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집

12월 2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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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아버지 집

   

2008.07.23 00: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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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교회 진희근 목사님의 주일설교입니다
성경:요한복음 14:1-6, 요한계시록 21:18-27

이제 두 밤만 지나면 설날입니다. 어릴 때 손꼽아 설날을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세 밤 남았다. 두 밤 남았다. 오늘밤만 자면 된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어린 아이들이 왜 그렇게 설날을 기다리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설빔도 입을 수 있고 세배 돈도 받을 수 있고 기다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겠죠. 그러면 어른이 된 지금에도 설날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마도 그리운 고향에 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향에 가지 못하고 타향에서 명절을 맞이한다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죠. 제가 유학시절에 한 개월 정도 설교 목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고국을 떠나온 지 이십년, 삼십년 된 사람들입니다. 평소에는 먹고살기 바빠서 고국을 그리워할 틈도 없지만 명절이 되면 그렇게 고향 생각이 나는 모양입니다.
이제 명절이 되면 함께 모여서 찬송가처럼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고향의 봄`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이쯤 되면 벌써 다 두 눈에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고향의 봄` 여기서 부르는 것하고, 타국에서 부르는 것하고 완전히 느낌이 달라요. 저도 고국을 떠나서 외국에서 명절을 맞이해 보니까 참 한국이 그리워요. LA지역에는 한 두시간 정도 한국어 방송을 해줍니다.
그 시간대를 돈주고 사서 방송을 해주는데 한강변이 화면에 나오는데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납니다. 전 고향이 서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한강변을 보는데 왜 고향을 보는 것처럼 그립죠? 사실 여기 한국에 있을 때에는 서울이냐, 지방이냐 따지고 고향이 어디고 따집니다만 한번 고국을 떠나보면 고국 전체가 다 고향입니다. 그래봤자 비행기로 채 한시간이 걸리지 않는 그런 거리이지 않습니까. 다 고향이에요. 이번에 고향에 못 가신 분,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여기가 고향인데요. 자, 그럼 우리 모두는 고향에 삽니다.
이제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 가운데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 내가 언젠가는 고국에 돌아가리라.`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그냥 여기서 뿌리박고 살겠다.` 그렇게 자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가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생활하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아이들이 혹 한국말을 잊어버리면 큰일난 듯이 한국말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가르칩니다. 한국 예절에 대해서 문화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그리고 혹 여유 있는 돈이 있으면 그 외국 땅을 사는 것이 아니고, 본국으로 돈을 보내서 고국 땅에 땅을 마련해 둡니다.
이렇게 잘 준비한 사람들은 이제 언젠가는 고국에 와서 노후를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하지 않고 막연하게 지내다가 이제 육십 가깝게 넘어가게 되면 굉장히 고향이 그립게 되거든요. 그때 가고 싶지만 준비가 덜된 사람은 갈곳이 없어요. 한국은 부동산 가격이 높아서 외국에 있는 큰집 다 팔아봤자 여기 전세 값도 안나와요. 그러니 가고 싶지만 가지도 못하고,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노후를 보내는 그런 모습들을 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고향에서 살고 있는 참으로 행운아들인데 그럼 우리는 이곳에서 영원히 살수 있는 것입니까.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겠습니까. 고향의 정의를 `내 아버지 집이라.` 이렇게 내려본다면 아버지가 누굽니까? 아버지는 내게 생명을 부여해 주신 분입니다. 생명의 부여자가 아버지라면 진정으로 내게 생명을 부여해 주신 분이 누굽니까. 물론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만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육신의 아버지는 생명의 통로에 불과한 것이지요.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지요. 하나님이 내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만이 나의 진정한 아버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이곳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 보면 이같이 말합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들을 구원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을 향하여 가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언젠가는 천국에 가야해요. 그곳이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에요. 이곳은 잠시 지나는 여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초대교회부터 내려오던 전승에 의하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같은 말입니다. `이 세상은 다리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리에 집을 짓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천국을 향하여 가는 여정 속에 있는 다리와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 모든 것 다 투자하고 이곳에 집을 짓는 자는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 없는 자이지요. 이제 천국을 사모하는 자는 여기에 살지만 여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을 성공이라고 합니까.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았으면 그것이 성공입니까. 고향집에 당도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재미있게 여행을 했다 하더라도 그 여행은 실패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로마의 24대 황제인 세리우스 알렉산더는 자기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에 이처럼 고백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이제 보니 아무것도 아니구나.` 로마의 황제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지요. 그야말로 황제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그 황제의 지위, 그 권세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모든 것이었지만 이 순간에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더란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디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의 궁극적인 관심을 갖고 산다면,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은 `나는 과연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내 아버지 집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된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공원이 아니거든요. 공원은 아무나 오고싶어 하는 사람 왔다가 갈수 있지만은 아버지 집은 자녀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아무나 들어가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면 천국이 있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천국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우리 대신 죽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얼마 전에 `헤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라는 영화가 아주 크게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지요. 전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영화다 그래서 한 번 보고 싶어서 극장에 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는데 거기서 우리 교회 집사님을 만났어요. `아이고, 목사님 웬일이십니까?` `저도 영화 보러 왔지요.` 집사님이 대접하시겠다고 얼른 가서 팝콘을 한봉지 사다가 갖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예매하셨어요?` `아니요, 저는 예매 못했는데 집사님은 하셨어요?` `예, 저는 예매했는데요.` 그리고 표를 사러 가보니까 벌써 표가 다 나가고 없어요. 저녁까지 다 매진되었어요. 어떻게 합니까. 여기까지 왔지만 어쩔 수 없이 쓸쓸히 팝콘을 먹으면서 극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속으로 생각합니다. `집사님은 보는 영화 목사가 못보는구나.` 왜요? 예매를 안했기 때문에 그렇지요. 영화 보는데 집사, 목사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부자 가난한 사람, 악한 사람 착한 사람, 아무 구분이 없는 겁니다.
기준은 무엇입니까? 표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 겁니까. 착한 사람, 돈 많은 사람, 공부 많이한 사람이 들어가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착하든 악하든, 돈이 많든 적든, 공부를 많이 했든 적게 했든 그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것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이제 그러면 여러분이 확인해야 될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내가 영접했는가.` 이것을 거듭거듭 확인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다시 한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회로 가졌는데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자,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들어가야 할 천국이 어떠한 곳인지 한번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냐, 한마디로 말하면 천국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답고 존귀한 곳입니다.

이제 우리 요한계시록 21장 18절에서 21절 말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여러분 이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저는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읽어도 이게 얼마나 좋은지 상상이 안되요. 여기 나온 이 보석들은 굉장히 값비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들입니다.
그저 팥알만하거나, 콩알만한 반지끼고는 그걸 자랑하고 싶어 가지고는 `아이고 머리야..` 그렇게 귀한 보석들로 기초석을 깔고 온통 모든 성을 모든 집을 보석으로 지었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아요. 얼마전 동부 이촌동에서 24억원짜리 아파트가 분양되어서 `우와, 굉장하다` 그랬어요. 그게 보니까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았다고 그래요. 기껏해야 시멘트와 돌로 지었어요. 그 집 그렇게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처소, 천국에 있는 내 집은 가장 보석으로 지어진 집입니다. 뿐만 아니고, 그 주위에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달 실과가 맺히는 아름다운 과일나무들로 둘러싸여져 있고, 아름다운 온갖 종류의 꽃들이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천국을 상상해 보십시오. 제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상상한 그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좋은 곳입니다. 이같이 외적으로 아름답고 풍성하고 존귀합니다만, 그러나 내적인 것에 비하면 또 이 외적인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국의 핵심은 무엇이냐.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에 사람들과 함께 있고 우리가 밤낮 주의 얼굴을 뵈오면서 주님을 찬양하면서 뜨거운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에덴동산, 파라다이스라` 그렇게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에덴동산보다도 더 좋은 곳입니다. 물론 외부적인 환경은 동일한 하나님이 만드셨으니까 크게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뜨거움, 그 사랑의 질에 있어서는 엄격한 차이가 있겠지요. 타락하기 전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대해 감사했고,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예배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그 사랑은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드리는 사랑이고, 예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서 드릴 그 찬양은 단순히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드리는 그 예배일 뿐 아니고 구속함을 받은, 죄사함을 받은 구원받은 은혜와 감격으로 구세주에게 드리는 찬양과 경배와 사랑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 집에서 가졌던 부자지간의 사랑과, 나중에 아버지 집을 떠났다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부자지간에 갖는 사랑의 뜨거움이라는 것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떤 연주자가 아주 귀한 바이올린을 준비했습니다. 그 바이올린으로 귀국 연주회를 하려고 연습하는 중에 이게 너무 귀한 것이라고 긴장해서 다루다 보니까 그만 이 바이올린을 떨어뜨려서 깨어지고 말았어요. 아, 그래서 귀국 연주회를 못하게 생겼어요. 이것이 신문에 났습니다. 그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겼던 바이올린 제작자가 그 사람에게 편지해서 `그 바이올린을 가져오시면 제가 한번 고쳐 보겠습니다.` 그래서 그 바이올린 제작자에게 맡겼더니 이 사람이 정성껏 그 바이올린을 잘 고쳐서 한번 켜보니까 깨어지기 전보다도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들이실 그때는 타락하기 전에 그 상태보다도 더 좋고 아름다운 관계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뜨거운 사랑을 주님과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이 천국이지요. 그곳에는 죽음이 더 이상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사별의 고통을 겪은분 계십니까.

천국은 더 이상 사별의 아픔이 없습니다. 눈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억울해서 외로워서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없습니다. 질병이 없습니다. 유혹도 없습니다. 저주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하고 더러운 것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것들은 다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상태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조금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조금 일하면 피곤해지고, 늙어지는 이런 몸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몸 같은 영체로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성품입니다.
이기심, 시기, 질투, 악한 정욕으로 가득 찬 이 마음으로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주님을 닮아 가는 성화의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만, 이제 이 성화의 단계가 완성되고 주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 우리의 성품을 완벽한 성품으로 바꾸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온전한 순종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주님께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순결한 기쁨, 넘치는 뜨거운 사랑이 우리 가슴속에서 날마다 용솟음 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우리가 날마다 살 수 있습니다. 이 천국의 소망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에 비록 현실적으로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견뎌 나갈 수 있습니다. 요즘 이렇게 너무너무 살기가 힘들어서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육체의 고통 때문에 너무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전화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그것 때문에 더욱 더 천국을 소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현재 당하는 그 고통 천국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이런 고통이 없겠지.` 이 고통은 잠시입니다. 이제 천국 가면 이 고통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 때문에 천국을 더욱 더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현재 행복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우면 천국을 사모하는데 행복하면 그냥 마음이 흐물흐물해져 가지고 천국이 희미해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행복하다 할지라도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현재 여러분이 누리는 그 행복보다도 훨씬 더 큰 행복, 훨씬 더 큰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행복하면 `천국은 이보다 더 행복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천국은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들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부부간에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 `주님의 사랑은 더 뜨겁겠지.`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힘들어도, 행복해도 그것 때문에 천국을 더 간절히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땅의 삶이 언제 끝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 그 사람에게는 영원한 천국의 복락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라고 원하옵기는 여러분이 이번 설에 고향으로 가면서 `나는 지금 진정한 내 고향인 천국을 향하여 잘 가고 있는가` 한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육신의 부모님을 뵈러가면서 진정한 내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를 뵐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준비하십시오. 극장에 갔다고 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극장에 간 사람이 영화를 보지요. 교회를 다닌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 다닌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는가 그것을 다시 확인하시고 그것이 분명할진대 이제는 기뻐하며, 감사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나가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져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번 설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천국을 향한 소망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한 사랑의 삶을 나눌 수 있는 가장 복된 자, 가장 행복한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 귀한 천국의 복음을 우리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고, 우리 가족과 친척과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전도하는 이번 설날이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기사게재일: [2003-04-14 오후 1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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