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유

07월 31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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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자유

   

2008.07.23 00: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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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님의 주일설교입니다

갈라디아서 5: 1-15

예수 믿는 것은 우리가 조금 착해지고 개조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소유가 좀 늘어나는 것, 그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내 죄는 십자가 위에서 처단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십니다. 용서해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십자가에서 처단했기 때문에 나를 의롭다고 여겨주십니다. 또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이것이 예수 믿는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라면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하나님께 속한 빛나는 아름다운 것들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우리의 생애가 끝난 다음, 우리들은 이 영광의 땅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빛나는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엄청난 축복들을 영원토록 누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속들 중에 가장 빛나는 상속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내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식이라면 아버지의 집 얻는 것 보다, 아버지의 패물을 갖는 것 보다, 아버지의 재산을 갖는 것 보다 더 큰 상속이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그대로 물려받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상속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날마다 이루어지고 우리가 천국에서 눈 뜰 때, 완전하게 그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있는 영광을 경험하고 놀랄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신분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주께서는 이제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니까 이러 이러한 삶을 살아야 된다고 갈라디아서 5장, 6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이 땅에서 누릴 가장 첫 번째 삶의 모습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 가운데 두 종류의 자녀가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한 자녀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 땅에 온 이삭입니다. 그러나 한 자녀는 사람이 노력해서 만든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력으로 애쓰고 수고해서 만든 이스마엘을 그 집에서 쫓아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너의 모습 중 어디에도 종의 형태는 갖지 않았으니까, 온전한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서 자유를 누려라. 이것이 기독교인의 자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도 내 주인 아닙니다. 세상의 누구도 내 주인 될 수 없습니다. 내 상사가 내 주인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으면 형제, 자매로 만나면서 이 자유를 누립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너희들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렇습니다. 아들은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 집에 같이 있을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손님입니다. 우리가 그 손님을 환대합니다. 음식도 대접하고 잠자리도 마련해줍니다. 그렇지만 손님은 자유롭게 냉장고 문을 못엽니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자유가 없습니다. 규칙 속에 삽니다. 또 다른 한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없는 일이지만 집에서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같이 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규칙 속에 매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부하러 갔다 돌아온 아들은 오자마자 혼자 난장판을 피웁니다. 신발을 제 마음대로 내던지고,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제 마음대로이고 그리고 냉장고 문 여는 것도 제 마음대로 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스탈린 같은 독재자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고 그의 권위에 매여서 숨도 제대로 못쉽니다. 그런데 스탈린 딸은 그 앞에서 해롱거리며 아빠 손잡고 마음대로 자유를 누리더라구요.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엄청난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므로 다시 하지 말아야될 것 있습니다. 종의 멍에를 매면 안됩니다. 우리들이 과거에는 죄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가 시키는 대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던 우리에게서 그 죄의 사슬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규정하는 율법의 그 얽매임에서 풀어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그 죄로 정하는 율법이 다시는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래도 조금은 해야되지 않느냐? 율법을 행해야 된다.` 아니, 율법 범죄함을 정죄하는 것을 모두 없애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적으로 율법을 없애버린 자유를 이야기하자 `그러면 그렇다, 네 말이 맞다. 그러나 그 중의 하나만은 지켜야될 것 아닌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할례는 지켜야한다.` 그렇게 꼬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할례는 특별히 이스라엘 본토 사람들에게는 손쉬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기 때문에 아픈 것도 모를 적에 할례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방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경우, 외과적인 수술인 할례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피했습니다. 그런고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받는 구원과 너희의 구원은 다르다`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이 할례를 통해서 구원이 왔다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는 우리 구원의 유익이 되지 못한다 고 말합니다. 그리고 네가 할례 하나만 받은 것 그것을 자랑하는가? 아니다, 원래 율법을 지키려면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 할례 하나만 아니라. 너희들이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으려고 노력한다면 너희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자로다. 주께서 나를 위해서 행해주신 그 일을 모독한 자이고 주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자라 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좇아 우리 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것을 누리고 살고 소망하고 삽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삶의 내용은 사랑으로 좇아 믿음으로 봉사하고 믿음으로 수고하는 것이지, 수고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가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그 사랑 때문에 나도 모르게 봉사하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율법주의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은 누룩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것 하나만 딱 지키라고 해놓고 사실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 하나가 반죽에 붙으면 그대로 있지 않고 계속 부풀어져 반죽을 커다랗게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적은 율법 하나만 지키라는 말에 속지 말아라. 그것은 결국 다시 율법으로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것이라. 야, 너희들이 할례 받은 것 자랑하느냐? 아예 거세해라. 라고까지 말합니다.
여러분, 그러면서 우리에게 놀라운 자유를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또 말합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8:36)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심으로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나는 자유자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도 내가 인생을 마음대로 살 수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인간의 자유를 선포할 때 집회 결사의 자유, 주거 이전의 자유, 종교와 생각의 자유를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보다 더 엄청난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그 죄를 규정하는 모든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자유는 어떤 자유인가요? 그러면 자유했기 때문에 내가 마음대로 내 인생을 살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13절부터 15절까지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는 자기 욕심껏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는 자유입니다. 우리들은 자유를 마음대로 방종하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이 육체라는 말은 타락한 본성의 충동에 따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자유가 있습니다. 어떤 자유가 있습니까? 탕자의 비유에서 보면 탕자는 아버지께 졸라서 자기 재산을 갖고 아버지 집을 나가는 자유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자유는 이런 소모적인 자유, 소극적인 자유, 도피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적극적입니다. 탕자가 어느 날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 떠난 그 삶은 절망이었고 저주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결심합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 다시는 내가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집에 그 품군으로라도 써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그는 돌이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 집을 나가는 자유도 자유이지만 돌이켜서 아버지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자유입니다. 탕자는 집에 돌아갑니다. 맨발로 누더기를 걸쳐 입고 아버지 집에 갑니다. 그 세월과 그 고생이 그 얼굴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누더기 입은 그 사람이 이 집 아들인줄 몰랐습니다. 사랑의 아버지는 저 동구 밖에 그 아들이 나타나자 상거가 먼데, 아직 거리가 많이 먼데 알아봅니다. 대개 나이가 들면 눈이 나빠집니다. 그런데 나이도 뛰어넘어서 그 아버지는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뛰어 달려갑니다. 뛰어 달려가는 이 노인의 발이 사랑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덥석 껴안습니다. 껴안은 그 가슴이 사랑입니다. 더러워질 때로 더러워진 그 목에 입을 맞춥니다. 맞추는 그 입이 사랑입니다. 온통 사랑입니다. 여러분, 탕자가 외롭게 집을 나가는 것이 자유라면 그처럼 풍성한 아버지의 사랑의 품 속에 뛰어드는 것도 자유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주 밖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나가서 외롭게 발을 떠는 것도 자유라면, 내가 내 잘못을 깨닫고 우리 주님 앞에 돌아서서 주님의 품 속에 뛰어드는 것도 자유입니다. 적극적인 자유입니다. 긍정적인 자유입니다. 생명의 자유입니다. 풍요를 향한 자유입니다. 우리들은 마음대로 행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품 속에 뛰어드는 자유, 아버지와 함께 영원을 기뻐하는 자유, 아버지를 즐기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마다 자유를 누려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즐기는 자유예요. 자식은 부모를 즐깁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여기 예배하러 올 때, 주일날 예배 안드리면 벌받은 것 같아 오셨다면 안오셔도 됩니다. 그러나 내가 내 아버지 집에 들어오는 복된 순간, 내 모든 소원을 아버지에게 드리고 찬양함으로 우리 아버지를 만나고 기뻐하는 예배라면 바른 예배입니다. 이 영광이 우리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입니다.

그런가하면 자유의 두 번째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자유입니다. 내가 자유인이니까 내 것을 먼저 선점하지 않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섬기는 자유입니다. 섬기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섬김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종 노릇 하는 것, 어떻게 보면 남편은 아내의 종입니다. 직장에서 화나고 분이 차올라와 사표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마누라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사표를 다시 구겨놓고 상사의 명령 앞에 조용히 머리를 숙입니다. 종처럼 그렇습니다. 과거 같으면 그래도 월급봉투라도 한 달에 한번 가져다주면서 내가 벌어온 것 받아 하며 목에 힘 줄수 있는데, 요즘은 온라인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명세가 다 드러납니다. 세상에 그런 종이 어디있어요? IMF, 그 어려운 시절에 남편들이 아내들의 종입니다. 또 우리 박영덕 목사는 설거지까지 같이 한답니다. 제 아내가 늘 그 설교테이프를 들어보라고 합니다. 우리 박 목사님은 아내가 좋아서 어떻게 사랑할까 하다가 설거지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퐁퐁` 쓰는 것이 퐁퐁 재미있다나요? 사랑하면 가능합니다.
그런가하면 남편들이여, 아내들 편도 좀 들어주십시오. 똑같이 공부하고, 못생기기나 했어요? 그런데 남편을 위해서 빨래 비누처럼 생애가 닳아지고 있쟎아요? 억울하지 않아요? 잠자다가 물 떠와 그러면 영원 전부터 물 떠올 여자처럼 물 떠와요. 자기 발로 가서 마시고 와! 하고 악 한 번 꽥 지르면 될 것을. 종 아니고 뭡니까? 사랑하기에 종노릇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억지가 아니라 기쁨이 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의 죄가 있어요. 자식들에게 꼼짝 못하는 부모라는 죄,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이 사랑으로 종노릇해야되는 자유입니다.
저는 우리 남서울은혜교회가 대한민국에서 이것 하나만 바로 선다면 교회를 바꾸고 이 사회를 바꿀 줄로 믿습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이 섬기는 직분이고 종노릇하는 직분인줄 알고 실천한다면 한국 교회에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평신도 보다 집사가 더 높고, 집사 보다 권사가 더 높고, 권사 보다 장로가 높고, 장로 보다 목사가 더 높고 목사 보다 당회장이 더 높고... 아닙니다. 거꾸로예요. 주께서 말씀했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우리 나라 말에는 장관입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Minister예요. Minister라는 말은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장관은 우리 개념이예요. 저들이 성경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그들의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클린턴 욕해도 괜찮쟎아요? 집사라는 단어는 하인이라는 말이예요. 심부름꾼이라는 말이예요. 장로는 상머슴이라는 말입니다. 제일 앞서가서 섬기는 사람, 목사는 Minister라고 합니다. 섬기는 자예요. 교회의 기반이 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사도 바울은... 그랬는데, 이 종은 노예라는 말입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노예 되었다. 너희들에게 노예가 되었다. 사랑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종님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종은 님자 붙여서는 안됩니다. 종은 놈자 붙여야 됩니다. 제가 어떤 교회를 보고 속이 뒤틀려 가지고 이래서 안되는데 싶었습니다. 목사가 나가니까 양쪽에 줄을 쭉 서서 꼭 마피아 두목 섬기듯이 인사를 합니다. 이것은 교회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 나라가 아닙니다. 사탄의 나라입니다. 어떤 목사가 자기 교회가 최고로 좋은 교회라고 합니다. 왜 좋으냐고 물으니까 교인 400-500명 밖에 안되는데 목사님 안전해야된다고 해서 BMW를 사주더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6개월 후에 그것 보다 더 안전한 차가 있다고 벤츠를 사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교회가 최고 좋은 교회라고 합니다. 좋은 교회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모습이 다른 교회입니다. 이재록은 하나님의 교회와 정반대편에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그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교회가 이것을 진정으로 우려하여 우리부터 바꾼다면 교회 안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할 것으로 믿습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모든 장로님들이 여러분들을 안내했습니다. 저는 그래야 된다고 믿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500여 가정들이 일일 싼타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곳마다 나갔던 것, 하나님 기뻐하실 일입니다. 가보신 분들은 얼마나 즐거웠어요? 1999년, 천년 때 마지막을 보내면서 우리의 적은 선물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요? 이것이 사랑의 종노릇하는 모습입니다. 제가 북한 영화 `성황당`이라는 영화 보니까 목사가 못된 놈이더라구요. 제가 그 목사입니다. 정말로 형제의 발을 씻겨주는 섬기는 자, 그것이 교회의 지도력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자유로 종노릇하는 새로운 사랑의 종, 이 일 때문에 마더 테레사는 캘커타에서 생애를 보냈습니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 가서 생애를 불살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입니다. 그러면 자유니까, 율법과 상관없단 말인가? 무율법(無律法)가? 반율법(反律法)인가?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을 향한 모든 계명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 다 이루었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네 이웃을 사랑하면...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그 안에 다 포함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반율법주의자나 무율법주의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모든 율법을 완성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자유의 특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를 얽매어 놓은 모든 죄와 그리고 그것을 죄로 규정하는 규범인 율법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악에게 지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유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그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는데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이런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온전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2000년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확신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엄청난 상속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속에 날마다 이루어가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이 자유를 이 땅에 서 누리고 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도구로 사용될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충만히 임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사게재일: [2004-01-02 오후 9: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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