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 하 18-20장 뿐 아니라, 역대하 29-32장, 그리고 이사야 36-39장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구약 성경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 받던 한 왕의 면모를 성경에서 배우게 됩니다.
<열왕기하 18:1-8>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 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 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RHKB)
I. 우리는 먼저 본문이 기록된 배경
A. 히스기야가 25세에 유다의 왕이 된 때는 이스라엘의 호세아왕 통치 3년이었습니다.
1. 이스라엘의 호세아 왕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바로 호세아가 9년을 통치 했을 때 앗수르에 의해서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만 것입니다.
2.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 시기는 앗수르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가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사마리아를 거의 손아귀에 넣은 앗수르는 자연 다음 목표를 유다로 정하고 유다를 삼키기 위하여 유다를 침략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3. 게다가 상황은 아주 나빴습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였던 아하스왕은 수년 전에 앗수르와 약조를 맺었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16:7-9> 아하스가 앗수 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8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 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RHKB)
4. 이런 비굴한 약조 아래에서 앗수르는 수년동안 유다를 착취했던 것입니다. 이제 앗수르의 기세는 더욱 높아지고 유다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된 것입니다.
B. 오늘 본문 2절에 히스기야의 어머니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글쎄요, 우리는 유다 왕들의 기록에서 그 어머니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부분을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요, 아마도 이 아비 라는 히스기야의 어머니는 훌륭한 믿음의 여인이 아니었었나 생각이 됩니다.
1.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매우 나약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침략해 들어오자 즉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친히 앗수르 왕의 신복이요 아들이 되겠다고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2. 이런 아버지 밑에서 히스기야 같은 훌륭한 아들이 나왔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인데요, 여기 그의 어머니의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 어머니의 역할이 이 경건한 왕의 삶을 만드는데 중요했다는 힌트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 아무튼 히스기야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왕으로 즉위했는데요, 그는 자기 아버지와는 아주 다른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1. 그는 힘있는 이웃 나라의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앗수르는 당시에 가장 떠오르는 세계의 강대국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가 앗수르와 맺은 조약은 어쩌면 히스기야에게 보장된 안전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a. 하지만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가 맺은 조약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강대국의 도움을 전혀 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오직 모든 도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2. 외세에 의존하지 않으려 했다면 히스기야가 내부의 군사력을 키우는데 주력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외부의 군사력을 의지하지 않았고, 내부의 군사력을 키우는데 주력하지도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한 일은 바로 온 나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어쩌면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이런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교회에 가서 기도나 하고 있으면 다냐?
이런 불평이 나올 법합니다. 하지만 히스기야의 첫 번째 관점은 먼저 온 나라를 영적
으로 부흥시켜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a. 이어지는 말씀들을 보면 히스기야도 실수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각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히스기야가 한 일은 오직 그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이사야라는 훌륭한 선지자가 유다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지체치 않고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어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b. 나중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자신의 신하들을 보내어 온 유다의 백성들을 미혹하려 했습니다. 산헤립은 유다가 의존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도 유다를 돕지 않으실 것이라고 참소했습니다.
이 때,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렸던 명령은 참으로 괄목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입을 다물라 는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이 입을 열어 가타부타 말하지 못
하게 했습니다. 다만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만 호소하고 기도하도록 명령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3. 우리는 히스기야 왕에게서 바로 이 영적인 면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경제적인 위협이 다가오고, 자녀의 문제가 생기고, 사업상의 문제가 생긴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혹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먼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사람의 도움을 먼저 구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입으로 불평과 원망을 하고 한숨 섞인 탄식으로 불 신앙의 말들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a. 우리는 히스기야 왕처럼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b. 사람을 의지할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도움은 사람으로부터 올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실 때에 그것이 완전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c. 선지자의 기도를 청했던 히스기야처럼 문제가 있을 때 교회와 목회자에게 알리고 함께 기도하는 일은 중요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Prayer request box)
d. 무엇보다도 히스기야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기도했다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 은혜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낱낱이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e. 사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하루 밤에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사를 죽이게 하셨습니다. 천사 하나면 됩니다. 우리에겐 큰 문제가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그 문제를 주님께 펼쳐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4. 여러분, 이미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이제 우리는 한동안 유다의 역사에 대해서만 공부하게 됩니다. 유다가 이스라엘 보다 좀더 오래 지탱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유다에 선한 왕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입니다. 그는 실로 다윗 이래에 가장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친히 우리에게 히스기야에 대한 칭찬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18:5-7>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RHKB)
a.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느 구절이 가장 눈에 뜨입니까?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입니까?
b. 제게는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라는 구절입니다. 여호와와 연합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했습니다. 마치 룻이 그 시어머니를 찰싹 달라붙어서 따랐듯이 포도나무가지가 나무에 찰싹 들어붙어 있듯이 그렇게 여호와께 연합했습니다.
II. 오늘 본문에는 우리들의 시선을 끄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께 찰싹 달라붙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A. 히스기야는 먼저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들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들이 있었다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제거시켜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1. 여러분은 야곱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칠 때 벧엘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 약속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셔서 축복가운데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이곳 벧엘에서 자신의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바치며, 그곳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야곱과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 사실 야곱이 20년간 외삼촌의 집에서 지낸 시간들은 대단히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그것도 야곱에겐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지렁이처럼 만들기 위해서 연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각종 위험과 고난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건져 주셨습니다. 20년이 끝날 즈음 야곱의 외삼촌에 대한 보고서를 보십시오. 그는 참으로 최고의 악조건 속에서 노동을 했었습니다.
<창세기 31:38-41>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RHKB)
3. 그에게는 휴가도 없었습니다. 밤도 낮도 여름도 겨울도 없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밤에 도적 떼가 수없이 공격해 왔고, 낮에는 맹수들이 수없이 공격해 왔습니다. 게다가 야곱은 사기꾼 7단이었지만, 그의 외삼촌 라반은 사기꾼 9단이었습니다. 그의 외삼촌은 악덕 고용주였습니다. 야곱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해 주지 않으셨다면 그는 야곱을 발가벗겨서 보냈을 것입니다. 야곱의 말을 더 들어봅시다.
<창세기 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RHKB)
4. 자, 그러니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까? 안 지키셨습니까?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안전하게 자기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의 형 에서의 분노로부터도 그를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이 야곱을 가장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 대해서 신실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분노가 풀리고 그 마지막 눌렸던 것에서 자유해지자 그의 생각은 완전히 돌변해 버리고 맙니다.
5.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벧엘로 올라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겜땅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곳은 음란하고 부패한 죄악이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정착해 살고자 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의 딸 디나가 그곳 여자들을 보려고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그녀가 무엇하러 시내로 들어갔다고요? 그 땅의 여자들을 보려고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야곱의 딸은 화장을 하고, 멋을 부리고, 그 도시에 유행하는 fashion이 무엇인지, 립스틱은 어떤 색이 유행하는지, 치마는 짧은지, 긴지, 뭐 그런 것들을 보러 나갔던 것입니다. 보세요, 야곱은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도 전혀 하나님에 관한 의식이 없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분노를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은 완전히 잊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분노가 생기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저 그 도시 사람들이 하는 대로 야곱의 자녀들도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6. 디나가 그곳에서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야곱의 아들들이 그 도시의 남자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성급한 행동을 나무라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대듭니다. 야곱은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모든 고생이 끝나고 안전하고 안일하게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보내리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긴 것입니다.
7. 바로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RHKB)
8. 그러자 야곱은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를 합니다. 이 때, 야곱은 당장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갈 수 없는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정리를 합니다. 야곱의 집안 구석구석에 무엇이 배어 있었는지 보십시오.
<창세기 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RHKB)
9. 야곱의 집안 식구들은 모두 옷을 바꾸어 입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이방인들의 삶에 길들여 져 있었는지... 그들은 자신을 먼저 정결케 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방종하고 있었는지...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집안 구석구석에서 어디에 그렇게 숨어 있었는지 우상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아마 야곱 자신도 놀랐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 속에 이렇게 많은 우상이 깃들여 있었는지... 그는 이 모든 것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벧엘의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10. 참으로 은혜로운 것은 야곱이 이렇게 벧엘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야곱의 일행을 호위해 주셨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아무도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야곱에게 손을 대는 자들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다리셨을까요? 우리들이 마음만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들을 다 묻어 버리고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출발일까요? 오늘 여러분들 모두가 다시금 감격적인 출발을 하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B. 히스기야가 유다에 만연되어 있던 우상들을 제거하는데, 기가 막힌 우상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놋 뱀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매우 큽니다. 이 놋 뱀은 우리 예수님에 의해서 그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그 뱀이 바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자신의 고난을 상징하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할 때에 불 뱀이 나와서 그들을 물었습니다. 이 불 뱀들은 심각한 독을 품고 있었고 이 뱀에 물린 사람들은 즉시 즉시 죽어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놋 뱀을 만들어 이스라엘의 캠프 가운데 세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낳음을 얻었습니다.
2. 이 뱀은 이스라엘의 캠프 중앙에 높이 달렸습니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으면 이스라엘은 그 중심부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부입니다. 시온 산, 갈보리 언덕은 예루살렘의 중심부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높이 달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캠프에 300만 여명의 백성들이 있었지만 뱀은 오직 하나로 족했습니다. 예수님도 한 분으로 족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몇 분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이 놋 뱀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뱀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얼마나 불행한 일을 초래하는지 생각나게 해 주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놋 뱀을 그들의 성소에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은 점점 그 용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로 이 뱀에게 분향하고 숭배하는 행위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4. 오늘날도 교회 안에는 다만 상징적인 것에 불과한 것들이 숭배를 받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상징해 주는 물건이지 숭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여기 스펄젼이 사용했던 성경책이 있다고 합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라는 건물도 기능 면에서 성별 된 것이지 이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여러분들이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아무 것도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5. 제가 지난 부활주일 새벽 예배에서 예수님의 세마포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독일의 트리어라는 남부 도시에 가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장사될 때 입으셨다는 세마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품일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세마포는 옷의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배운 대로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는 마치 누에고치 모양 예수님을 쌌던 그대로 예수님의 무덤에 놓여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마포는 옷의 형태가 아니라 그저 긴 천을 시체 위에 둘둘 말아 놓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관련된 어떤 물건도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트리어에 갔을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왼 손에 못박았던 못이라고 주장하는 그 못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보석으로 장식된 상자에 그 못을 넣고 또 그것을 유리 상자 안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에 와서 경배하고, 입맞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가서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꺼내어 세금으로 바쳤던 동전을 발견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 동전도 보석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고 거기에 경배할 것입니다.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C. 더욱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은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의 기억을 우상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저는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에 행했던 일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의 경험에 분향하고 있는지요. 여러분이 지난날을 잊어 버려야 하나님께서 새롭게 여러분을 쓰실 수 있습니다.
2. 지난날에 가지고 있던 지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난날의 감격스런 회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지식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감격이 여러분을 전률하게 할 수 있습니다.
D. 히스기야는 바로 이 놋 뱀을 다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이름을 느후스단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놋조각 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놋조각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쓰신 순간만 그것은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1. 오늘 우리의 삶에 깃들여 있었던 느후스단들을 부수어 버립시다.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찾아내면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느후스단들이 기어 나올 것입니다.
2. 그리고 약속의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그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마 야곱이 벧엘로 돌아갈 때에 주변 족속들을 잠잠케 하시고, 마치 개선장군의 행렬처럼 야곱의 행렬을 에스코트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했을 것입니다.
3.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Morning by morning, Your mercies I see , 아침마다 새로운 주의 사랑을 여러분은 노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