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차원 (아가 2:10-14절)
아가서를 읽어보면 사랑의 편지처럼 느껴집니다. 사람 연인의 관계 속에서 많이있을 수 있는 감정 그리고 문학적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성경으로써 부적합하지 않는가 라고 보기도 합니다. 본서에는 에스더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그리고 여호와라는 단어 중 여호와는 한번 쓰여져 있고 하나님은 쓰여져 있지 않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보편성 기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나 아가서에는 영적인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여 있는데 그것이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할 때 다른 어떤 능력과 기적을 충분하게 나타냈다 할지라도 사랑이 그곳에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고전13: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이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요일4: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중요한 것은 사랑의 현상으로는 찬란하게 빛을 발하여 사람을 감동하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이러한 사랑은 가치가 적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하여 사랑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랑에는 강한 사랑도 있습니다.
사 랑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어 지면서 나타나는 것이 상대와 상대 사이에 사랑의 다리가 만들어지고 그리고 이 다리를 통하여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지면 사랑의 강도는 강하여져 갈 수 있습니다. 강하다는 것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인데 오늘 아가서2:10 나의 사랑 나의 어여뿐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라고 노래합니다.
사랑은 둘이던 셋이든 열이든 하나가 이루어 질때 강함을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이나 늘력이 개체가 되어서도 강한 사랑으로 활동을 하는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하는것은 죽음이 사랑을 깨뜨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코자 몸소 오셔서 십자가의 형틀에서 무자비한 죄인의 몸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강도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끝이 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삽자가의 죽음은 인류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었지요. 인간들이 알수 없는 고귀한 사랑을 보여 주셨고 알게 하신 위대한 현장이 바로 골고다 언덕에서의 사랑의 모습니다.
사단과 마귀가 하나님과 사람과 사랑을 막으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지만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사실적 사건으로 승화 되였던 것입니다.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예수님을 구원의 도구로 쓰셨던 목적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3:16)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우리보다 더 일찍이 사랑하셨고 더 귀중하게 사랑 하셨음을 예수님은 (요17:23-24)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다 라는 것과 예수님과 제자들이 또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랑으로 일치가 되게 하려는 것임을 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랑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사도바울은 환난이나 핍박이나 죽음이라 어떤 것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고 예수와 함께 하므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랑의 사람이 된것입니다.
2.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고귀함을 발하는 귀금속의 특징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영롱한 빛은 혼탁한 환경속에서도 그 자태를 유지 합니다.
“아가서 8:6-7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학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찌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어떤 변화에도 사랑은 소멸되지 않고 영원하리라는 것입니다. 변치않는 주님의 사랑 찬송214장 이렇게 사랑의 불변성을 솔로몬이 말하여도 사람의 사랑은 변 할수 있는 위험성이ㅡ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룻기서 보면 나오미에게 두 며느리가 있는데 하나는 오르바며 작은 며느리는 룻입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이 죽으므로 며느리는 둘 모두 홀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고향 친정으로 가서 있다가 결혼해서 다른 남자와 행복하게 살으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오르바도 룻도 나오미를 다르겠다고 하다가 먼저 오르바는 나오미를 남겨 두고 고향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 나오미가 둘째 룻 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룻기1-15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고 강권합니다. 그러자 룻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룻1:16-17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 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장사 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여지는 풍속도 와 또한 어른과 시부모님을 홀대하거나 분가하여 살려는 풍조는 사랑이 없거나 개인주의 와 이기주의에서 낳은 결과라고 봅니다. ] 아름다운 부모님의 섬김과 사랑은 자신의 미래가 고생스러워도 끝까지 그 사랑을 보인것은 오늘날 우리가 귀감으로 여기며 본을 받아야 합니다. 룻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것입니다. 사무엘상15장 말씀에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리 그는 사람이 아니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도 넘치는 충만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3.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흔적은 육체에 있고 또 하나는 마음속에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이 두가지가 모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현 한다면 전 인격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삼상18:1-3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이두사람 가문으로 보면 원수의 두 가문인데 요나단은 다윗을 위한 친구의 사랑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다윗을 보호합니다 이로 아버지 사울왕 으로부터 죽임을 위협을 받습니다
삼상20:33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한지라 요나단은 자기의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윗을 보호 합니다. 다윗을 사랑하니까 이 두 사람은 육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관계한것이 없으매도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예수님도 친구를 위하여 자기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우리나라의 고전에 있는 춘향전의 내용을 보면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내용이 보이지 않는 사랑을 했다. 광할후에 연못가에 만남이후 한양으로 과거 보러간 후 이들에게 문명이 갈려 춘향은 괴로움이 많이 다가온다 그러나 사랑하던 이를 위하여 힘쓰는데 이 사랑도 둘 사이에 보이지 않은 사랑이 있는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사랑 어떤 사람은 보이는 사랑을 추구한다 변사또의 사랑이 그것이다 보이는 사랑은 잠시잠간이다 썩어져 없어질 사랑이다.
보이는 사랑은 잠시잠간이다 썩어져 없어질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사랑은 보이지않는 사랑이다. 그 보이지 않는 사랑은 영혼하며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줍니다 천지는 변하여도 변치않는 주님의 사랑안에 우리에 모든 삶을 맡기며 감사하므로 주님께 나가는 큰 믿음의 소유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순복음 창성교회 정천희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