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길과 인간의길 (요나 3:1-5, 10)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명하십니다.
밉고 악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라는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내리시는 두 번째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첫 번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최상의 길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
니느웨 성은 당시에 가장 큰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여기 있었고 모든 유행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풍요로워질 때 타락합니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하나님이 계실 자리에 교만이 자리 잡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의 기준이 자기 기분이 됩니다.
자기는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더 죄악에 깊이 빠져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무서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기 기준이 잘못되었기에 나타나는 일입니다.
아무대로나 걸어가면 당연히 길을 잃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큰 손해를 봅니다. 병이 듭니다.
가까운 사람이 죽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돌이키라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그 때 뿐입니다.
금방 잊어버립니다.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고들이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죄악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요나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 하였음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주어집니다.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그냥 넘어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나가지 못하리라.”
둘째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경고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경고의 대사로 불림을 받습니다. 그래서 죄악을 지적하게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별안간 심판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발람 선지자가 뇌물을 받고 악인들을 위해서 축복합니다. 여러 번 경고가 주어집니다.
마지막에는 당나귀가 사람의 말을 하고 천사가 보여 집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하고 계시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여러 과정 여러 경로를 통해서 심판이 예고됩니다.
사람들은 그 때마다 두려워합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집니다. 가스가 폭발해서 한 지역 전체가 초토와 합니다.
심지어는 강남 한복판에서 가장 호화로운 백화점이 무너져서 수천 명이 몰살합니다.
천안함이 피폭을 당했습니다. 연평도가 포격을 당했습니다.
모두가 엄청난 경고를 줍니다.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어떤 것인지 객관적으로 말해 주는 것입니다.
가족이 죽습니다. 수십 년 동거 동락한 사람이 사라집니다.
그 충격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 때 뿐입니다. 세상은 너무도 바쁜 일이 많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헤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참고 계속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여러 방법을 통해서 경고를 발하십니다.
그러면서 돌이킬 기회를 계속 끝도 없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회사에서 이사가 되는 기회가 있고 정부에서 장관되는 기회가 있다면
길이 막힌다고 몸이 불편하다고 마다할 분이 있습니까?
그런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지 때문에 사람들은 망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한 진리를 얻습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 온 우주가 다 그 속에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크십니다.
2.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인간의 자유
하나님의 뜻은 평생 배워도 다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부분만으로도 세상을 얻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리 연구해도 다 알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세상에서 하고 싶어 합니다. 이기적인 자유, 한없는 방탕이 그것입니다.
세상의 자유는 억압을 줍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웁니다.
그만 두고 싶으면 그만 둘 수 있습니까? 바르지 못한 이성 관계에 빠집니다.
얼마나 그럴듯한 설명들이 많이 주어졌습니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처럼 불륜이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그러한 불륜이 영화에서처럼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뒤에도 나올 수 없습니다.
니느웨의 죄악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전 세계를 지배하는 앗수르 제국의 시민이었습니다.
수도 니느웨에는 전 세계에서 공물과 노예들이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그들 시민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이기심을 채워 나갔습니다.
주위 모든나라 사람들의 눈물 위에 욕심을 채워 나갔습니다. 죄악은 산보다 더 쌓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보고 경고를 발하셨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그들을 망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하면. 하고 싶은 일들을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만 참 자유가 있습니다. 그 외의 자유는 반드시 억압을 겸하여 줍니다.
하나님께만 진리가 있고 진리가 자유케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진 분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는 자유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참으로 자유케 하려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도 그렇습니다.
이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 61:1)
죄에 빠진 사람 병과 가난과 고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의 생명과 능력을 줍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사 1:18)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일정하십니다. 니느웨에 들려주는 그 명령은 성경전체의 흐름입니다.
이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들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
주위의 여러 경고와 함께 말해 주십니다.
“돌아 오라. 왜 먹지 못할 것에 재산을 낭비하는가!”
탕자는 자유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떠났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억압이었습니다.
방탕과 죄악에 억압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결핍과 고독과 병과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면서 자유는 시작됩니다.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것이 자유였습니다.
같은 방법을 니느웨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인간의 자유를 누리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인간의 번영
물고기가 자유로우려면 물속에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물속에 있어야 자유롭습니다.
더 큰 자유를 찾아본다고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면 자유는 중단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물속이 자유롭다는 것을 그때야 알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면 자유가 사라집니다. 세상은 자유를 약속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어느 누가 자유로웠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그래서 많은 축복을 누렸어도 여전히 자유를 찾기 위해 하나님을 연구해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이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유에 완전히 복종하지 못했습니다. 미움에 억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선지자였음에도 그의 마음은 아직도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에 그는 아무 열정도 없이 외쳤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사흘 갈 길을 단 하루 길만 가면서 말했습니다.
이에 니느웨 사람들은 모두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였습니다.
왕부터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죄는 순식간에 용서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누구든지 죄에서 돌이키면 사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강도이건 살인자이건 상관없습니다. 누구든 하나님께 나오면 새롭게 만듭니다.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어 주십니다. 모두 잃어버려진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앗수르는 자기 나라를 유린한 원수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고아와 과부들이 산과 들을 헤매며 굶어 죽어 갔습니까?
그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으면 누구든지 망하는 것입니다.
비록 택한 백성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망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인간의 도리대로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생각하십시오. 이해되지 않아도 그렇게 하십시오.
하나님이란 물속에서 마음대로 헤엄치는 것이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 이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성도의 가는 길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