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붓하고 예쁜 동네 길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골목에 작은 화분이 쪼르르 놓여 있습니다.
어느 아저씨가 갖다 놓은 화분들입니다.
자기 집 앞도 어닌데 그 길목에 화분을 갖다 놓은 이유를 여쭤봤더니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볼 거 아닙니까?”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해지려는 게 아니라, 나 아닌 타인도 행복하도록 그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한 가정의 아버지로 바쁘게 일하는 경영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틈틈이 앞산으로 꿩 모이를 주러 다닙니다. 꿩 들이 다른 새를 잡아먹을까봐 부러 하는 일입니다.
아무도 몰라주는데,
그 일을 한다고 누가 표창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 아버지는 쉬지 않고 화분을 손질하고, 쉬지 않고 산에 꿩 모이를 주러 다닙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남매는 또 그렇게 남들에게 베풀며 산다고 합니다.
참으로 예쁜 가족이다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과 다른 나라 중산층 기준을 떠올려봅니다.
‣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은 이렇다고 합니다 (직장인 대상 절문조사 결과).
① 부채 없이 30평 이상 아파트 소유.
②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③ 2.000cc급 중형차 소유.
④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⑤ 해외여행은 1년에 한 차례 이상 다님.
‣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을 보면 이렇다고 하지요.
(퐁피두 대통령이 <삶의 질 Qualite de vie>에서 정한 기준)
① 외국어를 하나 정도 할 수 있음.
②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음.
③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음.
④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나 만의 요리’가 있음.
⑤ 사회가 타락했을 때 ‘공분’에 의연히 참여함.
⑥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함.
‣ 그런가 하면 영국의 중산층 기준은 이렇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기준).
① 페어플레이(정당한 대결)를 함.
②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짐.
③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음.
④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함.
⑤ 불의 ㆍ 불평 ㆍ 불법에 의연히 대처함.
‣ 미국의 중산층 기준은 이렇다고 합니다.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준)
① 자신의 주장이 떳떳함.
② 사회적 약자를 도움.
③ 주정과 불법에 저항함.
④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중산층 기준이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이렇게 모든 가치를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해 왔을까요?
중산층이라는 말이 꼭 물질적 풍요를 지칭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중산층이라고 하면 삶의 여유와 행복을 누리는 가족을 연상합니다.
잘산다는 것, 그 기준이 예금 잔고나 부동산의 유무는 아닐 것입니다.
돈을 가졌다면 그 돈으로 얼마나 인생을 잘 누리며 사느냐, 그 돈으로 얼마나 사회에 갚으며 살고 있느냐,
그것이 척도가 되어야겠지요.
‘얼마나 가졌으나’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니까요.