을 말을 한마디만 들어도 억울하다고 펄쩍 뛰는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면 서도 최고의 형벌을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의하여 일보도 양보할 줄 모르고 현재를 위하여 한발자국도 옮기기를 아까워 하나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지옥의 형벌까지 받아주셨으니 그 고통과 그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내 힘만 못한 사람을 억누르고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아부하는 세대에 예수님께서는 강자로서 약자에게 굴욕을 참아 주셨으며, 창조주로서 피조물에게 고난을 참아주셨으니 이 고난의 위력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줄 수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말을 만들고 말을 돌리고 그래서 결국에는 그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다시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행동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아니해도 교회를 위해 복음을 위해서 말없이 묵묵하게 헌신하시는 그 모습, 교회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도 자신을 감추는 모습들, 교회건축을 하고 나서 교회가 혹시나 어렵지는 않은가 없는 물질을 모아서 드리시는 성도님들의 그 아름다움이 우리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모습입니다.
말없이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면서 섬기려고 하시는 많은 분들의 모습이 얼마나,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에서의 나 자신들을 돌아보는 귀한 사순절이 되십시다.

2.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었습니다.

사순절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며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골고다를 향하는 순례의 기간입니다. 만일 우리가 부활절의 새로운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먼저 그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사순절은 자신이 먼저 죽는 것을 배우는 때입니다. 우리는 기뻐하기 전에 통곡해야 합니다.살기 전에 죽어야 하고 높아지기 전에 낮아져야 하고 예수님의 겸손과 예수님의 사랑과 죽음을 배우는 때가 바로 사순절인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양이 성전에 들어 올 때는 살아서 들어오지만 제단에 올라 갈 때는 죽어서 올라갑니다. 아직도 섬김에 있어서 내가 살아서 마치 교회를 내가 부흥이라도 시키고,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우리의 교만이 다시금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함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사랑이 단지 교회성장의 이론에 불과한 것으로 축소화 된 다면 그것이 다시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고 목사님이 권면 하는 말에 이유를 달고 순종치 못한 우리의 모습들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분의 모습을 이 사순절에 보면서 나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는 것을 허락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인은 아무리 고난을 당해도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지만 의로운 자의 고난은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인에게 주시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성경을 보면 의로운 피가 철철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시기 위해서 무죄한 짐승을 잡아 피 흘리심으로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혀 주신 이후로 우리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방법으로 흠 없는 양과 소를 잡아 피 흘리는 제사를 명령하셨습니다. 죄는 우리 인간이 짓고 죽기는 죄 없는 짐승들이 죽은 것입니다.(창3:21)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흠 없으신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실 것과 그로 인한 구원의 역사를 예표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그 죄 값으로 피 흘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죄 없으신 흠 없는 분이시기에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분, 단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의 그분을 우리는 감상적이 아닌 진정한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내 죄 값은 사망인데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정죄를 받으신 속죄 양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 값을 속량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절망에 빠져만 있는 것은 십자가의 효험을 진정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진노의 저주 아래 떨어진 자리에서도 예수님 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십니다. 칼빈은 주님의 이 외침이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영혼과 한 묶음으로 묶어서 하나님께 위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판의 순간을 긍휼의 은총을 힘입는 순간으로 전환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 정진과 성취의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 가 되었으며 우리를 죽음을 그리스도가 대신 당하셨으니 그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케 된 고로 주님은 다 이루었다 고 선언하셨습니다.

3. 우리로 하여금 변화에 새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최초의 선교사는 구한말 제너럴 셔어만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던 토마스 목사 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쇄국정책에 의해서 그만 타고 온 배가 불에 타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으면서도 조선 땅에 힘을 다해서 성경책을 던졌다고 합니다. 왜 토마스 목사님께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그가 죄인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은 일을 보고만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무 죄도 없고 오직 복음을 이 땅에 전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찼던 토마스 목사님에게 고난을 주신 것은 바로 조선 백성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민족을 복음으로 구원하려는 선교사의 죽음은 즉 우리를 변화시켜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하려는 죽음인 것입니다.
죽음의 운명에 사로잡혀 인생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지를 모르는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알게 하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가 십자가에 달리심입니다.
목회자의 가장 큰 보람이 바로 성도들의 변화입니다.
위대한 기도의 사람 죠지뮬러 목사님께서 나이 80이 넘어 어느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어떻게 돈 한푼도 없이 만 명의 고아들과 10만명의 교회학교 아이들과 800만불이상의 돈을 쓸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때 죠지뮬러 목사님께서 강단에서 조용히 일어서시더니 앉고있던 의자를 마주 보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의자 위에 두 손을 깍지끼어 얹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러기를 한참 있더니 일어서시면서 이것이 비결입니다 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구속하신 그 분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다시금 새롭게 변화하는 귀한 계기가 이 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망친 것은 실패가 아니라 그것은 꿈을 잃어버리는 것, 비전의 상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대 사업가의 아들이 탄 경비행기가 사막을 지나다 폭풍을 만나 추락했다. 아버지는 수색대를 조직해 며칠 동안 사막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디가 추락 지점인지 또 아들이 생존해 있는 지 알 길이 없었다. 며칠 뒤 추락 지점을 발견했지만 비행기의 잔해 와 비행사의 시체만 있고 아들의 시체는 없었다. 아버지는 일단 아 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아들을 구출할 작전을 구상하며 기도 드렸다. 하나님, 내 아들이 살았는지, 살았으면 어디에 있는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저와 제 아들을 도와주시옵소서. 기도 가 끝난 후 아버지는 수백만 장의 전단을 사막에 뿌리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전단에 무엇이라 쓸 것인가, 사막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쓸 것인가, 무엇을 잡아먹고 사나운 짐승을 어떻게 피할 것인 지를 써야 할 것인가 난감했다. 고심을 하던 아버지는 결국 My Son, John, I Love You 라고만 써서 뿌렸다. 그리고 마침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기진맥진하고 좌절감으로 죽어가던 아들이 이 전단을 받아보 게 되었다. 아들은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 그렇다면 아빠는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용기를 가지고 버티자 하고 용기를 내었다. 후 에 아들은 수색대에 의해 구출되었다.
메마른 사막 같은 세상 주님의 피 사랑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 날 주라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고
너희 날 빛이라 부르면서도 우러르지 않고
너희 날 길이라 부르면서도 걷지 않고
너희 날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너희 날 슬기라 부르면서도 배우지 않고
너희 날 깨끗하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 날 부하다 하면서도 구하지 않고
너희 날 영원이라 부르면서도 찾지 않고
너희 날 어질다 부르면서도 오지 않고
너희 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 날 강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너희 날 의롭다 부르면서도 두려워 않느니
그런즉 너희들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독일 튀백교회의 어느 낡은 돌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제목이 있는 것입니다.


 
기사게재일: [2003-04-16 오전 9: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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