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실 때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죽은 지 나흘 되는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그리고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요11:44) 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적절하고 실감나는 말씀입니까? 나사로가 살아 나오는데 수족은 베로 묶였고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걷도록 풀어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죽은 자는 묶어서 베옷을 입히는 어울리고, 산 자는 멋있고 활동하기 편리한 옷을 입는 것이 어울립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보면 죽은 자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났습니다. 이전에는 죽은 자가 입는 베옷을 입었다면, 지금은 산 자가 입는 아름답고 활동적인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습니까? 더운 여름에 겨울옷을 입으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름이라고 아무 옷을 입어서 안됩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나 지위에 어울리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할 것입니다.
1.옛 사람을 벗으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리고(22절).
옛 사람을 버리라 했는데 옛 사람이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사람의 생각이나 행실이 옛사람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생활, 어두움 속에 있는 생활, 육체의 욕심대로 사는 생활, 눈에 보이는 세상 중심의 생활이 다 옛 사람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야 합니다.
옛 사람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좀 더 살펴봅시다. 옛 사람은 그 마음이 허망한데서 출발합니다. 허망은 우상숭배와 연관된 말입니다. 우상은 허망합니다. 말도 못합니다. 걷지도 못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탈취하고 좋아했지만, 다음 날 다곤 신전에 들어가 보니까 다곤 신상의 목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다곤신은 자기 목도 지키지 못합니다.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신상을 부수었을 때 동네에 난리가 났습니다. 기드온이 범인이라는 것을 안 동네 사람들이 격분해서 기드온을 잡아죽이자 했지만, 막상 부서진 우상은 말이 없었습니다. 우상의 허망함을 잘 말해 주지 않습니까? 이런 우상을 섬기는 것이 허망한 마음입니다. 허망한 마음은 자기를 왕으로 섬기고, 거짓되고, 열매 없는 것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허망한 마음은 굳어진 마음으로 발전합니다. 허망한 마음을 가지면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하고 마음이 돌같이 굳어집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18절). 자신의 잘못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깨어지는 것만 기다릴 뿐입니다. 그 결과 굳어진 마음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에게 없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나아가서 19절을 봅시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함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19절). 감각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방탕 곧 방종합니다. 무슨 행동이든 합니다. 더러운 것을 행합니다. 성적인 타락을 비롯해서 더러운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 행동이라도 합니다. 부분적으로 더러운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더러운 것을 행합니다. 마지막 동사가 행한다 는 말입니다. 허망한 마음이나 돌같이 굳어진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두운 이야기 중에 한 레위인이 첩의 시체를 쪼개서 12지파에게 보내는 사건이 사사기 20장에 기록되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이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히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찌니라(삿20:5-7절).
레위인이 첩을 두고 살았습니다. 첩이 집으로 갔는데 데리러 갔습니다. 첩을 데리고 오는 중에 기브아에서 유숙하려 하는데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한 노인의 집에서 유숙하는데 밤에 남색하는 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노인의 딸을 마다하고 기어이 레위인을 원합니다. 레위인은 첩을 내어줍니다. 비류들에게 밤에 욕을 당한 첩은 죽었습니다.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쪼개서 12지파에게 보냅니다.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사람들을 위해 싸웁니다. 그 결과 베냐민 지파가 거의 진멸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방인과 같은 생활을 아직 청산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까? 다 벗어버립시다.
2.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데,어떻게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3-24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으심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시킴으로 다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지음을 받아야 합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아야 합니다. 의로 지음을 받는 것은 모든 생활 가운데 하나님 앞에 올바르고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어 악에 물들지 않은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지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지으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 사람 됩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20절).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지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배운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모습과 기도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삶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지식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함으로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순종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삶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으려면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죽은 자에게서는 배우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책이나 기록으로 배울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살아 계신 주님과 날마다 교제함으로 주님을 배웁시다.
말씀을 통해 새로운 삶을 배워야 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21절). 이방인들은 허망한 마음이 있고 총명이 없는데, 우리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규례를 내게 가르치소서(시119:9-12). 요셉은 비록 노예였지만 주인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새 사람이 되기 원합니까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구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되라 하셨습니다.
3. 그러므로 이렇게 삽시다
25-32절에는 새 사람이 되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다섯 가지로 말합니다.
1)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25절). 사단은 거짓말의 아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거짓과는 상관없이 참되어야 합니다. 거짓은 개인만 아니라 성도의 교제 곧 교회를 파괴합니다. 참 말만 합시다. 정직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최초로 범한 죄가 거짓말이었고,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음으로 엄히 징계하셨습니다.
2)분을 내지 맙시다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26-27절). 마귀는 분을 이용해서 불타는데 기름을 붓듯 역사합니다. 거룩한 분노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분내는 목적이나 분을 표하는 방법이나 분을 내는 시간이나 분을 낼 대상이 언제나 올바른지 생각해야 합니다. 혹시 분이 날지라도 오래 간직함으로 마귀가 역사할 틈을 주어서 안됩니다.
3)도적질하지 맙시다 : 도덕질 하는 자는 다시 도덕직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28절). 도적질은 남을 해치는 것입니다. 사단은 해치고 죽이기 위해 왔는데, 도적질하는 자는 마귀의 종입니다. 도적질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함으로 남을 돕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일을 했고, 바울도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비량으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아들에게 장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4)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29절). 여기에 더러운 말은 중상 모략이나 악담이나 험담을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썩은 과일과 같습니다. 더러운 말은 단지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속에 있는 인격이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오히려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축복하는 말을 합시다. 오직 은혜와 사랑과 진리와 축복하는 입술이 되게 하소서! 만약에 우리의 말이나 속 사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합니다.
5)악독과 악의를 버립시다 :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화 함께 버리고(31절).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기고 동생을 죽이려는 악독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20년 후에 극적으로 화해하기까지 원수를 갚을 마음을 품었습니다. 얼마나 잘못되었고 불행합니까? 그러나 형님들에게 은 20에 팔려 애굽에 노예가 된 요셉은 형님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돌로 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사람들을 둘러보시면서 죄 없는 자가 치라 하셨습니다. 아무도 치지 못하고 돌을 놓고 돌아갔습니다. 불쌍히 여기고 용서합시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32절).
성도의 진정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부자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입은 자입니다. 우리는 목초를 가꾸든 잡초를 가꾸든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옛 사람을 입든 새 사람을 입든 둘 중에 하나입니다. 새 사람 되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새 사람 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