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제물과 그리스도인의 자유

12월 2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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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상의 제물과 그리스도인의 자유

   

2008.07.23 00:3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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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님의 주일설교입니다
성경:고린도전서 8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8장을 함께 같이 공부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8장 내용은 사실상 우상의 제물을 둘러싼 논쟁, 그 제물을 먹어도 좋은가, 그리스도 인들이 먹지 말아야 하느냐, 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더 크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장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일을 해도 좋은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성경의 확실한 가이드가 없는 그러한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술을 마셔도 좋은지 마시지 말아야 하는지, 맥주 한잔쯤은 괜찮은지 아니면 그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담배, 담배 피워도 좋은지 피우지 말아야 하는지, 고상한 분위기에서, 고상한 자리에서 사교춤 정도는 추어도 될지, 추지 말아야 할지, 미국에서는 결혼식을 할 때요 결혼식이 끝나면은 댄서 파티가 있어요. 제가 미국 목회 할 때 우리 교인들에게 많이 받은 질문중의 하나가 참 자기 자녀들 결혼하고 미국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 드린 그런 풍습인데 그때도 추지 말아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뭐 극장가는 것 갖고는 뭐 그렇게 의의 가 없겠죠? 그런데 극장의 야한 프로는 봐도 좋을지 보지 말아야 할지, 골프 치는 것 가지고 문제가 있습니까? 요즘 많이 나아졌죠? 네, 그러나 주일날 골프, 해도 좋은지 안 해도 좋은지, 이런 질문들, 또 섰다 앉았다, 해도 좋은지 안 해도 좋은지, 경마 같은 것도 하시는 분들이 있드라구요. 경마 해도 좋은지 안해도 좋은지, 우선 이런 문제들은 성경에 명확한 교훈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에서는 이런 것을 소위 회색지대에 속한 문제다. 소위 드레이에어리아, 드레이에어리아 란 말은 회색지대다. 이것은 까만 것 도 아니고 하얀 것 도 아니고, 소위 흑백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해도 좋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 대답 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것은 자유의 영역에 속한 문제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개개인의 자유로운 결단이 필요한 영역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리는 어떤 결정, 이런 일에 대한 우리들의 행동의 결단은, 나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가 있고, 이웃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가 있고, 심지어는 교회 공동체, 사회 속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은 그 당시에 고린도 교회 초대 교회당시 고린도 교회가 직면하고 있었든 이런 유형에 속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상의 제물, 우상에게 제사를 위해서 바쳐진 후에 그 고기, 그 고기를 사서 먹어도 좋은가,. 먹지 말아야 하느냐, 라는 문제가 제기된 것입니다.

우리 그 대답이 될 수 있는 열쇠의 단어를 본문에서 세 가지 중요한 단어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단어가 이런 소위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한 문제들에 관해서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에 가이드 라인을 제공 할 수 있는 중요한 세 가지 단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선 8장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중요한 단어 두 가지 단어가 나오는데요, 하나는 지식이라는 단어입니다. 지식 그 단어를 잘 기억해 주시고요 지식, 그 다음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사랑, 지식, 사랑,

8장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여기에 양심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양심, 세 가지 원리가 있는데요 지식의 원리, 사랑의 원리, 양심의 원리,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의 그 자유의 영역에 속한 문제들에 관해서 우리들의 행동을 결정할 때, 태도를 결정할 때, 이 세 가지 원리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지식의 원리, 둘째는 사랑의 원리, 세번째는 양심의 원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식의 원리, 지식의 원리는 무어냐? 먼저 우리가 참된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행동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 참된 지식을 알고 자유할 필요가 있어요. 참된 지식을 알고 자유 하십시오. 이것이 먼저 중요한 첫번째 가이드라인입니다. .참된 지식을 알고 자유 하십시오. 이것이 지식의 원리구요 무슨 얘기냐?

4절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본문의 8장 4절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그 실상이 뭐냐, 진상이 뭐냐, 사실이 뭐냐, 팩트가 뭐냐? 그래서 사실을 알아야 되요. 진상을 알아야 합니다. 자, 우상의 제물, 우상이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까? 존재하지 않습니다. 헛된 것, 헛된 것을 신처럼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고 사실상 가상의 것이고 허상의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한 분만이 존재하시고 살아 계신다. 이게 팩트입니다 이게 사실입니다 이것이 진상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은 어떻게 되요? 자유 하게 되죠. 자유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의 말씀처럼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자유가 와요. 많은 경우에 우리가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지고 불안해 집니다. 진리를 알면 우리가 자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지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좀더 배경을 설명해 드리면 그 당시 고린도 라는 도시 안에서는 사람들이 고기가 먹고 싶어요. 개기가 먹고 싶다, 고기가 먹고싶다, 그러면 고기를 살수 있는 곳이 두 장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어디냐 하면 시장에 가서 삽니다 시장, 당연한 일입니다. 시장에 가서 삽니다. 그러고 또 하나 고기를 살수 있는 곳이 있었어요 거기가 어디냐 하면 신전입니다. 신전, 우상의 신들을 섬기는 신전, 아프로디테 신전, 지금도 그 신전 터가 고린도 도시에 거창하게 남아 있습니다. 고린도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보고있는, 굽어보고 있는 아주 정상의 산 위에 아주 거대한 신전 터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미의 여신, 아프레디테를 섬기든 그 신전, 그런데 신전에서 이제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짐승들을 가지고 죽여서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고기를 신전에서 팔았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시장으로 갈까요? 시장으로 갈까요? 신전으로 갈까요? 많은 사람들이 신전으로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잘 아시네, 깎아봐 가지고 잘 아시네, 녜, 싸요, 싸. 거기 가면 싸요. 시장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그 제사용으로 썼든 제물로서의 고기를 살수가 있었든 거죠. 그런데 믿음이 강한 사람, 또 믿음이 장성한 사람, 성숙한 사람, 성경을 상당히 알고있는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상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상에게 저 제물을 바쳤지만 저 제물은 단순히 음식일 뿐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아요. 그러므로 사자, 먹자, 담대하게 먹자 그래서 그것을 먹었어요.

그런데 신앙이 그다지 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아직 성경을 충분히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편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도 귀신에게 바친 그런 음식인데 어떻게 그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느냐, 그것도 맞는 것 같습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어요? 네 일리가 있어 보이죠. 그래서 신앙이 좋은 줄 알았든 사람들이 귀신에게 바친 음식을 막 갖다가 담대하게 뜯어먹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자,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한 교훈을, 대답을, 고린도전서 8장에서 하면서 제일 첫 구절에 먼저 이런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이 지식을 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뭐냐 하면 지식을 어떻게 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까? 교만하게 할 수 있다. 뭐냐 하면 그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 수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다. 야! 그것 가지고 신경 쓰지 마라, 아무것도 아냐, 응? 성경에 보면 우상이라는 것은 헛된 것이야, 존재하지 않는 것이야, 자유하라! 아무것도 아니야, 병신들, 그것 가지고 뭐 그렇게, 그게 뭐 그 음식 가지고 시험 들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견해가 절대로 틀린 것은 아니에요. 그들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바울은 그 지식이 무슨 지식이라고 말합니까? 교만한 지식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이웃들을 고려하지 않은 지식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예컨데 우리 주변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이사 갈 때 혹은 자녀들의 결혼 날짜를 선택 할 때 교회에 나오면서도 주변에 압력에 못 이겨서 손이 없는 날짜를 선택해서 이사도 가시고 또 자녀의 결혼 날짜를 정하는 일들도 있을까요? 없을까요? 아 있습니까? 난 모르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러분은 반응을 보이십니까? 병신 같은 이, 뭐 손이 어디 있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성경에 보면 뭐라고 했습니까? 모든 날은 주님이 정하신 날이다. 있어요? 없어요? 그런 말이, 녜, 로마서에 보면은 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은 모든 날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다. 무슨 뭐 손이 있는 날이 있고, 없고, 귀신이 역사 하는 날이 있고, 없는 날이 있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유하라, 자유하라, 그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아요.

그런데 그것을 계속 꺼리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마음에 그래 맞아, 맞아, 그러면서도 .마음에 부담이 되어요. 부담이 되어요, 이 부담이 되는 목장원들을 향해서, 목자가 담대해요, 담대! 때려치워요 그냥, 그리고 해요, 그냥 무슨 손은 손이에요, 그게 맞는 얘기예요? 맞는 얘기이지만 그러나 그런 접근 방법은 뭐예요? 사랑이 없는 접근 방법이에요. 그래서 자기 확신이 없이 목장원이 자기 확신이 없이 목자에게 밀려 가지고 목자의 거룩한 권위와 그리고 권위 있는 가르침에 눌려 가지고 강행을 했어요. 그 날짜로 딱 강행을 했어요. 손이 있다고 생각되는 날짜에 강행을 했어요. 두렵고 아프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그래서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이 아직 신앙이 없으니까 무슨 생각을 할까요 신앙이 약하니까, 맞아, 그때에 손이 있는 날에 강행을 해서 그 일이 일어난 거야 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바람직하지 못하죠.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충분히 말씀을 나누고 설득해서 본인이 스스로 뭐예요 아,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자유다 이렇게 되는 것이 제일 뭐예요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해요.

그러나 거기까지 오지 못한 성도들을 우리가 어떻게 안내 할 수가 있느냐, 바로 이것이 문제예요.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첫번째 원리 지식의 원리입니다. 지식은 알아야 됩니다..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야 되요. 가르쳐 줘야 되요. 그러나 그 사실을 받아드리고 그 사람이 확신에 도달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첫번째 원리 지식의 원리 참된 지식을 알고 자유하게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두번째 원리가 있어요 사랑의 원리예요. 두번째, 사랑이라는 것은 그 지식을 참된 지식을 사랑 안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을 사랑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 다같이 따라서 하세요. 오직,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 네, 우리가 행하는 일, 진리의 일, 참된 일, 거룩한 일도 어디 안에서 하라구요? 사랑 안에서 하라 그랬습니다. 올바른 일도, 올바른 일도 사랑 안에서 하라!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는 그들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또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올바른 일을, 사랑 안에서 행하지 못하고 있었든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올은 이 두번째 중요한 원리를 강조합니다. 사랑의 원리, 그 지식을 사랑 안에서 사용 할 수가 있어야 한다. 예컨데 지금은 그런 일이 별로 없습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화장실이 바깥에 있었든 계절 한국 역사의 한때 그런 때가 있었든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화장실이 집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었든 때, 꼬마들이 제일 힘들었든 일이 무얼까요? 밤중에 밴소(변소) 가는일, 밤중에 화장실, 변소 가는 일 가는 일, 그렇게도 무섭고 떨렸든 기억이 저에게도 있어요. 왜 그랬을까요? 밤중에 뒷간에는 특별히 뭐가 출현합니까? 귀신들이, 유령들이 나온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에서 입력된 인포메이션이 우리에게 있었어요. 밤중에 귀신은 반드시 출현한다, 자 그렇게 믿고 있는 꼬마를 붙들고 신앙이 강력한 그리스도인 부모가 훈계를 합니다. 이놈아 너 주일 학교에 다니잖아, 너 아직도 그런 엉터리를 믿고 있니? 귀신이란 것은 없어, 존재하지 않아, 또 귀신이 존재해도 사람들이 말하는 귀신,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아, 물론 귀신이 성경에 있긴 하지마는, 그리고 귀신이 존재한다고 할찌라도 그런 귀신을 두려워할 것은 하나도 없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하나님은 네 편에 계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니라. 그러면서 갔다와, 갔다와! 두려워하지 말라. 갔다와라, 사실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라! 그리고는 보냈어요.

그건 지식을 따른 충고입니까 사랑을 따른 충고입니까? 지식을 따른 충고예요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따른 충고는 아닙니다. 사랑을 따른 충고는 아닙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맞는 말이지만 부모의 말이 그것이 아직 이 꼬마에게는 뭐가 되지 못했어요. 자기 확신이 되지 못했어요 자기 확신, 우리가 이웃 사람들과 진리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또 진리를 설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 진리가 자기 확신이 될 때까지 우리가 뭐할 필요가 있어요? 기다려 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진리를 따라 자기가 행동할 수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억지로 보낸단 말이죠. 갔다와! 나중에 안가니까 이 병신 같은 이라고 말이지, 너 아직도 그런 엉터리 같은 것을 믿고 있니? 그러나 그때 부모 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가면서 어둠 속을 향해서 가면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면서 아, 엄마는 이렇게 나를 보내 나를 이해하지 못해, 차라리 그때 손을 같이 잡고 가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아빠가 함께 함이니라, 귀신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느니라, 화장실 앞에서 지켜 주면서 볼일보고 나오거라, 담대하게 보고 나오너라, 그러면 그것은 무슨 일이 에요? 봐, 안 왔잖아, 귀신 안 왔잖아, 아무도 안 왔어, 잉 아빠가 있으니까 안 왔지,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가르쳐 주고 그래서 자기 확신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말이죠.

고린도 교인들은 불행하게도 이런 이웃을 고려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뭐라고 말합니까? 그것을 뭐라고 말합니까? 그것이 교만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교만이다. 그래서 교만에 대한 얘기가 고린도 전서에 많이 나옵니다.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어떤 교인들이 이 교만의 경향을 가지고 살고 있었든 것을 바울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교만한 것이 아니다 지식, 가지고 교만하려면 차라리 지식이 적어도 사랑의 삶을 선택 하라, 이것이 바울의 교훈입니다. 물론 지식과 사랑이 함께 있으면 더 좋죠. 지식이 없는 사랑은, 지식이 없이 사랑하는 것은 맹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지식은 그것은 무익한 것입니다. 나중에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다시 다루게 되겠습니다 마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지식이, 진리의 지식이 이웃들에게 도움이 될 수가 없어요. 이웃들을 도와 줄 수도 없어요. 오히려 이웃들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이 두번째 원리가 사랑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지식은 어디 안에서? 사랑 안에서 사용 하십시오. 이것이 사랑의 원리입니다.

세번째 원리, 양심의 원리입니다.
양심의 원리, 무슨 말이냐, 다시 말하면 특별히 약한 양심을 가진 성도들을 배려 하십시오. 약한 양심을 가진 이웃들이나 성도들을 배려 해주십시오. 양심이란 말은 본래 두 가지 단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무엇 무엇과 함께, 그 다음에 두번째는 동사로서 안다, 함께 안다, 더불어 안다, 이것이 양심이라는 단어의 본래의 뜻입니다. 영어로도 칸-션서, 칸이 함께, 더불어, 안다, 더불어 안다. 누구와 더불어 아느냐, 하나님과 더불어 안다 그런 뜻입니다. 양심의 소스는, 근원은 하나님이 십니다. 그래서 양심이란 것은 하나님께 대한지식, 또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진리의 대한 지식과 함께 양심은 자라 가는 것입니다. 양심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진리에 대하여 알아갈수록 우리의 양심은 강해지고, 양심은 더 담대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모를 때 우리의 양심은 약해요 약해질 수가 있어요. 또 양심은 상처받을 수 있어요. 또 양심은 더럽혀질 수도 있습니다.

7절, 자 본문의 7절, 고린도 전서 8장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웠느니라 이 지식 참된 지식 진리의 지식 을 어떤 사람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서 우상의 제물, 딱 그러면 아, 이것은 귀신에게 바쳐진 제물이다 이런 생각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나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식물일 따름이다 혹은 이것은 고기일 따름이다 개기일 따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맞는 거죠? 그러나 어떤 사람들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약한 사람들은 과거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서 딱 보는 순간 아,이건 귀신에게 바쳐졌든 것인데 그런데 먹으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먹으니까, 먹는 고로 양심이 어떻게 된다고 그랬어요? 약하여진다, 그래서 양심이 더 약해집니다. 심지어는 어떻다 그랬어요 더렵혀진다

......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이같이 너희에게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어떻게 한다? 상처 낼 수가 있다 상하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의 원리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이런 양심이 약한 이웃들을, 혹은 성도들을 배려하면서, 고려하면서 행동해야 된다 이게 양심의 원리입니다.

결론적으로 13절 말씀, 1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가 먹는 이 고기가 내 형제를 어떻게 한다면, 실족케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겠다. 사실 생각 해보면 맥주를 음료수처럼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맥주 한잔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어요 죄다! 그리고 흥분할 필요가 전혀 없는 문제예요. 그냥 음료수일 따름이에요. 그런데 내가, 제가 어떤 식당에 가서 맥주를 시켜놓고 먹는 것을 여러분들이 봤다고 하십시다. 두 가지 반응이 나올 꺼예요. 어떤 사람은 뭐예요? 우리 목사님 자유인이구나, 이런 사람은 신앙이 뭐예요? 성경에는 신앙이 성숙한 사람, 강한 사람, 그러나 오, 이 목사님이 맥주 해 맥주, 시험에 들었어요.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신앙이 약한 사람, .성경에 보면 그것의 표현이에요 그것이, 그럴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내가, 네, 그것을 알았어요. 한번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하십시다 가정이에요 가정, 경우가 있었다고 하십시다. 그러면 뭐예요? 내가 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이런 약한 성도들이 있는 한, 나는 안 하겠다. 약한 성도들이 있는 한, 전 제가 좀 몸이 조금 약하니까 뭐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제가 받는 프레시어 중의 하나가 목사님 이제는 시대가 괜찮으니까 골프를 하십시오. 실제로 그런 충고를 많이 받아요. 어떤 사람은 골프채를 갖다 드릴까요?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가 해도 될까요? 안될까요? 하하.. 그러면 저가 할거 같아요 안 할거 같아요? 하하.. 저가 안 하는 이유가 뭐 같아요? 녜, 혹시 실족할 사람들이 있을까봐 우리 교인들 가운데 한 두 사람이라도 그것 때문에 실족할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하지 않겠다 실제로 그래요 저는, 네, 한 사람만 아멘, 했습니다마는 네, 그렇습니다. 그게 바울의 심정이예요. 바울의 심정, 자, 실제로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에요. 그 자체가 무슨 굉장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 14장은 이런 문제에 관해서 똑 같은 가이드라인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인데 로마서 14장 23절, 로마서 14장, 시간이 있으면 이 14장 전체를 읽어보시면 오늘 고린도전서 8장과 거의 같은 맥락의 교훈이 로마서 14장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4장 1절부터 보시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 드리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뭐예요?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먹을만한 사람이, 약한 사람이다? 강한 사람이다? 강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막 가려서 못 먹는 사람이 사실은 약한 사람이다 이상한 얘기죠? 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말이 마지막에 가서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 하면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로마서 14장 23절 같이 읽겠습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그러니까 아까 귀신에게 바쳐진 제물, 아 이건 귀신에게 바쳤다 그러니까 이건 귀신의 음식이다 하나님의 음식이 아니라 귀신의 음식이다. 꺼림칙하게 의심하고 먹는 사람, 내가 먹지 말아야 되는데 이걸 먹는 거지? 먹지 말아야 되는데 먹는 거지? 하고 먹었으면 이 사람은 자기 양심을 뭐예요? 어긴 거예요 죄입니까? 아닙니까? 그에게는 죄예요. 또 어떤 사람이 나는 이건 완전히 자유다 이것은 뭐 하나님의 음식이다. 본래가 뭐 나는 완전히 하나님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먹었어요 이 사람에게는 죄예요? 죄가 아니에요? 죄가 아닙니다. 죄가 아니지만 이 사람의 행동이 이웃들에게 뭐가 될 수 있어요? 덕이 되지 못할 수는 있어요. 부담이 될 수는 있어요. 그렇다면 뭐예요 자기의 자유를 절제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자유의 문제입니다만 이 전체가, 그럴 경우에 자유의 제한이 필요하다. 스스로 자유를 절제할 줄 알아야 된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런 소위 회색 지대에 속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독교 윤리에서 있어서 그러나 이 행동의 가이드라인이 뭐냐? 첫째는 뭡니까? 지식이 있어야 됩니다. 참된 지식, 정말 진정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자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을 사용할 때, 지식을 남들에게 가르칠 때, 지식을 권유할 때, 어디 안에서 해야 된다구요? 사랑 안에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원리입니다. 특별히 내가 그것을 행동할 때 양심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양심에 원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약한 양심의 사람들을 배려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맥주 문제로 돌아오겠습니다. 맥주, 자, 맥주 마시는 것 죄입니까?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 자체를 죄라고 말해서는 안되요. 그게 뭐 음료수 일 따름이예요 절대로 그 자체는 죄가 아니에요 그게 사실이에요. 그것이 지식입니다. 그러나 내가 맥주를 마실 때는,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예요 사랑, 내가 주변 내 이웃들을 사랑한다 내 행동의 영향을 생각하는가, 그 다음 세번째로 중요한 원리가 뭐냐? 양심의 원리, 특별히 약한 양심, 약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내가 그것을 마시는 것이 이웃들에게 부담이 되고, 또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면, 어떻게? 내가 하지 않겠다. 하지 않겠다. 저는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을 따라, 또 약한 믿음이나 양심을 가진 성도들을 배려하는, 그 배려 안에서 자유가 행사되어야 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방종은 아닙니다 그 자유는 한계를 가진 자유입니다. 우리의 자유가 사랑을 따라 사용될 때, 우리의 자유는 이웃들을 세워주고, 이웃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우리의 자유가 지식을 따라 행동하지만, 사랑이 배려 되지 않을 때, 그것은 이웃들에게 오히려 불편함과 또 상처와, 혹은 심지어 회의까지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사랑 안에서 덕스럽게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사게재일: [2003-04-14 오후 12: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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