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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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

   

2008.07.23 00:4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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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각 목사(예담 교회)
성경:베드로 전서 2:21-25

로마제국에는 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인구의 절반 가량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노예 제도를 부인한다면 세상은 무정부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비현실적입니다. 그렇다고 노예제도 아래서 자행되는 온갖 비인간적인 행위를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인 자세가 무엇입니까? 노예제도의 현실을 인정하되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노예는 주인을 두려워함으로 순복합니다. 노예로 인하여 주인이 예수를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당장에 복음을 믿는 것도 허락이 되고,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예된 자들이 고난을 참고 복음을 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주인의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주인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노예들 보다 더 정직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합니까?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비록 노예의 신분이지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의 노예들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을 이기는 길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는 길입니다.


1.십자가의 고난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의 고난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적인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죄 없이 당하는 고난이고, 세상 고난은 자기 죄로 인해 겪는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가치 있는 고난이고, 세상 고난은 가치 없는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남을 위한 고난이고 남을 유익하게 하는 고난이고, 세상의 고난은 남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는 고난입니다.
오늘도 세상에는 뜻 없이 고생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에게 못할 일을 하고 자기 죄값을 받는 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자기의 약점으로 당하는 고난도 십자가의 고난이 아닙니다. 지식이 부족하다든지, 경험이 부족하다든지, 건강이 좋지 않다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당하는 고생이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은 아닙니다. 또 자기 앞날을 위해 고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먹을 것도 먹지 아니하고, 잠도 자지 아니하고 힘을 다 해 일합니다. 나름대로는 고생이지만 자기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십자가의 고난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남을 위한 고난입니다.
참다운 고난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의 고난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이 된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귀족으로 궁궐에 태어나지 아니하시고 목수의 아들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압제에 신음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배고팠고 우리와 같이 목말랐고 우리와 같이 피곤했습니다. 우리와 같이 슬퍼하셨습니다.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그토록 열렬하게 환호하던 그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떡을 주었고 병을 고쳐 주었던 그 백성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 다른 사람이 아닌 제자 가롯 유다에게 은 30에 팔렸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도무지 사형에 처할 죄도 없었지만 가장 극형인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 모든 죄를 대신 지고 고난받고 죽으셨습니다.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고난의 길을 걸어간 믿음의 선조들이 있습니다. 아벨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사를 드린 죄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남이 아닌 형 가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은 죄가 없지만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팔렸습니다. 요셉이 고난 받음으로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렸습니다. 모세입니다. 모세는 나이 40에 애굽의 모든 금은 보화 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택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때로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고난 가운데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아무 잘못도 범하지 않았지만 미움을 받았습니다. 숨을 곳이 없어서 원수 블레셋의 땅에 가서 침을 흘리며 미치광이 시늉을 하기까지 고난을 받았습니다. 나봇은 아합왕의 제안을 거부함으로 고난을 받고 죽었습니다. 조상의 유업인 포도원을 왕에게 넘길 수 없다고 왕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고난을 받아 죽었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로마시민권이나 헬라철학이나 율법을 배설물처럼 다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고후6:4-6).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난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고 고난과 함께 하루를 마쳤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지기도 했고, 화형대에 서기도 했고, 칼을 받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했습니다. 흉년도 들었지만,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고난을 받아서 가난했습니다. 오직 예수 믿는다는 죄로 고난을 받아 죽기까지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있는 곳에 기독교가 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온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 갈 때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고난을 외면하지 않는 교회의 모습에서 교회를 다시 발견했다고 합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도 침묵했고, 언론사도 침묵했고, 문필가도 붓을 꺾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부 교회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의에 맞섰습니다. 고난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고난을 외면하지 않는 성도가 참 성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종류의 고난을 받고 있습니까? 죄짓는 것은 예수 믿기 전으로 족합니다.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 무슨 칭찬이 있습니까?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무슨 하나님의 칭찬이 있습니까?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읍시다. 이를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20-21).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잘하고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실 것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까? 나의 신용을 지키고 약속을 지켰습니까? 참으로 잘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까? 참으로 잘했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실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장사를 그만두고 손해를 입었습니까? 잘했습니다. 믿지 않는 식구들 믿지 않는 이웃 때문에 오해를 받고 멸시받았습니까? 참으로 잘했습니다. 이를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친구를 참았습니까? 참으로 잘했습니다.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노예된 자들에게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고 견디라고 했습니다. 그 십자가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래도 고난을 받으라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우리도 지고 갑시다. 교회를 위하여 도움이 된다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예수님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면 십자가 지고 따라 갑시다.

2.어떻게 하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1)고난 당할 때 주님에게서 올바른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 베드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나 빌라도의 법정에서 고난을 받으실 때 어떻게 처신하셨는지 친히 목격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사53:7).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23절). 욕하지 아니한다 는 것은 다른 사람 탓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매사에 그러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즉각적으로 반응합니까? 욕을 합니다. 상대방이 하지 않는 욕까지 합니다. 상대방에게 대한 인신공격까지 모함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남이나 환경 탓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아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거친 언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순한 양과 같이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오히려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처분에 맡길 뿐입니다.

2)어떤 고난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19절). 로마제국의 노예들의 인권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쁜 주인을 만나면 노예생활이 쉬지 않습니다. 그 고생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쁜 주인에게도 순종하고 그들에게 감동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까다로운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패역하고 공평하지 않은 주인입니다. 괴롭히는 주인입니다. 이런 주인을 만난 종은 슬퍼할 만 합니다. 부당한 어려움을 당합니다. 억울합니다.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고난을 감당하기로 말하면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고 싫은 것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하심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불같은 시험당하나 겁내지 맙시다. 예수님에게 고난을 준 사람은 고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백성들을 지도해야 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칼을 든 무장한 군대나 상대해야 할 로마 병정들이 아무 죄도 없고 무장도 하지 않은 예수님에게 고난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이 예수님에게 고난을 주었습니다.

3)기도해야 합니다 :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5:13). 예수님도 고난당하실 때 기도함으로 이길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곧 다가올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대비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절) 하고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힘 주시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내일 일은 날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하나님이 우리 손을 잡아 주시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19절).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우니라(20절). 아름답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고난을 인정하시고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갚아주십니다. 이것이 이기는 비결이고, 축복의 비결입니다. 욥을 보십시다. 고난의 결말이 무엇입니까?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약4:10-11). 욥처럼 고난을 묵묵히 참으면 복된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면 장차 나타날 영광의 예표입니다.






 
기사게재일: [2003-04-17 오후 12: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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