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유산

12월 2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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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2008.07.23 00:3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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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집 전가화 목사님의 주일설교입니다
성경:사도행전 12:1-12

아들이 셋이 있는 어느 집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48살에 아버지 되시는 분이 몹쓸 암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는 데, 아들들은 그때가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대단히 속을 많이 섞였습니다. 아버지가 마지막 의식이 돌아왔을 때에 맏아들과 얼굴을 똑바로 보더니 가까이 오라하고 손을 꼭 잡았습니다. 풀려진 혀로 뭔가를 얘기하고 싶은데 표현이 안 되는 겁니다. 드디어 어떻게 마지막 힘이 오는지 표현이 되었는데, `애야! 너만은 우리 집안의 희망이 될 줄 나는 믿는다.` 그 후에 무슨 얘기를 하는데 더 이상 표현이 되지를 않습니다. 눈을 똑바로 보고 있는데 대단하고 장엄한 분위기 속에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그 후로 8시간을 사투를 하다가 운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들이 그 아버지의 눈빛 속에서 `애야! 너만은 우리 집안에 마지막 희망이 될 줄 나는 믿는다.` 그 마지막 유산이 그 아들의 생애를 확 바꾸어 놓터란 말입니다. 전혀 다른 아이가 되더란 말입니다. 지금은 그 분이 장성한 분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가문을 이끌어가고 가정을 세우고 잘 살고 있는, 그런 가정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최고의 유산이 뭘까? 어떤 유산을 상속받고 싶어합니까? 또 어떤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합니까? 요즘 동양에 `신인류`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캉가루족이라고 하는 신인류와 파라사이트라고 하는 기생충신인류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양이 세계를 책임질 만한 정신수준이 얕다는 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일본의 어려움은 일본국민이 갑자기 고령화현상이 나타나면서 18%가까이가 65세 이상입니다. 이제 10년 안에 33%가까이가 일본 노령화현상이 일어난답니다. 노동력도 없습니다. 그분들은 돈은 있는데 쓸 줄을 모릅니다. 돈은 저장하고도 전혀 쓰지를 않으니 유통구조에 제일 암적인 존재들입니다. 또 다른 문제가 뭐냐하면 파라사이트들입니다. 캉가루족입니다. 나이가 다 들어서 독립할 나이가 되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자기 돈을 벌면서도 전혀 독립의지가 없습니다. 붙어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등록금도 붙어만 있으면 됩니다. 집 값도 붙어만 있으면 됩니다. 직장에서 자기가 번 돈은 몽땅 자기 용돈입니다. 단 10원도 내놓지 않습니다. 혼자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파라사이트입니다. 붙어살고 어머니 뱃속에서 살고 있는 이 나약한 무리들, 이 신인류라고 하는 이상한 집단들이 동양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 동양이 아무리 발전되어도 의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세계역사의 축을 어떤 중심으로 이끌어간다고 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는 고발입니다. 잘 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오직 저들은 상속의 그 날만 기다리고 있다. 자식을 위한 최고의 유산이 무엇인가? 이 시대의 주제가 `유산이 뭐냐?`하는 것입니다. 유산이 뭡니까?

어느 미국의 석유 대재벌의 회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떠나자마자 가족들이 긴장했습니다. 누가 제일 좋은 상속을 받을 것인가? 장례를 치르고 고문변호사 밑에 다 모였습니다. 고문변호사가 유언장을 발표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유언장을 들은 다음에는 한마디라도 말을 하면 상속받은 재산을 다 빼앗깁니다.
맏아들. 큰 석유회사의 무엇을 하나 주었습니다. 맏딸. 어디에 있는 목장. 셋째, 넷째.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 봉투가 하나도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던 후계자라고 하는 언질도 주었던 그 마지막 손주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나갔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큰일났습니다 아니 이것이 웬일인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는 없습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봐라.` 봉투가 아니라 박스를 하나 가지고 나오는데, `아! 저 안에는 더 많은가보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그 안에는 12개의 비디오가 있습니다. 비디오가 유산입니다. 할아버지의 첫 비디오를 틀어보니 `너는 이제부터 1년 동안 한 달에 한 개씩 보면서 이것대로 해보아라. 그러나 만일 이것대로 지켜서 변호사님에게 한 달을 살고 결과를 다 보고를 해야 한다. 변호사님이 보고를 받아서 그것이 옳다고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낙제를 하면 지금 집에서 쫓겨난다.` 더 놀라운 일입니다. `12개를 들을 자신이 없거든 지금 그만두어라. 그러면 지금 사는 집으로 만족한다.`
벌떡 일어났습니다. 펄펄 뛰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이럴 수가 없다. 다 필요 없다.` 소리를 칩니다. 갑자기 감정과 기분의 노예가 되어서 지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뭐야! 비디오가 다라고? 이런 재산 필요 없어. 다 필요 없어.` 펄펄 뛰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마음의 평정을 찾은 친구는 그 동안 흥청망청 돈 쓰는 재미만 알았습니다. 한푼도 벌어본 적 없이. 부자 할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흥청망청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돈만 썼습니다. `정말 할아버지의 유산이 뭘까? 저 안에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과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기분과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고 마음의 평정의 찾으라. 기분과 감정의 노예는 동물과 짐승이 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첫 비디오를 틀었습니다. `너는 당장 텍사스의 농장으로 가라. 그리고 가면 나의 친구를 만날 것이다.`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가면 케딜락이 나와서 어마어마한 재산의 가문에 자기를 모셔갈 줄 알았습니다. 트럭이 왔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비행기에 일등석일 줄 알았는데 가보니 일등석이 아니었습니다. 3등석에 있으니 타려면 타고 말라면 말라는 것입니다. 화를 잔뜩 내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 꼴입니다. 거기서 `내 자리가 어디입니까?` 트럭에는 세자리만 있는데, 친구와 변호사가 타고나니 좌석이 없습니다. `내 자리가 어디입니까?` `올라면 오고 말라면 마십시오. 짐을 실으십시오.` `어딜 탑니까?` `알아서 타라.` 처음으로 짐짝 위에 타보았습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파괴하고 자기를 부시는 수업부터 다시 시킵니다. 도착했을 때에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내일 아침 6시 기상이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더욱 기가 막힙니다. `난 농장에 이렇게 오래 살았지만 너같이 형편없이 옷을 입은 사람은 처음이다.` 농장의 막노동꾼에게 무슨 고급 옷이 필요합니까. `저기가면 막노동꾼들이 입는 옷이 있으니 갈아입어라.` 하나도 봐주지 않습니다. 변호사도 가버렸습니다. 끝없이 달리는 사막에 가서 목장에다 나무를 박아 경계선을 하면서 손이 터지고 멍이 생기고 피가 터집니다. 기가 막힌 일이라고 하면서 한 달을 지냈습니다. 변호사가 드디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있습니다. 돈을 쓸데 알지 못하던 그 감격, 일을 통해서 오는 보람, 일 속에서 단단해지는 자신의 모습, 한달 동안 일했는데 밤을 세면서 쓸데없이 먹어 쪘든 살들이 다 빠져나가고 뭔가 자신감과 달라진 자신을 보았습니다. 노동이 주는 기쁨, 삶이 주는 감격, 뭔가 있다. 드디어 변호사실에 앉았습니다. `뭘 알았느냐?` `얘! 일이라는 유산을 알았습니다. 돈이 아닌 일이라는 유산을 알았습니다.`
두 번째 비디오로 넘어갑니다. 1500불의 현금을 던져줍니다. `한달 동안 다섯 사람에게, 네가 보기에 제일 귀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이 돈을 주어라. 이 1500불을 가지고 베풀어라. 써라. 돈은 단지 도구이다. 도구는 선한 뜻을 위하여 쓰면 선한 도구이지만 악한 뜻을 위하여 쓰면 악한 도구가 됩니다. 쓰지 않고 그냥 두면 녹슨 도구가 된다. 세상에 돈이 할 수 있는 것을 대신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은 귀하다. 그러나 돈처럼 무용한 것도 없다. 날 봐라. 미국 최고의 재벌로 엄청난 돈을 모아놓았지만 돈 때문에 너희 형제들이 싸움만 하고, 가족들이 불화를 일으키면서 이렇게 인생을 마치지 않느냐. 돈은 연장이다. 돈은 도구다. 내가 준 이 돈, 그 돈이 그 사람의 일생을 바꿀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서 써봐라.` 내가 준 돈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서 그 돈을 써라. 돈에 대한 유산의 가치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이분은 다니면서 드디어 그런 분을 찾았습니다.
흘러가면 친구라는 유산도 나옵니다. 여러분, 진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부자는 친구가 많은 사람입니다. 요즘 외로운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친구 없이 외로운 늑대처럼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 형제들하고도 아름다움을 못 나누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배움이라는 유산의 공부도 합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유산의 공부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유산의 공부도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라고 하는 유산의 공부도 합니다. 꿈이라고 하는 유산의 공부도 하고 나눔이라고 하는 유산의 공부도 하고 감사라고 하는 유산의 공부도,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하루라고 하는 유산의 공부도 합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유산의 공부도 합니다. 기도라고 하는 유산의 공부도 합니다. 통과하고 통과하면서 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로구나! 이제야 내가 왜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만들었고, 하나님이 나를 왜 이 세상에 보냈는지, 왜 할아버지가 저런 부자가 되었고, 할아버지가 왜 내게 유산을 주지 않고 이 12개의 비디오를 주었는지. 이것만 있으면 나 자신이 있다.`
드디어 다 통과했을 때에 변호사에게 `변호사님, 난 끝났습니다. 이것만 가지면 난 할아버지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니 웃으면서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한가? 앉아보게. 여기 뭐가 또 하나 있네. 봅시다.` 보니 세계를 움직이는 자선단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제단의 총재가 되는 마지막 것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뭡니까? 형제들 중에 악을 써서 몇푼 유산 받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재산상속자로서의 공부가 되어있으면, 할아버지가 원하는 어떤 유산상속자로서의 수준이 되어있으면 마지막 것을 맡기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너무나 그 과정이나 절차 없이 한탕, 한몫을 챙기려고 하는 것이 한국교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잘 되고 잘 되고 .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고 주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걸었으면 잘 안될 때도 그 분은 내 아버지입니다. 잘 안 되도 그 분을 섬겨야 됩니다. 왜? 나를 위해 생명을 걸었기 때문에. 나를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사람은 운명의 노예가 아닙니다. 단지 자기 마음의 노예일 뿐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그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운행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그 마음에 나아갈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심령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여건이 어떻든, 오늘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면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나는 이를 위해 설교하는 것이고 주의 뜻을 전하는 것이고, 나는 이를 위해 목회 하는 것입니다. 미래란, 그 마음에 나아가는 길을 찾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막혔는데 무슨 미래가 열립니까. 마음이 막혔는데 무슨 장래가 있습니까.

어느 비즈니스맨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스포츠센터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거기에는 런닝머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저는 거기서 한시간을 뜁니다. 목사님, 처음에는 천천히 뛰지만 점점 속도가 붙으면서 사람을 끌고 가는데, 숨이 펄펄 뛰도록 30-40분을 뛰고 나면 땀이 쫙 나는데, 제가 지금 막 전속력으로 달리는 러닝머신 위에서 뛰고 있는 심정입니다. 그런 삶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제 체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따라가야 하는데 멈출 수가 없네요. 숨이 가빠 오구요. 사업을 한다고 하는 것이 이렇게 힘듭니다. 스트레스는 몰려오고 이 스트레스 때문에 저는 끝없는 죄책감이 있습니다. 집에서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합니까, 남편의 노릇을 제대로 합니까. 조금만 기회를 놓치고 나면 떨어지고,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고, 그뿐 아니라 시간이 부족해서 잠도 못 잡니다.` 아내들이여! 여러분들의 남편들은 지금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현실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에 갑자기 세상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입니다. `목사님, 너무나 힘듭니다.` 제가 권사님의 손을 꼭 붙들고 `권사님, 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오. 라고 한번 해봅시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무슨 소리요.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 능력이요. 불평과 원망 가운데도 감사함으로 살수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이 능력중의 능력이요. 돈버는 것만이 능력이 아닙니다. 회사를 키우는 것만이 능력이 아닙니다. 재벌이 되는 것만이 능력이 아닙니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여건과 환경 중에서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능력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 얼마나 그 사람의 고마움이요. 얼마나 감사함이요.` 손을 잡고 `권사님, 떨지 말아요. 권사님, 털어 버립시다. 잊어버립시다. 그냥 생각일 뿐입니다. 잊어버려야 됩니다.`

우리가 감정과 기분의 종이 되다보면 모든 고난과 고통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하는 그런 겸손한 단계를 뛰어넘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사실 깊게 깨닫고 나면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기의 생각탓임을 인정하려고 하면, 대단한 겸손이 필요합니다. 겸손한 자가 하늘을 차지하고 땅을 차지하고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겸손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불평과 원망과 감정과 기분 속에 있을 때는 내 속에 대단한 온유와 겸손이라고 하는 단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을 알고 나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보다 더 편안한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기분이 나쁜 일이 생기면 이 이유를 논리적으로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려고 듭니다. 그래서 억지로 자기의 해석을 만듭니다. 상황이 어떻든, 왜 사건이 그렇게 되었든 상관없이 분석만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만든 덫에 자기가 걸려서 흑암과 혼돈과 깊음으로 감정에 빠져서 잠도 못 자고 결국은 자기 고집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과 사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가 만든 자기감정의 덫일 뿐입니다. 자기가 만든 자기 기분의 덫일 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단한 마음의 겸손과 자기를 녹이는 온유의 과정이 꼭 있어야 합니다. 주여! 감정과 기분이 들뜰 때, 하늘의 온유로 나를 채워주시옵소서. 하늘의 겸손으로 나를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이 삶을 망치는 나쁜 기분과 감정에서 오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해방될지어다. 자유함을 얻을지어다. 살아날지어다.

슬픔이니 기분이니 감정이니 하는 것들은 어떤 일을 하고 싶도록 만들기도 하고, 혹은 하고싶지 않게 만들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을 기분의 포로가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기분이나 감정의 포로는 동물이나 하는 짓입니다. 나이나 들어서, 배우기나 해서. 언제까지 그럴 것입니까? 오늘 이 하나님의 위대한 시간에, 오늘 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건에 여러분, 하나님의 권능에 생포되십시오. 이 시간 이 후 나는 감정과 기분의 포로가 아니라 나는 이럴 때 내 겸손과 온유의 샘을 터뜨려서 알지 못하는 내 샘물을 경험하리라.
나는 목사로서 기분과 감정의 잘못된 사용이 한 생명의 미래에 얼마나 큰 불행을 가지고 왔는지를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어느 기업가가, 어느 생명이, 어느 가정이 감정과 기분의 노예가 되어 그의 가정과 기업과 장래가 망가진 것을 보아왔습니다. 난 최근에도 어느 장로님과 전화를 했습니다. 그 분을 위해서 나는 20년 간을 기도해주었습니다. 삶을 불안하게 바라보는가, 편안하게 바라보는가.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가. 여기에 따라서 기분이 확 달라집니다. 우리는 내 기분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의 그리스도의 영이 사니 나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로다. 내가 감정을 내고 기분을 내는 것은 상황적이 요인의 사실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내면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여러분, 설교라고 하는 것은 영적사건으로서의 사건입니다. 종교행위로서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다가 `아! 이것이로구나.`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령의 검으로 얻어맞는 것입니다. 육신의 병이 있으면, 의사가 피할 수 없도록 수술시키는 것처럼, 예배드리다가 하나님의 성령의 검에 수술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수술대에서 성령의 칼로 베임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은 기분과 감정의 두려움 너머에 있습니다. 한 인간이 진정한 가치! 요즘 자기의 몸값을 올려라! 어떤 사람은 억대의 연봉을, 어떤 사람은 몇 백만원하는데, 자기의 몸값, 자기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올리느냐?
인간의 진정한 부가가치가 뭘까? 지금 자기로부터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가치입니다. 감정과 기분의 포로가 되어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 이것이 뭐가 가치가 있는 인간입니까? 천국지향적인 가치관. 이것을 다각적으로 보면 어떤 일이 있을까? 장기적으로 보면 어떤 일이 있을까? 내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내 눈이 아닌 내 남편의 눈으로, 내 눈이 아닌 내 목사님의 눈으로, 내 눈이 아닌 내 선배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이 원칙은 무엇일까?
다각적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원칙적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절대로 종교적인 행위를 하다가 가지 마십시오. 종교가 한 인간과 한 집안에 준 피해는 어마어마합니다. 잘못된 종교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망하고 국민이 망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는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해방운동이고 자유운동이고 진리의 운동이고 복음의 운동입니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감정도 기분도 결국은 결정적입니다. 정말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과 기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제이슨이 `아니야! 할아버지와 나는 특별한 관계였어. 나는 이렇지가 않을꺼야!` 여러분, 우리 어떤 일을 당할 때, 기분과 감정의 포로가 되어서 천길 만길 떨어집니다. 그럴 때에도 `아니야. 나와 내 아버지는, 나와 우리 하나님과는, 나와 우리 주님과는 특별한 관계야!. 나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야!` 외치며 기도하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 신앙으로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분노와 절망대신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금 다르게 살겠다. 지금 이 시간에 나는 달라졌다고 하는, 지금 이 시간부터 두 번 다시 나는 감정과 기분의 포로가 아니라, 내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외칠 수 있는 결단을 하십시오.
믿음의 결단은 영혼을 치유하는 약입니다.
지금 성령의 힘이 운행하실 때에, 모든 낡고 어리석은 생각으로부터 해방되십시오. 때로는 내 자신에 보여주는, 때로는 내가 나를 봐도, 때로는 내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를 보아도, 때로는 자기 자신도 자신이 보여주는 모습에 실망스럽지만, 그러나 아직도 내 영혼의 어디에는 희망의 불씨가 있다고 하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전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때로는 내 스스로의 행동에 내가 환멸을 느끼고, 내가 사랑하는 아내나 자식이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 환멸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그 때도 아직 우리는 뭔가 이 생명 속에 공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불씨가 있다고 하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긴급동의를 하나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해서 이를 것이 없다고 하면 계속 간구하십시오. 여러분, 기도해서 뭘 잃어버릴 것이 있겠습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하나님! 내가 살고 있는 길보다, 내가 알고 있는 길보다 내가 가고 있는 길보다 하나님이 더 복된 길을 준비할 줄을 믿습니다. 허락하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요구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는 믿음이 마음 한 구석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내가 엉터리로 살았는데, 뭘 기도를 해.` 구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는 낡은 믿음은 당신을 점점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랬습니다.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을 자세히 보니, 하나님 앞에 저들은 끊임없이 구했습니다. 실패의 순간에도 낙심의 순간에도, 저들이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한 순간에도 끊임없이 구했습니다. 정확하게 구했습니다. 자신 있게 구했습니다. 진심으로 구했습니다. 성실하게 구했습니다. 열정적으로 구했습니다. 또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또구 하고 또 구했습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나님의 아들도 인간에게 구했는데, 왜 인간이 못구합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저 산지를 내게 주시옵소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저 바라보는 대륙을 주시옵소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저 영혼들을 내게 주시옵소서.` 어떤 사람들은 떠있는 해를 향하여 `하나님! 저 태양이지지 않게 하시옵소서. 태양아 머물러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 내 조국의 가난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내 후대의 가난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그 사람들이 떳떳하고 완전해서 구했겠습니까? 하나님과 나와는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런 내 감정과 기분의 기가막힌 일에서도 아직도 이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새들에게 먹이를 줍니다. 그러나 둥지에 가만히 앉아서 파라사이트처럼, 캥거루족처럼, `하나님, 먹이도 둥지까지 보내주시오. 입을 벌릴테니 먹여주세요.` 이 하나님의 세계는 파라사이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캉가루족도 없습니다. 이것은 동양윤리, 쉽게 얘기하면 유교윤리가 만들어낸 이상한 것입니다. 과잉보호.

목회를 오래하면서, 자기 수준에 주목받는 정상에 간 소수의 사람들만이 만드는 기적적인 공식을 보았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자신을 향해서 끊임없는 요구를 합니다. `너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넌 더 잘할 수 있어. 넌 이겨낼 수 있어` 어떤 정상에서 주목받는 소수의 무리에 서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서 끊임없는 요구를 합니다. 감정과 기분의 종이 된 사람들은 남을 향해서 요구를 합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요구합니다. 왜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요구를 합니까. 하나님께 요구를 해야합니다.
성공의 공통분모에 대해서 우리는 요구를 많이 했습니다. 성공하는 자들의 공통분모를 보면 실패하는 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는 단순한 습관이 있습니다. 저들도 늘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감정과 기분을 억누르고 자기가 가야할 환상과 미래의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겨나가는 습관이 내면화되고 성품화 된다. 꾸준한 끈기와 요구이다.
여러분, 좋은 결과란 다름 아닌 꾸준하고 끈기 있는 요구를 행동을 옮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인 저는 제 인생의 탐구에 도구는 제가 그렇게 많이 읽은 책도 아니고, 많이 아는 인간관계도 아니고, 학벌도 아닙니다. 제 인생의 진정한 탐구의 도구는 아직까지 기도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감정과 기분에 얽매이지 말고 기도하여 마음에 평정을 찾는 제이슨이 되십시오.

초대교회에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 잘 아는데로 펄펄 끓는 자라서, 툭하면 감정과 기분. 남의 귀를 짜르고 배신을 하고, 그 감정과 기분에 막 날 뛰던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성령의 능력에 잡혀서 이제 뭔가가 되는 것 같더니,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분이 그 성격에 가만히 앉아있었겠습니까?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속수무책입니다. 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라는 위대한 유산은 초대교회들은 썼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있을 때에 그 소식을 들은 교회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더라. 이것이 여러분들이 들어야할 음성입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더라. 여러분, 묻습니다. 교회는 어느 장로를 위하여 기도하더라. 교회는 어느 권사를 위해 기도하더라. 교회는 어느 기업을 위하여 기도하더라. 자신있습니까? 교회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해줄 그런 믿음으로 가고 있습니까? 그런 헌신의 수준이 있습니까? 목회자들이 어느 장로, 어느 권사를 위하여 합심하여 기도하더라!
하나님의 교회의 헌신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세금과 같은 것입니다. 왔다가 가면 됩니까? 앉았다가 가면 됩니까? 교회는 저를 위하여 기도하더라고 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들이 기도하니 베드로의 쇠사슬이 끊어졌습니다.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사겹으로 겪었던 모든 장중한 옥문에 있던 사람들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지금도 진리입니다. 교회가 누구를 위하여 기도하더라고 할 때에, 교회가 어느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더라고 할 때에 사중 오중 겹겹히 쌓여도 걱정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보내서, 하나님의 성령이 일어나서 풀어놓습니다. 기도는 아직도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유산입니다.
제일 무서운 손실이 뭔지 아십니까? 교회의 지원기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정하거나 말거나 나는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인간의 제일 무서운 손실이 뭔가? 교회가 더 이상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마지막 부탁을 전합니다. 아무개 장로야! 아무개 권사야! 아무개야! 너만은 내 교회의 마지막 희망이 될 줄을 믿노라. 그 재벌의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제이슨을 놓고 테이프에서 `너만은 네 집안의 마지막 희망이 될 줄을 믿노라.` 암병으로 죽어 가는 아버지가 세 아들을 모아놓고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애야! 너만은 우리 집안의 마지막 희망이 될 줄을 믿노라.`

옥중에 갇혔던 베드로의 옆구리를 들고 찬 것처럼,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의 옆구리를 찰 것입니다. 깨웁니다. 벌떡 일어나십시오. 일어나라! 쇠사슬이 벗겨졌으니 일어나 나가라!





 
기사게재일: [2003-04-14 오후 12: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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